지난 40년의 독서 이력을 돌이켜보면, 대략 1만 여권 이상의 책을 읽은 것 같습니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는 데다, 속독하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소설책 한두 권 읽은 것은 여반장이거든요. 매년 제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글만 50편 이상이니 그 몇 배에 이르는 책을 읽는다고 봐야겠죠.
이렇게 장황하게 제 독서 이력을 설명하는 이유는 오늘 소개하는 책 <스트레스 테스트>를 읽고 받은 감동을 어떻게든 세세하게 전달하고 싶은 맘 때문입니다. 즉, 1만권 넘게 읽은 책 중에서 거의 Top 10안에 드는 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거죠. 이 책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보여주는 오바마 1기 정부의 재무장관 티모시 가이트너의 진솔한 회고록입니다.
오늘은 이 책을 통해 제가 얻은 몇 가지 정보를 간단하게 전달하는 정도로 맛만 보고, 가끔씩 시간 날 때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아래의 ‘그림’은 <스트레스 테스트>의 411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인데, 미국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서 벗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란 ‘경기가 급격히 악화된다고 가정할 때, 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이 이 위기를 넘길 여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조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테스트를 통과 못 하면 연준과 중앙정부가 만들어 놓은 기금(TALF)에서 돈을 투입합니다.
다시 말해 1998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부실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여러 은행이 공적자금 투입 이후에 건전해지고, 다시 대출이 정상화되었던 것처럼 미국도 스트레스 테스트 이후에 이뤄진 공적자금의 투입을 계기로 급격히 대손율이 떨어졌습니다.
대손율이란 결국 이자를 못 받거나 심지어 원금도 상환 못 하는 사태로 인해 빚어진 손해가 전체 대출에서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한 것이니, 이 대손율의 하락은 금융기관이 정상화되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손율이 떨어질 때, 금융기관도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할 것 아니겠습니까?
암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등 선진국 금융기관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또 당시 미국 정책당국이 얼마나 큰 위기를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손색이 없는 듯해 소개했습니다.
앞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서 금융기관에게 공적자금을 투입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공적자금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흥청망청 보너스 잔치를 벌이던 금융기관들에게 공적자금 투입해서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2013년까지 공적자금은 대부분 회수했으며, 특히 어마어마한 투자수익(과 배당)을 얻었습니다. 총 규모는 1,66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200조 원 정도에 이릅니다. 그럼 어디에서 이런 이익이 발생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금융기관들이 위기를 경과한 후 다시 기력을 회복했기 때문이었죠. 위기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에는 모든 금융기관이 위험해 보였고, 또 고객들(주로 기관투자자들)의 예금인출 영향으로 순식간에 파산의 위험에 놓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금융기관이 위험해 보이는 시기는 아주 짧았습니다. 2009년 3월 미국 정부가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한 금융기관에는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이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실패한 금융기관에만 선별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과정을 거치며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패닉이 진정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건전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고, 반대로 테스트를 통과 못 한 금융기관에는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건전해졌으니 이래저래 금융기관의 파산 위험을 고민할 이유가 없었던 셈입니다.
특히 미국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어마어마하게 높은 ‘배당’ 혹은 ‘이자’를 물렸기 때문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들은 경영이 정상화되는 순간 즉각 이 자금을 상환하려 애썼습니다. 미국 정부는 대부분 ‘주식’ 형태로 공적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에, 금융주의 주가가 반등하면서 또 많은 시세차익이 발생했었죠.
암튼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 금융권은 다시 자생력을 회복했고 아래의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 금융기관들은 국민에게 왕성하게 대출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과, 실업률도 거의 완전 고용 수준에 떨어졌죠.
물론 모든 게 다 잘 풀린 것은 아닙니다. 심각한 금융위기 과정에서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속출했고,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였습니다. 따라서 아예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제일 좋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금융위기의 진행 과정에 확연해 보일 뿐, 사태가 진전되는 중에는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 몰랐고, 또 어떻게 해야 금융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매우 첨예한 논쟁도 진행되었었죠.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서, 더 나아가 위기가 출현했을 때 최소한의 손실로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이런 회고록을 읽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원문: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