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동성애의 과학’이지만, 실제로는 학계에서 이미 정리한 내용을 보기 좋게 다시 정리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원래 블로그에 2011년 썼던 것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며, 근거 없는 이야기를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이 널리 퍼진 상황에서, 그 오류에 기반한 편견이 타파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다.
동성애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알리는 것은, 결국 그 공고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일단 유명한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1952년 미국정신의학회가 매뉴얼을 편찬하면서 동성애를 정신의학적 장애(Disorder)로 편입시킨 후, 이는 미국 국립정신보건연구소의 막대한 출연을 통한 연구를 통해 엄밀히 검증되기 시작하였다. 이 연구와 뒤이은 연구들은 동성애를 정상적인 성적 지향 대신 장애 또는 비정상으로 간주할 그 어떤 실증적, 과학적 근거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러한 연구가 축적됨에 따라 정신의학, 심리학, 사회과학 전문가들은 동성애를 정신의학적 장애로 규정한 것이 단순히 한때 사회에 만연한 편견에 의해 발생한 부정확한 판단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에 따라,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 DSM에서 동성애를 삭제했으며, 1975년 같은 입장을 발표하면서 관련 정신의학 전문의들이 동성애적 지향이 정신 질환이라는 오명을 없애는데 앞장서 줄 것을 당부하였다. 전문의들과 연구자들은 동성애에 행복하고 건강하며 생산적인 삶을 살기에 그 어떤 내재된 장애물도 없으며, 대다수의 게이 및 레즈비언은 사회 집단에서의 대인 활동에 있어 완전함을 장기간 공인해오고 있다.
동성애가 52년 DSM에 장애의 일종으로 편입되었다가 73년 빠진 이유가 동성애자들의 조직적 움직임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국내에 소개된 이야기들도 대부분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가고 있다. …… 물론 그런 사회적 운동도 한 몫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수많은 연구들이 동성애를 ‘장애나 비정상’으로 간주할 만한 그 어떤 실증적, 과학적 근거도 찾아내지 못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연구가 동성애를 정상적인 성적 지향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대규모의 연구가 있었으며, 그리고 사회적 운동이 있었다.
그럼 52년에 장애로 편입시켰던 건 뭐였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분류는 학회가 이미 ‘사회에 만연한 편견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연구자들은 장기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성적 지향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쓸모없으며 심지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일부 기독교 단체의 ‘성적 지향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정신의학회는 성적 지향을 ‘변화시킬’ 수단도 없을 뿐 아니라 이러한 시도는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 질환을 발생시킨다고 경고한다.
(미국에서) 정신과학과 유관한 그 어떤 주요 단체도 성적 주체성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용인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모든 단체가 이런 시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정신의학회, 미국심리학회, 미국상담학회 등이 포함된다. 또한 미국심리학회는 동성애 연구 치료 연합의 주장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불평등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 Wikipedia, Homosexuality
관련해 미국정신의학회는 공식 입장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또 미국 심리학회 웹사이트에는, 딱 그 부분에 대한 문답이 간단하고 읽기 쉽게 나와 있다.
Q : 동성애는 선택인가요?
A : 아닙니다(No). 인간은 자신이 게이가 될지 스트레이트가 될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성적 경험이 전혀 없는 청소년기 초에 알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에 충실해 행동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심리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의도적으로 변화 가능한 의식적 선택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아닐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준이 아니라 그냥 ‘아니(No)’라고 대답한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정 유전자나 특정 호르몬이 동성애를 결정한다는 이론도 현재로서는 검증되었다 보기 어렵다. 물론 어떤 사회적 영향이 동성애를 결정한다는 이론도 마찬가지로 전혀 검증되지 못했다. 실제로 어떤 연구는 동성애/이성애가 부모의 성적 지향과도 무관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적 영향과 무관함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학계의 입장이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모르겠습니다’란 건 아니다. 미국 심리학회의 입장에서 볼 수 있듯이, “성적 지향은 선천적”이라는 입장이 현재 학계의 입장이다. 다만 “XX라는 요소가 성적 지향을 결정한다!” 같은 식으로 딱 떨어지는 이론은 없다는 것.
정리하자면, 학계의 입장은 40년 가까이 변화가 없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1) 동성애는 질환(Illness)이나 장애(Disorder), 비정상(Abnormality)이 아니며 정상적인 성적 지향의 범주에 속한다. 2) 동성애를 이성애로 변화시키려는 그 어떤 시도도 무의미하며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다양한 정신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3) 성적 지향은 선천적이다. 단, 어떤 특정한 요인이 성적 지향을 결정한다는 설 중 현재로서 주류가 될 만한 것은 없다.
이 글은 결국 정신의학회의 입장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지만, “동성애는 정신병이다”란 주장에 정신의학회나 심리학회의 공식 입장을 가져오는 것 만큼 적절한 수단이 없을 것 같다. 이 문제에 있어 가장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을 낼 수 있는 단체이기도 하고, 그만큼 공신력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
물론 혹자는 기독교계 등이 여전히 동성애가 후천적인 것이며 치료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그 세가 충분히 크기 때문에 이 문제가 여전히 ‘논쟁거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만일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천동설과 지동설 중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논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