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일본 큐슈 구마모토 현에서 발생한 지진은 부산 지역에까지 여파가 미칠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안전지대가 아닌 데다 자연재해 외에도 지금 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재난들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재난은 엄청난 물리적 피해 외에도 우울증, 정신분열증, 알콜중독, 자살 등의 심각한 정신적, 심리적 피해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물론 재난이 발생하면 사상자 구조, 재난 현장 수습이 가장 우선입니다. 생명과 직결되진 않지만 세심하게 이재민들의 마음까지 생각한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재난 지역은 계속 황폐한 곳이어야만 할까: Gap filler project
2011년에 일어난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은 185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피해가 상당했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복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크라이스트처치는 그 당시에도 도시 복구를 위해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이재민들과의 소통을 중시하였는데요. (시민참여, 함께 만들어가는 뉴질랜드 시민소통 캠페인 Share an idea!)
그 중 갭 필러(Gap filler)라는 작은 단체는 지진이 휩쓸고 간 황폐한 재난 지역에 창조적인 공공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팔레트로 파빌리온을 만들어 라이브 공연과 이재민들 간의 소통의 장을 만들었는데요. 이 공간은 여름에 오픈하여 약 70개의 이벤트가 이뤄졌고, 약 2만5천 명이 이 공간을 경험했습니다. 2013년 해체 예정이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재건 캠페인 등 다양한 이벤트를 계속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갭 필러의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디자인적 접근으로 그 지역의 특수성 및 취약성을 이해하고 공간과 이벤트를 구축함으로써 길고 어려운 재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재민도 사적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Paper Partition System
재난이 일어나면 흔히 뉴스에서 재난 현장의 상황과 함께 이재민들이 체육관에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당장 머물 곳이 없는 이재민들은 체육관 등의 넓은 공간에 모여 장기간 생활하게 됩니다. 삶의 터전을 잃거나 가족까지 잃은 이재민들의 생활은 하루하루 참담한 심정일 텐데요. 모두가 재난 현장만 집중하고 있을 때 일본의 건축가 시게루 반은 체육관의 이재민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혀 개인의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대피소에서의 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면 이재민들이 받는 정신적, 육체적 피해가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시게루 반은 종이로 만들어진 관으로 기둥과 대들보를 만들고 천을 걸어 가족들의 개인 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천은 커튼처럼 낮에는 개방해놓고 취침 시에는 닫을 수 있으며, 조립이 매우 쉬워 자원 봉사자나 이재민이 스스로 설치할 수도 있습니다. 또 여름에는 모기 등의 벌레로 인해 괴로워하던 이재민을 위해 모기장을 설치해 주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인 지원 외에도 이재민들의 상황을 진정성 있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이웃의 소식이 궁금하지는 않을까: Code for Namie
코드포나미에(code for namie)는 나미에라는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일본의 개발자 할 세키씨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개발자로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가 일반 시민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수 있는 플랫폼인 ‘코드포재팬((Code for Japan)’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그중 가장 주목받은 사례가 바로 코드포나미에입니다.
나미에 마을은 후쿠시마 원전 옆에 있던 작은 농촌 마을인데요.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 유출까지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나미에 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각지로 흩어졌지만 평생의 터전이었던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그리워 코드포재팬에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코드포재팬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흩어져 있는 나미에 주민들의 마을공동체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직접 나미에 주민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아이디어를 모으는 행사를 열고 이를 통해 아이디어들이 실제 앱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앱을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나미에 마을의 방사능 오염 지도, 현재 사진 등을 서로 공유하며 마을 공동체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의 ‘안전확인’ 기능으로 재난 지역에 거주 또는 체류하는 지인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타임라인에 ‘안전해요’를 표시해 안전 여부를 알릴 수 있는데요. 단순히 그 기능을 넘어서 지난 파리 테러 참사에서는 ‘안전 점검’기능을 활성화하여 현장 인명 파악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재난은 대비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수습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상자 구조, 필요 물품 지원 등 기본적인 과정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그 외에 이재민들의 심리적인 부분까지도 치유해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합니다.
사진 출처: newstomato 글: 산비둘기 발자국
원문: 슬로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