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에이즈 이야기 1: 에이즈의 감염 경로와 동성애와의 관계
원래 글을 여는 문단에 에이즈 검사를 통해 자신의 HIV 감염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에이즈는 바이러스로 전파되는 질병이지만,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인식이 없어 검진이 잘 이뤄지지 않고 병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병식 없이 타인에게 전파하는 경우를 막음으로써 사회 전체적인 예방 효과를 얻기 위해 HIV 검사가 활발해져야 한다는 의도로 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글 말미에서 이야기했듯 HIV 검사로 항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HIV 감염 후 4~12주가 지난 이후이므로, 검사의 민감도가 높다고 해서 검사만으로 HIV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에이즈 검사와 HIV 감염 예방을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없는 바, 앞으로 이 글을 읽게 될 분들이 이를 오인하시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트위터 이용자 렐로님의 지적에 따라 문제될 수 있는 단락을 삭제합니다. 지적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선입견을 넘어
에이즈라는 병에 대한 선입견, 동성애자나 걸리는 더러운 병이라는 인식은 에이즈 검사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보았듯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HIV 감염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긴 하지만, 이는 바이러스가 “앗, 이녀석 동성애를 하는구나! 감염시키자!” 라고 생각하고 움직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성애자 역시 바이러스에 얼마든지 노출될 수 있다.
하지만 세간의 선입견을 무시할 수도 없기에, 에이즈 검사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에이즈 검사는 의원이나 에이즈 유관단체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지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역시 보건소다.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익명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 거의 모든 보건소에서 검사를 하기 때문에 검사가 가능한지 미리 알아볼 필요도 없다.
혹시 말로만 그렇고 사실은 익명성은 개뿔 대충대충 처리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진 않으시는가? 언제나 직접 뛰어드는 탐사정신의 보고 ㅍㅍㅅㅅ(…) 답게, 직접 보건소로 나섰다. 괜히 나도 하는 마음에 불안해서 나선 것 아니다(…)
자, 검사를 받으러 갑시다!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로 간 당신. 일단 보건소에 들어서니 접수대가 눈에 띈다. “저기,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요…” 라고 정직하게(?) 말할 생각이라면, 그런 생각일랑 어서 접어두자. 시작부터 당신의 익명성을 지켜주기 위해, 에이즈 검사는 접수가 필요없다. 쿨하게 지나치자.
보건소 안내를 보고 검사실이 어딘지를 파악해 바로 그곳으로 직행하자. 관악구보건소의 경우 임상병리실에서 에이즈 검사를 하고 있는데, 보건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웹사이트 등을 통해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에이즈 검사를 하고 싶다고 의향을 밝히면 된다. 그럼 검사실에서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익명 검사와 실명 검사 중 어느 쪽을 원하세요?”
여기에서 익명 검사를 택하면 검사실에서 접수번호나 가명 등을 부여해준다. 당연하게도, 이 번호나 가명은 차후 검사 결과를 확인할 때만 활용된다. 혹시 겉으로만 익명 검사고 사실은 국정원을 동원해 당신의 실명을 알아내진 않을까 하는 걱정 따윈 접어두시라. 이건 법으로, 대통령령도 아니고 바로 그 국회에서 망치 땅땅 두드려서 만든 법으로 정한 절차다.
두 자리 접수번호와 검사실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은 뒤 자리에 앉으니 이제 피를 뽑는다. 검사 끝.
정말 몇 초면 끝난다. 정말 이걸로 끝이야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끝난다.
물론 바로 결과가 나오진 않는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보통 2~3일 정도가 소요되며, 검사 전 받은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면 결과를 알 수 있다. 이틀간의 불안감은 심즈 3 ‘모두 잠든 후에’를 즐기며 극뽁.
얼마나 믿을 수 있나요?
이 검사는 민감도가 거의 100%에 육박하는 검사다. 민감도가 100%에 달한다는 것은, HIV에 감염된 사람이 감염되지 않았다고 나올 확률이 거의 없다는 뜻. 따라서 여기에서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면, 정말로 이상이 없는 것이다. 늘 기독교적으로 보수적인 삶을 살아왔던만큼 당연히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땅땅.
다만, 검사에서 ‘이상이 있다’고 나왔더라도, 이게 곧 당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건소에서 ‘이상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게 되면 이후 다양한 검사를 몇 차례 더 수행하여 감염되었는지를 ‘확진’하게 되는데, 실제로 감염된 것으로 확정되는 사람은 개중에서도 약 1~3% 수준에 불과하다.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아니 세상에, 그럼 97~99%가 감염되지 않고서도 감염된 것으로 잘못 진단되었다는 건데, 이런 검사를 믿을 수 있는 것이냐고 말이다. 이런 오진은 왜 생기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현대 기술로는 100% 믿을 수 있는 검사법을 만들 수는 없다.
보건소에서 하는 HIV 검사는 일종의 ‘선별 검사’다. 만일 여기에서 감염인이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결과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이 안심하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하지 않은 성행위를 하고, HIV가 더 많은 사람에게 감염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는 최대한 완벽하게 모든 감염인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실제 보건소의 HIV 검사는 이런 측면에서는 거의 완벽한 검사다.
이렇게 감염된 사람을 완벽하게 걸러내다 보면, 종종 감염되지 않은 사람도 검사 결과의 오차 때문에 감염된 것처럼 검사 결과가 나올 수가 있다. 특히 HIV는 비감염인 대비 감염인 수가 지극히 적은 편이기 때문에 이런 오차가 더욱 극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기술의 한계, 그리고 1차 검사의 목적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오류라는 것. 물론 앞서 말했듯 이것은 최종 검사가 아니며, 실제 감염된 것으로 확정되는 비율은 극히 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하자.
더 간편한 방법들, 검사시 유의할 점
만일 결과가 나오기까지 2~3일간의 시간이 부담스럽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다양한 에이즈 유관 단체나 몇몇 보건소, 의원 등에서는 신속진단이 가능한 키트를 사용하는데, 이 키트를 사용하면 10분에서 한 시간 정도면 결과를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어디에서 이런 신속진단이 가능한지 쉽게 알 수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피를 뽑는 게 무섭다면 구강의 점액을 이용해 검사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도 있다. 이 역시 여러 의원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어디서 이런 검사가 시행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익명 검사는 여전히 법으로 보장되니 안심.
검사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없다. 단, 보통 감염 후 항체가 형성되기까지의 기간을 3~12주로 보므로, 감염이 의심되는 행위를 했을 경우 그 행위가 있은 후 12주 후 검사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건너오는 글에서 이미 이야기했던 바, HIV 감염은 ‘더러운 성행위’에 의해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동성애자들을 노리고 감염되는 것도 아니다. 100% 순결과 정절을 지킨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기적인 검사는 사회 전체적으로 HIV를 예방하고, 개인적으로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