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과 통계의 함정>이라는 글을 읽었다. 먼저 이 글이 반론하는 글 <[인포그래픽] 한국에서는 여성이 생존하기 어렵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한국에서 평균적으로 강력범죄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이다.
- 이런 이유는 강력 범죄 중 성폭력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
- 때문에 여성에 대한 안전을 높일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 주장이 잘못됐다는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사람들은 통념적으로 성범죄보다 상해/폭행까지 강력범죄로 받아들이고 있다.
- 강력범죄 카테고리에 ‘폭행’만 넣어도 강력범죄 피해자의 남녀 격차는 확연히 줄어든다.
- “여성이 강력범죄를 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주장은 모집단 편향이나, 범주의 오류다.
나는 위의 주장이 무엇이 문제인지 논증하고자 한다. 먼저 범주는 알아서 싸매기 나름이다. 다만, 검찰의 보고서에서는 주요 강력범죄를 살인, 강도-상해, 성폭력, 방화, 교통, 이렇게 5가지로 나누고 있다. 귀찮으니 그 통계에 따르도록 하겠다.
첫 번째 문제. 범주 짓기의 오류
링크한 글은 상해/폭행이 통념적으로 성범죄보다 강력범죄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2014년 전체 폭행 범죄 중 상해피해를 입은 경우는 31.5%에 불과하다. 상해를 입지 않은 경우가 68.4%에 이른다. 반면, 성폭력범죄에서 신체적 피해가 없는 경우는 28.2%에 불과하다. 28.2% 중에서도 몰카는 여성에게 엄청난 위협의 대상이다.
또한 경찰청이 명시한 정의를 그대로 따른다면 교통범죄까지 포함해야 한다. 2014년 신고된 폭행은 약 21만 건, 교통은 57만 건이다. 뭘 넣느냐는 말장난이고, 결국 여기에서 여성의 안전 문제를 논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건 넌센스다.
두 번째 문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불균형 문제
매우 간단한 통계를 보자. 아래는 2014년 검거 기준 강력범죄자 성비이다.
성폭력은 성비도 안 밝히더라(…) 아무튼 피해자 성별의 비율을 보자.
나머지 카테고리는 피해자 성별을 밝히지 않는다. 강도, 방화, 교통은 대상이 누가 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가해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남성이 높은 데 반해, 피해자 쪽에서는 여성도 만만찮게 높다. 굳이 그 압도적인 성폭행을 빼더라도.
말장난을 벗어나 본질을 바라볼 때
데이터를 살피는 이들은 “통계는 비키니를 입은 여인과 같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삼고 있다. 많은 걸 보여주지만, 정말 중요한 건 숨긴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는 통계를 왜곡할 때 나올 수 있는 나쁜 결과다. 조금만 더 깊이 살피면 데이터는 상당히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의 범죄 통계를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여성이 약자인지 충분히 살필 수 있다.
얼마 전 1주기를 맞은 강남역 사건의 여혐 여부를 떠나더라도, 여성은 상대적으로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 해당 통계를 검토해준 한 경찰은 노인, 어린이, 여자만 죽이다가, 젊은 남성을 죽이려다 반격에 검거된 무차별 살인범 정남규를 언급했다. 여자라면 다들 야밤에 변태 만나 고생한 경험 하나쯤은 있다. 이 역시 기본적으로 여자에게 완력으로 제압당할 일이 없기 때문에 있는 일이다.
무차별 범죄라 하지만, 사실은 무차별이 아니다. 누구나 만만한 상대 앞에서 나쁜 본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여성은 범죄자들에게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대상이다.
덧. 한국은 점점 불안해지고 있나?
뱀발로, 여성이 느끼는 불안 정도는 한국의 치안이 엉망인지와는 좀 다른 이야기다. <한국에서 유독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가 많은 이유는 뭘까?>에서는 강력범죄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하지만, 2009년 정도를 기점으로 살인, 강도, 방화, 교통 범죄가 꾸준히 줄어드는 추이를 보고서는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단순히 범죄율만으로 치안을 논하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한국은 세계에서 드문, 24시간 술을 퍼먹고 새벽에 토사물을 통해 길거리에서 비둘기와 맞이할 수 있는 나라이다. 생각보다 많은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밤에 집 밖을 나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일 8시간 근무가 확립되면 나가도 할 게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성폭행 범죄율은 놀라울 정도로 10년 내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이 원인을 단순히 여성혐오에서 찾기는 힘들다고 친다 해도, 성의식이 높아지면 범죄 사실을 숨기는 일이 줄어드는 편향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설을 인정한다고 해도 성폭행 범죄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는 판단보다,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보는 게 좀 더 올바른 판단이 아닐까 한다.
(피처 이미지: 주간조선, 강력범죄 여성 피해자 한국 왜 많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