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은 내버려 두면 잘 큰다
딸이 23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다. 이런 여유를 즐기는 자식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나의 젊은 시절은 이런 여유가 없었다. 가족을 어떻게든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렬한 절박감에 시달리면서 살았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나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세상은 어떻게 굴러가는 것이 좋을지 약간은 형이상학적인 고민들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느라 아이들 자라는 것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내 기억으로는 자식들에게 필요한, 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약간의 돈을 대준 것밖에 없다.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결핍을 느끼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들 스스로 알아서 건강하게 컸고, 다들 자기 갈 길을 알아서 갔다. 아마도 60이 넘은 우리 세대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들 자식들에게 충분히 교육적인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자식들이 속 썩이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자라났으니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우리 최씨 집안의 자식들이 다들 그렇다. 누가 크게 참견하지도 않았는데 각자 자신의 역할을 알아서 한다. 아내도 내가 하는 일에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나 역시 내 일에 바빠서 아내의 일에 이러쿵저러쿵할 새가 없었다. 모든 식구들이 각자 자율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왔다.
인천공항에서 딸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와 보니, 공항 라운지에서 텔레그램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마침 오늘이 어버이날인데 아무것도 못 하고 와서 미안하네요, transferwise로 아빠 계좌에 대략 320만 원 정도 넣었어요. 150만 원은 여름휴가에 비행기 표 사는 데 보태라고 엄마한테 주고 왔고…”
나는 아마도 전생에 나라를 여러 번 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자식들이…
딸은 아마도 전생에 후레자식 연대 회원이라기보다는 효녀연합 총수쯤 되었으리라.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마따나 효(孝)는 부모가 자식의 건강과 안위를 생각하는 마음이지, 자식이 부모에게 꽃을 달아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뭐, 아무튼 이런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조직설계와 그 정신의 차이: 직원을 똑똑하게 만드는 유럽계 은행
갑자기 한국계 은행과 유럽계 은행의 업무처리 행태에 대해서 비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과 아들의 ‘삶의 질’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딸은 유럽계 은행 런던 오피스에서 9년째 일하고 있다. 금년 8월이면 10년째다. 펀드상품이나 대출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파는 부서에서 일한다. 정식 이름이 Fund Linked Products라는 부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부서에서 일해 왔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타 부서로 인사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직원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압도적인 전문가가 되어 있다. 맡은 업무에 관한 한 알파와 오메가를 꿰뚫고 있게 된다는 의미다. 관련된 새로운 업무가 발생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암묵적 지식을 쌓아갈 수밖에 없다.
딸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회사에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면,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와 2016년 은행 구조조정이 일어날 때는 대규모 해고가 있지만, 그 중간에도 가끔씩 수시 해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은행이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다. ① 완벽한 업무처리와 ②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기. 그러면서도 ③ 팀워크와 좋은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그러므로 위로 올라갈수록 유능한 사람이 되어 있다. 이 은행의 인사원칙은 직원들을 최대한 똑똑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인정사정없는(ruthless) 분위기다. 그러나 상당히 인간적인(humane) 면이 있다. 대개 오전 9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5시면 퇴근한다.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무능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휴가는 기본적으로 5주를 쓸 수 있다. 물론 연차에 따라 더 쓸 수 있다. 5년 근속마다 3~6개월의 안식년 휴가를 다녀올 수 있다. 감기가 들면 집에서 일하게 한다. 감기든 사람이 꾸역꾸역 사무실에 나오면 오히려 관리자들이 되돌려 보낸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로그인해서 일하면 된다.
물론 런던 오피스에만 수천 명이 일하는 대형은행이라서 그런지 건물 내에 수영장과 헬스장이 갖추어져 있다. 근무시간 중에도 아무 때나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일단 사무실에 출근하면 일이 많아 운동할 시간 여유를 거의 갖지 못한다고 한다. 대개 경비원들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단다. 하지만 딸은 가끔 몸이 찌뿌둥할 때는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이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샤워를 한단다. 직원식당에는 서양식은 말할 것도 없고 중식, 일식까지 골고루 갖추어 놓고 있다. 종교별 예배실과 기도실도 갖추어져 있다.
인관관계 중심의 업무 체계: 직원을 멍청하게 만드는 한국계 은행
이제 아들 얘기를 해보자. 아들은 한국계 은행의 채권운용부서에서 일한다. 아들은 보통 아침 7시쯤 집에서 출발한다. 출근 시간은 대략 30분 안팎일 것이다. 공식적인 업무 시작 시간은 잘 모른다. 오후 7시에 공식적으로 퇴근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저녁 회식까지 마치면 보통 밤 10시, 늦으면 12시가 보통이다. 적어도 분기에 한 번 정도는 길바닥에 토한다.
나는 은행원으로 20년 일한 경험이 있다. 그중에 5년은 은행감독원에서 일했으니까, 우리나라 시중 은행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30년도 훨씬 전 얘기지만, 은행의 업무행태는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은행이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다. ① 원만한 인간관계, ② 부드러운 인간관계, ③ 매끄러운 인간관계다. 여기에 굳이 덧붙이자면 규정에 맞는 업무처리를 추가할 수 있다. 한국계 은행의 인사원칙은 직원들을 최대한 멍청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대단히 인간적인(humane) 분위기다. 그러나 상당히 불합리한(irrational) 면이 있다. 휴가라고 해야 겨우 일주일 정도다. 감기가 들어도 군인정신으로 출근해야 한다. 2~3년에 한 번씩 보직순환이 일어난다.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업무 습득이나 학습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은행 업무에 대한 압도적인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다. 은행원이라고 해봐야 일반인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인간관계에 의해 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무한한 관심이나 전문성을 기를 열정이 생길 수 없다. 윗사람에게 야단맞지 않고 빵꾸 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업무만 해주면 된다. 업무를 잘하기 위해 굳이 학습해야 할 것도 없다. 그러니 위로 올라갈수록 멍청해진다.
아주 높은 윗사람이 하는 말은 아랫사람들이 보기에도 웃기는 얘기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아랫사람이 써주지 않으면 말을 잘 못 한다. 높은 자리에 있어도 무식한 것은 흠이 되지 않는다. 사자성어 몇 개, 새로운 유머 스토리 몇 개만 알면 높은 자리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것이 어려우면 폭탄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다. 퇴직 후에는 전관 자리를 차지하는 방법도 인간관계로 배운다. 조직이 클수록 권력이 많을수록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는 자리는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인간관계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와도 한국계 은행들이 끄떡도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당포 수준보다 못한 한국계 은행들
30여 년 전 한국은행에서 일할 때, 시중 은행들이 전당포 수준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훨 뛰어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해 마시라.) 은행들이 오늘날 과연 전당포 수준을 넘어섰을까? 해운사와 조선사에 거액을 물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산업은행 등 채권은행들은 전당포보다 더 나은가? 아마 전당포도 이런 식으로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은행에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매물로 나온 메릴린치를 사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당시 굼벵이가 독수리를 잡아먹자는 얘기 같아서 웃어넘긴 적이 있다. 우리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는 멍청한 인간들이 은행을 틀어쥐고 있으니 어찌 전당포 수준을 넘어서겠는가.
유럽계 은행과 한국계 은행의 이 어마무시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원문: 최동석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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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커가 한국 와서 고생이 많다: 회사를 살리는 인간 중심의 경영학
왜 이 강연을 만들었나요?
직장인들은 경쟁에서 낙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고민하고, 기업들은 조직의 효율성과 창의성 저하로 고민합니다. 그럴수록 경영자들은 당근과 채찍으로 더욱 쥐어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잘못된 미국식 주류 경영(학)이 인간을 한낱 자원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그런 방식의 경영(학)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강연을 들으면 뭘 알 수 있나요?
경영은 문자 그대로 진리의 말씀(經)으로 조직을 운영(營)하는 행위이고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경영학입니다. 인간중심의 경영과 학문을 배운다면,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이 불안의 근원을 이해함과 동시에 경영과 리더십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사유와 시스템적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이 강연을 들어야 할까요?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인간존중의 조직운영 플랫폼을 학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운영방식에 관한 앵글로색슨 모형과 게르만 모형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직장인이거나 앞으로 올바른 기업경영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강연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 최동석 선생님인가요?
최동석 선생님은 ‘사람을 쥐어짜야 성과가 나온다’는 잘못된 경영학을 비판하며 ‘인간을 단순 자원으로 간주하면, 오히려 생산성과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신념으로 독일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간 중심의 경영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컨설팅, 교수 등 다양한 약력을 통해, 현업과 접목한 진짜 경영의 지혜를 전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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