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북한은 참 특이한 나라입니다. 의사소통의 방법이 협박 외에는 별로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화가 날 때도 협박을 하지만, 뭔가 대화나 협상을 하자고 요구할 때도 협박을 합니다. 문제는 전문가들 조차도 이 협박이 정말 화가 나서 하는 것인지 대화를 하자고 하는 것인지 분간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겁니다. 내가 기념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렸을 때도 칼춤을 추지만, 자기 방에서 라면이나 먹고 가라고 할 때도 칼춤을 추는 여자친구가 있다면 어떨까요.
북한은 아직까지 미국을 자신의 주요한 대화상대로 여기고 있습니다. 각종 제재로 자신을 옭아맸지만 또 그 제재를 풀어줄 나라도 미국이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 미사일을 평양에 쏟아부을지 영변에 쏟아부을지 따위를 결정(전시작전권)할 나라도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과의 협상이 생각대로 이어지지 않으니 애꿎은 남한을 건드리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한도 꽤나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김관진 국방장관의 ‘인질 사건 발생시 특전사 투입’ 발언이에요. 작전 계획이 얼마나 짜여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특전사가 개성 공단에 투입되면 이는 실질적인 전쟁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북한이 가장 발끈한 것도 이 대목에서였습니다. 북한은 이전부터 김관진 장관을 무척 미워해서 군용 멍멍이들에게 김관진 장관의 사진을 붙여놓은 인형을 물어뜯게도 시키곤 했거든요.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북한이 입을 피해가 크다던데요?
북한이 ‘특전사 투입’ 발언 외에 가장 툴툴거렸던 대목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노동자들을 철수시킬 폼을 잡자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폐쇄되면 외화벌이도 못하는데 감히 그러기야 하겠느냐’고 말했거든요. 이 견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져보기 앞서, 츤데레에게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반응할지를 함께 상상해 봅시다.
그런데 전문가들에게 들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북한이 입을 손실이 그리 크진 않은 것 같아요. 왜냐면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을 바로 중국에 투입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인건비 저렴하다던 시절도 이젠 옛날입니다. 이제는 중국도 국내의 노동력보다 더 저렴한 노동력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중국과 바로 맞닿은 나라 하나가 여전히 저렴한 노동력을 자랑하고 있어요. 바로 북한입니다.
중국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에게 한 달에 최저 200달러 정도를 임금으로 준다 하더군요. 우리나라 돈으로 20만 원이 좀 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150달러 정도입니다. 자기네들 노동력 쓰겠다는 나라가 남한 밖에 없다면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돈을 더 줄 수도 있는 데다가 여전히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중국이 있기 때문에, 공단이 영구히 폐쇄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더라도 북한이 입을 타격은 별로 크지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
많은 분들이 대북관계에 대해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이렇습니다. 북한이 억지를 부리면서 난리를 치면 남한은 거기에 질질 끌려다니곤 하니 한심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또 많은 분들이 이번 사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지요. 국력도 훨씬 강한 우리가 왜 자꾸 북한에게 끌려다녀야만 하나요?
그럼 이대로 남북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면서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어떻게 될까요? 공단에 있는 각종 설비들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운영할 능력을 못 가지고 있습니다. 해체하여 다른 지역으로 옮겨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럼 기존의 공단 부지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공단이 생기기 전에 그 자리에 있었던 시설이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뭐가 있었냐고요? 군 부대입니다.
전차 및 장갑차 부대도 있었고, 예비군 아저씨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장사정포 부대도 있었습니다. 북한이 ‘서울 불바다’ 같은 엄포를 놓을 수 있었던 근거들이 지난 10년보다 더 많아지게 됩니다. 장사정포의 위력은 실제보다 과장되어 온 측면이 큽니다. 그렇지만 일단 개성공단 지역에 장사정포가 돌아오게 되면 가장 먼저 종편들이 연일 특보를 내보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거에요.
우리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됩니다. 별로 잃을 게 많지 않은 북한과 하는 게임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가 더 많은 손해를 봅니다. 아마도 북한이 더 잃을 게 많은 경우는 전면전 상황 밖에 없을 거 같군요. 물론 여기서는 ‘모조리 죽고 우리편 한 명만 살아남더라도 우리가 이긴 것’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상대를 잘 관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내부 의사소통도 안 되는 박근혜 정부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사회문제의 정점에 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요 일간지부터 일베에 이르기까지 가장 자주 보는 단어가 ‘종북’ 아닌가요? 정작 문자 그대로의 ‘종북’ 세력들은 요사이 대중의 관심에서 매우 멀어진 듯한데 종북이란 표현 자체는 꾸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라는 질문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답안이 아직까지 없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사실 아직까지 북한 문제는 현재진행형인데다가 천안함과 연평도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답안이 바로 나오기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출된 정부는 공약을 이행하면서 꾸준히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심지어 ‘종북’ 소리를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도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 관계는 잘할 것 같다’는 말이 오갔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로부터도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정부 내부에서도 손발이 안 맞아 벌어진 일들이 근래에 몇 번 있었습니다. 특히 통일부와 청와대 사이에서요.
최근에 있었던 가장 심각한 문제는, 5월 3일에 이미 북한측에서 아직 공단에 남아있는 원자재와 제품 등을 반출하는 문제에 대해서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남한측에 전달했는데 이를 공단 입주기업측에도 알리지 않고 아무런 대처를 취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북한측에서 이를 밝히면서 정부도 뒤늦게 이를 인정한 경우입니다. 입주기업측에서는 펄쩍 뛸 일이지요.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의 입장 발표문을 한번 읽어보세요.
그래도 대화 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북한 핵실험 이후에 미국의 주류 언론의 북한 관련 사설과 기고문들을 보면 많은 논자들이 강경한 대응을 주문합니다. 존 볼튼이나 니콜라스 에버슈타트 같은 대표적인 네오콘들이 총출동하여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뉴욕타임즈에는 한 교수가 ‘북한을 폭격하라’는 기고문을 써서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에도 일견 일리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강경파들은 미국의 강경파들이 인정하고 있는 한 가지를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강경하게 대응하면 결국 또다시 연평도와 같은 무력 도발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강경파들의 기고문을 보면 다들 글의 끝자락 쯤에 “단기적으로는 이런 강경책이 북한의 국지적인 공격과 남한의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도는 인정을 합니다. ‘북한을 폭격하라’고 쓴 교수는 심지어 “아직 전쟁이 한반도에서 그칠 수 있을 동안에 전쟁을 시작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고요. 이런 사람들은 우리 아저씨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한미동맹’에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내놓고 무력충돌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어물쩡 넘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 멀리 미국에서야 포격 당해서 누가 죽든지 말든지 별 상관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입장은 다릅니다. 우리 피붙이가, 심지어는 우리 자신이 죽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인데요. 뭐 어떤 분들은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같은 말씀도 하십니다만.
국민이 전쟁을 원한다면 전쟁도 해야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가능한 선택지를 모두 제시한 적이 있었나요? 지금의 방향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 알려주는 것은 언론의 역할일 텐데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그런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장은 원칙대로 잘하고 있는 것처럼 언론들이 말하고 있지만, 개성공단 자리에 다시 장사정포가 들어서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되면 가장 먼저 호들갑을 떠는 것도 언론일 겁니다.
저는 다소 아니꼽더라도 대화 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북한을 당장 비핵화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남한이 할 수 있는 부분은 현재로선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만큼은 지키지 못하면 남북 관계는 이명박 5년과 소위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