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생 독자 한 분이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세요?”라는 질문을 주셨는데 워낙 바빠 대답을 못했습니다. 다행히 지난 주부터는 조금 시간이 나서 이렇게 글을 올려봅니다.
어려서부터 읽은 책이 몇 권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순수한 책만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잡지나 만화 등까지 포함한 질문인지에 따라 분량이 몇 배 증가하고 또 감소하기 때문이다. 워낙 책을 많이 읽은 탓에 일종의 속독법을 터득해서 난이도가 낮은 책, 특히 소설이나 수필류는 앉은 자리에서 서너 권을 쉽게 읽기에 내가 평생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최근 3~4년을 돌이켜보면 독서 평을 A4 사이즈 한 장 분량 이상 쓴 책이 1년에 50여권 정도이니 연간 적어도 책을 150권 이상을 읽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내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는 책은 기본적으로 ‘괜찮은 책’만 올리기 때문이다.
맘에 안 드는 책을 거론 안하는 이유는 일단 저자가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데다, 더 나아가 안 그래도 작은 독서시장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평을 쓰고 싶은 책 말고, 그냥 읽다 접은 책들이 훨씬 더 많으니 책 150권은 매년 읽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국민연금에 일했던 지난 3~4년이 내 인생에서 책을 가장 적게 읽은 시기이니, 평생 읽은 책이 대략 못 잡아도 6,000권 이상은 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여기에 잡지나 만화, 다양한 판타지 소설까지 포함하면 못 잡아도 1만 권 이상의 책을 읽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체 언제 책을 읽나요?”라는 질문을 꼭 받는데, 책 읽는 시간을 따로 내기 힘든 사람들에게 몇 가지 팁을 일러주면 다음과 같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
첫 번째는 언제나 가방에 책을 한두 권 넣어 가지고 다니라는 것이다. 약속이 제때 이뤄지고 또 사람을 만나면 아무 문제없지만, 너무 일찍 상대를 찾아가거나 혹은 상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 시간에 늦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이때 책을 읽는 것이다. 책 읽는 것을 보고 불쾌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를 통해서 화제를 전환할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두 번째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도 차를 몰고 출퇴근 했었지만, 2012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로 직장을 옮긴 다음부터는 지금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BMW(Bus, Metro, 그리고 Walking의 합성어)를 이용하면 돈도 절약될 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 중에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음의 양식도 쌓고 돈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으니 꼭 한번 시도해보자.
세 번째는 텔레비전 시청시간을 제한하라는 것이다. 나처럼 아예 집에서 텔레비전을 치우는 게 사실 제일 좋지만, 이게 어려운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서만 텔레비전을 틀자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9시 이전에만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아니면 토요일 오후에만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는 식으로 제한을 해보자. 처음 텔레비전을 끈 다음에는 할 일이 없어서 어쩔 줄 모르지만, 조금만 지나면 책 읽기를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재미있는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이 글을 썼다. 수많은 독서관련 서적들이 나오고 또 가이드북도 많지만, 너무 엄숙주의로 흐르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전이나 혹은 명사의 필독서로 꼽히는 책들을 술술 읽을 수 있으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이건 아주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추천서적의 대부분은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책을 고르는 첫 번째 원칙: 베스트셀러를 배제한다
이 대목에서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을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내가 가진 첫 번째 원칙은 베스트셀러를 제일 먼저 배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베스트셀러 중에 좋은 책도 간혹 섞여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관찰한 결과, 다음의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유명인사의 책.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90년대 중반 한국 독서 출판계를 휩쓸었던 유명 기업인들의 책이 될 것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물론 이 책도 재미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유명인사의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40대 중반까지 살아보니, 그리고 수많은 역사서를 읽어보니 사회에서의 ‘성공’은 본인의 노력이나 잠재력 등보다는 ‘운’에 굉장히 많은 부분 의지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1980년대 중반에 대학 입학했기에, 전설적인 투수 최동원의 방어율과 비슷한 학점을 가지고도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당시는 한국 자본주의의 전성기로, 일자리에 비해 공급되는 대학생의 수는 턱 없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특히 나의 전공은 역사학으로, 경제와 별다른 연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배의 추천과 간단한 면접만으로도 연구원에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물론, 내가 그 연구소를 나올 때 상사가 좋은 직장으로 옮길 수 있게 추천까지 해주었으니 적어도 그 곳에서 나는 괜찮은 연구원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더 큰 운은 좋은 부모를 만났다는 것이다. 집에 일단 1,000권이 넘는 장서를 소장했으며,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어머님은 책 읽는 게 인생에서 가장 큰 도락이라는 것을 몸을 체득한 독서가였다. 따라서 나는 어려서 한글 교육 혹은 한문 교육을 제대로 한 번도 받지 않았음에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한글은 물론 간단한 한자를 다 읽고 쓸 수 있었다. 집안 분위기부터 눈만 뜨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매일처럼 무릎에 앉혀서 책을 읽어주는데 어찌 글을 못 깨우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독서가가 된 이유의 상당 부분은 운에 있었다. 그런데, 독서처럼 모방하기 쉬운 분야도 아닌. 사업이나 창작 등 매우 모방이 어려운 분야의 성공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나는 차라리 같은 시간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의 책을 더욱 깊게 파고, 더 나아가 주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책들에게 집중하는 게 더 나은 독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대중매체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책. 예전에 모 방송국에서 책을 소개하는 교양프로를 진행한 적 있었는데, 방송된 책 대부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포진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장 최근 개봉하는 영화의 소설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을 보더라도 방송 등 언론의 힘은 여전하다.
물론, 언론이나 방송에 소개된 책이 다 쓸모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책은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예외에 속한다는 게 내 경험이다. 일단, 사람마다 다 좋아하는 책이 다르기 마련이며 더 나아가 방송이나 언론에서 소개하는 책은 매우 ‘유행’을 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 작년 방송에서 소개했던 책 중에 생각나는 게 있는가?
세 번째, 마케팅의 성공물. 대형 출판사의 전문적인 마케터들이 공을 들여서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앞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베스트셀러들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이런 마케팅의 성공물들은 나에게 그렇게 큰 흥취를 주지 않았다.
일단 내용이 가볍고 또 더 나아가 한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정말 그렇게 몇 가지의 간단한 주장만으로 해명되는 그런 단순한 곳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세상은 매우 복잡한 곳이며, 특히 평면적인 주장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 베스트셀러는 모두 피해야 할 대상일까? 이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아니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정말 좋은 책이라서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오른 경우도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제래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책 『총 균 쇠』가 될 것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매우 황당한데, 모 명문 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출 도서였다는 언론의 보도 때문이었다. 언론의 보도가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는 했지만, 핵심은 명문대학교 학생들이 이 책을 가장 열심히 읽었다는 사실이다. 즉, 오랫동안 입소문으로 “총 균 쇠”가 좋은 책이라는 게 번졌고 또 이 과정에서 광범위한 공감을 형성했던 게 베스트셀러가 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이상과 같은 부류의 베스트셀러를 강조하는 데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런 종류의 베스트셀러가 매우 희소하다는 것이다. 그럼 베스트셀러를 일단 피해야 한다면, 대체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하는가?
책을 고르는 두 번째 원칙: 쉬운 책부터 읽는다
답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를 때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 아닌 쉽게 느껴지는 책부터 차근차근 읽으라는 것이다. 모 작가가 강력하게 권하는 전략, 즉 “고전 읽기”는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독서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은 기본적으로 오래된 책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날아가서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을 본다고 하자. 혹은 최초의 한문 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읽는다고 하자. 단 한마디라도 이해할 것 같은가?
인간의 말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중학교 때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모든 책을 다 읽는 중에, 1950년대에 발간된 책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은 국어 문법이 현재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젊은이’를 1950년대의 책에는 ‘절므니’라고 표기했다. 불과 60년 전에 발간된 책도 이렇게 표기가 다른데 500년 전, 300년 전의 책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당시에 유명했던 책은 다 그때 당시의 주류 생각과 주된 글 스타일로 쓰여 졌다. 오래된 책일수록 현재의 스타일과 다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책 읽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이런 스트레스는 책 읽는 능력과 의지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 나아가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고전을 새로 출간할 때에는 ‘개작’ 혹은 ‘번역’에 가까운 작업을 거쳐, 현대적인 언어로 탈바꿈하는 게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고전이라고 해서, 정말 예전 그 저자의 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괜히 남들의 추천도서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책을 고집하지 말고, 자신이 흥미를 두고 또 잘 아는 분야에 있는 쉬운 책을 골라 읽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공학계열을 전공한다면 ‘알파고’를 다룬 책들을 읽는 식이다. 카이스트의 대표적인 글쟁이로 손꼽히는 김대식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학부에서 배웠던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도 알아보고, 나아가 구글이 어떻게 해서 인터넷 검색시장을 장악했는지 배우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렇게 자기가 잘 아는 분야의 쉬운 책을 골라 읽다보면 점점 더 글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특히 좋은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소설은 내 머리 속에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시작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황석영 작가의 책 『장길산』이 이런 역할을 했다. 책의 주인공인 장길산과 그의 연인 묘옥, 그리고 봉순이의 러브스토리에 일단 전율했고 그들을 갈라놓은 비정한 운명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선하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매우 흥미롭고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계기를 쉽게 제공한다.
물론 소설만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게 아니다. 나는 아툴 가완디의 걸작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나오는 다양한 환자의 사례를 보면서도 마음속에 수많은 그림을 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 책의 내용을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일, 즉 상상을 자극하는 일은 왜 중요한가?
왜 책을 읽어야 할까?
독서는 인간의 두뇌를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하바드 대학교의 스티븐 핑커 교수는 그의 역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독서가 인간 세상에 끼친 공을 설명한다.
나는 인도주의 혁명을 가져온 외생적 변화로서 쓰기와 읽기 능력의 성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중략) 독서는 ‘관점 취하기(perspective-taking)’의 기술이다. 당신은 독서를 통해 그 사람(=저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셈이다. 당신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면과 소리를 접하는 것은 물론,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잠시나마 그의 태도와 반응을 공유한다. (중략)
당신은 타인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그도 당신과 굉장히 비슷한 인간이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어떤 다른 사람의 의식 흐름을 떠올리게 된다. 남의 글을 읽는 버릇을 통해서 남의 생각 속으로, 나아가 그의 기쁨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버릇을 갖게 된다고 말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고문용) 칼을 뒤집어써서 얼굴이 흙빛이 된 남자. 불타는 장작을 밀어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여자. 200번째 채찍에 몸부림치는 남자. 이런 사람들의 관점으로 잠시나마 들어가 본다면, 우리가 그런 잔인한 짓을 누구에게든 꼭 가해야하는가 하는 의문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인의 관점을 취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도 사람들의 믿음을 바꿀 수 있다. 외국인, 탐험가, 역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당연시 되던 규범을 명시적인 관찰로 바꾸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에 대해 ‘그게 우리 부족의 방식인가?’라는 질문으로 사람을 성장시킨다.
이런 자의식은 그 관행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없는지를 자문하게 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중략) 독자를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문해력의 힘은 사실적인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략) 사실적인 픽션도 독자의 감정 이입을 확장시킨다. 자신과는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 314~316쪽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한 글을 보지 못했다. “독서는 관점 취하기의 기술”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과거 판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아가 현실 속에 자신이 봉착한 문제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쉬운 책, 그리고 특히 잘 쓰여진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음으로써 쉽게 상상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는 훈련을 쌓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도입 단계를 거치고 나면, 다음부터는 책을 고르고 읽는 게 매우 쉬워진다. 바로 ‘계통’을 쌓아가는 작업을 거치면 된다.
독서에 취미가 붙은 후에는 ‘개설서’를 읽어라
즉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개설서, 혹은 도입서를 차근차근 읽는 것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려는 독자라면 제일 먼저 『경제교과서』를 읽으라고 권할 것이다. 그런데 『경제교과서』는 학교에서 스승의 강의와 함께 보는 책이기에, 초보자가 이 책을 읽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 전문가가 쓴 도입서가 필요하다. 나는 경제학 책을 제대로 계통에 따라 읽으려는 독자에게 오영수 교수가 쓴 책 『매직경제학』을 권하곤 한다. 이 책은 경제학 교과서에 담긴 다양한 지식을 매우 쉬운 어조로 풀이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장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런 개설서 한 권 읽었다고 이 분야의 독서가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영수 교수의 책은 매우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지만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경제 분야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영수 교수의 책은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출발점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럼 다음 단계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가?
개설서의 참고문헌을 뒤져라! 보물창고가 그곳에 있다!
그 답은 간단하다. 많은 개설서나 교과서가 자주 인용하는 책을 보는 것, 책 끝에 붙은 참고서적의 리스트를 대조해서 겹치는 책들을 읽는 것이다. ‘불황의 경제학(폴 크루그먼)’이 경제학 개설서의 참고문헌에 반복적으로 추천되면 이 책을 읽어본다. 그리고 어떤 저자의 책이 맘에 들었다면 그 저자의 책들을 다 구해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아까 이야기했던 『장길산』의 저자 황석영 작가를 생각해보자. 나는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황석영 작가가 예전에 썼던 책을 죄다 구해 읽었는데, 단 한권도 실망한 게 없었다. 특히 월남전을 대상으로 쓴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은 ‘장길산’에 못지않은 걸작이라 생각했다.
왜 저자의 계통을 밟으라고 이야기하느냐면 결국 이름값만큼 중요하고 믿을만한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를 포함해 수많은 저자가 있지만, 매우 극소수의 저자들만이 ‘읽을 만한 책’을 제공한다. 이건 슬프지만 사실이다. 독서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재능’이라는 점에서 참 평등하지만, 글쓰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재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재능을 갈고 닦는 과정에서 많은 운이 개입한다. 아무리 뛰어난 글쓰기 재능을 타고 났더라도, 어릴 적 부모가 교육에 관심이 없어서 ‘문맹’으로 오래 동안 살았다면? 그가 나이든 다음 글쓰기 재능을 개화하기 시작했다 해도, 수 십 년 이상 글을 쓰고 책을 읽은 다른 경쟁자들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한 권의 빛나는 작품을 내놓았다 해도 글은 자신의 마음에 가득한 어떤 것을 배설해내는 과정이기에 담긴 게 적으면 세상에 내놓을 책의 양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좋은 작품을 쓴 작가, 특히 두 권 이상의 좋은 책을 쓴 극소수의 작가는 다음번에도 괜찮은 작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책을 고르는 가장 쉬운 방법 중에 하나가 ‘이름’을 보는 것일 수밖에.
호적수의 책도 읽어보자: 진정한 관점 취하기의 기술
이런 식으로 어떤 저자의 책을 모두 읽은 다음에 할 일은 이 저자의 반대편에 서 있는 호적수의 책을 보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학계의 유명한 싸움닭인데, 하버드 대학교의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과 매우 격렬한 논쟁을 벌인바 있다. 아무리 크루그먼 교수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반대편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일은 유용하다. 어떤 이슈를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싶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호적수를 찾아 읽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는 게 훨씬 유용할 수도 있다. 나에게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발간하는 보고서가 이런 역할을 담당한다. 아무래도 금융시장의 참가자이기 때문에 크루그먼 같은 케인즈주의 경제학자의 주장에 동조하기 쉬운데, 국제결제은행의 깐깐한 보고서와 논문은 균형감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상과 같은 책읽기 전략은 경제학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나는 파이낸스(이하 ‘재무’) 전공의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경영학자들의 책과 논문도 많이 읽었는데 지금까지 설명한 방식이 꽤 효과가 있었다. 『재무의 이해』 같은 교과서를 한 권 본 다음, 참고문헌에 이름이 자주 나온 유명한 재무학자의 책이나 논문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대리인 이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하버드 대학의 젠슨이 쓴 1970년대의 고전적인 논문을 읽은 후, 그의 후속 논문을 읽어가는 식으로 찾아 읽으면서 이해하기도 쉽고 또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개설서의 참고서적과 작가를 중심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점점 더 고급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책을 읽은 후의 감상도 글로: 책 읽기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마지막 ‘고급’단계는 직접 글을 쓰는 것. 쉽게 이야기해 ‘관점 취하기’의 즐거움을 남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2010년부터 네이버에 블로그를 개설해서 매년 50여 편 이상의 서평을 올리는데 이게 무척 재미있다. 일단 글을 쓰는 순간,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책 읽는 동안 생각 못했던 곳으로 점점 더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남에게 자신의 글을 공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자신의 블로그는 ‘자기만 보기’로 설정해서 글을 써라. 그러다 조금씩 맘에 드는 글부터 이웃들에게 공개하는 식으로 범위를 넓혀라. 맘에 안 드는 쓴 소리가 댓글로 달릴 수도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빅토르 위고나 스티븐 킹 같은 거장들조차, 비평가들로부터 말 못할 질책을 받았는데 우리 같은 범인들이 어찌 쓴 소리를 피해갈 수 있을까?
오히려 맘 편하게 생각하자. 관심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고, 안티도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치부해버려라. 그리고 그 안티들조차 내편으로 만들 글을 쓰자고 마음먹고 조금씩 더 분량을 늘려라. 그러다보면, 어느 날 필자처럼 출판을 생각해보라는 주변의 권고를 듣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물론, 이건 필연적으로 벌어질 운명 같은 게 아니다. 다만, 독서를 즐기고 독서의 단계를 꾸준히 높여가다 보면 붙는 보너스라 생각하고 그날이 언젠가 찾아오기를 편한 맘으로 즐겨보자.
원문: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