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들이 모바일 게임 광고로 몰려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톱스타의 상징이라면 단연 아웃도어 광고였다. 이정재(몽벨), 조인성(블랙야크), 이병헌(노티카), 정우성(레드페이스), 현빈(K2), 장동건(코오롱)까지.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아웃도어 광고에 출연했고, 극장과 안방에서 사람들을 맞았다.
그렇다면 요즘 톱스타 광고의 상징은 무엇일까? 단연 게임 광고다. 그중에서도 특히 모바일 게임 광고계는 ‘별들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넷마블게임즈는 일찌감치 차승원을 앞세워 <레이븐>을 홍보했으며, 웹젠은 장동건을 기용해 대대적으로 <뮤 오리진>의 광고를 펼쳤었다. 이후 찾아온 모바일 게임의 춘추전국시대에 따라 광고 모델 역시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 대부분이 톱스타였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난 2월 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로스트킹덤>의 경우엔 이야기가 좀 다르다. 톱스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할리우드 스타, 그러니까 올랜도 블룸을 모델로 기용한 것이다.
게임사는 왜 톱스타를 모델로 발탁하는 걸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 광고는 인터넷 포털이나 커뮤니티 등 특정한 경로가 아니면 쉽게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시장의 규모가 한정적이었고, 무엇보다 게임을 즐기는 대상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TV 광고와 같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광고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만큼의 효율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렇게까지 세태가 바뀐 데에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먼저 게임 시장의 핵심축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플랫폼의 변화뿐만 아니라 <애니팡> 열풍에서 나타나듯 게임을 즐기는 대상 연령층 자체의 확대를 의미한다. 이제 불특정 다수 대상 광고에서도 성과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클래시 오브 클랜>의 대성공이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제작사 슈퍼셀은 지난해 200억원에 이르는 비용을 투입해 TV, 지하철, 옥외광고, 인터넷을 아우르는, 거의 폭격에 가까운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이는 기존 게임 마케팅의 10배 이상에 이르는 규모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슈퍼셀은 마케팅 비용을 훨씬 웃도는 매출을 올리는 데 성공한다. PC 게임과는 달리 모바일 게임은 광고를 보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게임을 검색하고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모바일 게임의 마케팅 방침이 변하기 시작한다.
모바일로 바뀌고 나선 그렇잖아도 빠른 회전율의 게임 산업이 더욱 급박하게 돌아간다. 특히나 한 달이 멀다하고 신작이 쏟아지기에 초기에 유저들의 시선을 제대로 붙들지 못한다면 준비한 콘텐츠를 보여주지도 못한 채 묻혀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세태에서 톱스타 마케팅은 게임사 입장에선 일종의 불가결한 선택지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한편으로는 톱스타를 유치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그만큼 성숙되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랜도 블룸이라니!
다시 <로스트킹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꾸준히 이어진 톱스타 마케팅에 유저들이 피로감을 느낄 무렵 <로스트킹덤>은 올랜도 블룸이라는 할리우드 스타를 내세움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단순히 ‘할리우드 스타’라는 이름값만으론 뭔가 아쉽다. 왜 하필 올랜도 블룸이었던 걸까?
1. 게이머들과 동년배인 중년 남성
올랜도 블룸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모델의 면면을 살펴보자. 바로 위에서 언급된 리암 니슨부터, 이병헌, 장동건, 이정재, 황정민까지. 공통점이 보이는가? 바로 중년 남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아웃도어 광고가 조인성, 이민기, 김수현 등의 20대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던 것과는 대조된다.
이는 바로 모바일 게임의 핵심 유저층이 30~40대의 남성이기 때문이다. 특히 RPG 장르에서는 20대보다 40대 유저가 더 많은 경우도 상당하다. 모뎀으로 <바람의 나라>를 즐기던 세대가 이제 중년에 접어든 것이리라. 그렇기에 오랜 기간 익숙히 봐왔으면서도, 그 파워는 검증된 중년 남성 스타의 힘은 강력할 수밖에 없다.
2. 판타지적 분위기
톱스타 마케팅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자신들의 콘텐츠가 아닌 모델의 콘텐츠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론 홍보에 좋을지도 몰라도 결과적으론 메인 콘텐츠를 흐려버리거나 플레이어들에게 부정적인 인상만 심어 줄 가능성이 높다. 황정민을 모델로 내세운 <애스커>가 이런 경우이다. 2015년 기대작 중 하나로 평가받던 <애스커>는 배우 황정민과 그의 유행어를 앞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으나, 게임 이미지와는 생뚱맞은 광고 탓에 비판이 많았다. 그 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하고 만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스트킹덤>의 올랜도 블룸 기용은 훌륭한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올랜도 블룸은 <반지의 제왕>, <캐리비안의 해적> 등 판타지 블록버스터로 이름을 알린 배우다. <로스트킹덤>은 이를 차용하되 기존의 판에 박힌 ‘엘프’ 이미지가 아닌 대검을 든 ‘전사’로 연출함으로써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홍보 영상 또한 영화적 연출을 사용함으로써 모델과 게임 둘 모두 성공적으로 잡는다.
3. 화려함과 스케일
광고 모델은 상품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올랜도 블룸의 경우 앞서 말한 ‘판타지’ 배우로도 훌륭하지만, 결국 모델로서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케일이 다른) ‘할리우드 스타’라는 점일 테다.
<로스트킹덤>은 출시 이전부터 꾸준히 ‘스케일’을 강조했다. <로스트킹덤>이 자랑하는 방대한 맵이나 PC 게임과 다를 바 없이 실제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마을 시스템, 레이드·난투장 등 플레이어 간 협동과 경쟁이 이루어지는 멀티플레이 콘텐츠 등은 확실히 그간 다양한 한계로 인해 모바일 RPG가 제대로 구현하기가 어려웠던 부분이자 스케일의 일신이라고 할 만하다. 따라서 ‘할리우드 스타’를 모델로 기용한 건 “우리는 정말 스케일이 다르다”는 자신감이자, 일종의 선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결국 중요한 건 재미다
어떻게 보든 올랜도 블룸 기용은 <로스트킹덤>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이미 적지 않은 게임들이 톱스타 기용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실패하거나,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시 후 첫 성적은 마케팅의 영향이 클지라도(물론 현재 모바일 게임 시장에선 이 또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결국 게임 그 자체의 힘이다. <클래시 오브 클랜>의 대성공 뒤에는 광고 전부터 입소문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게임성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결과만 본다면 <로스트킹덤>의 도전은 비교적 성공적인 듯하다. 론칭과 동시에 양대 앱 스토어 10위권에 진입해 2달 이상 꾸준히 순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초반부의 아쉬움(<로딩킹덤> 같은…)을 감안하더라도 유저들의 반응 역시 상당히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PC 게임에 버금가는 화려한 그래픽과 훌륭한 액션감은 이제 여타 모바일 게임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부분이기에 특별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실시간 마을 시스템이나 방대한 스케일의 맵, 레이드·리그전·난투장 등의 멀티플레이 콘텐츠는 확실히 모바일 RPG를 한 층 더 발전시킨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유저 간 협동과 커뮤니케이션 부분은 기존 모바일 RPG와는 구별되는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적극적인 과금 유도가 없는 것 역시 <로스트킹덤>의 장점이다. 물론 이는 어떤 측면에선 양날의 검이다. 이미 많은 게임들이 과금만 한다면 순식간에 강해질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궁극적으로는 게임의 수명을 깎아 먹는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플레이어에게 바람직하지 못하다. <로스트킹덤>의 방식은 당장의 수익이 좀 덜 나더라도 장기적으로 게임이 유지될 수 있고 꾸준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정식 출시 후 두 달, <로스트킹덤>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았다. 특히 게이머라면 한번 플레이하고 싶을 정도로 멋들어진 광고 영상을 만들어놓고, 실제 플레이는 불가능해(낚시) 원성의 대상이 되었던 ‘아크메이지’의 출시는 <로스트킹덤>을 떠났던 게이머들을 다시 <로스트킹덤>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사실 나 역시 올랜도 블룸을 보고 시작하고 로딩에 지쳐 잠시 접었다가 아크메이지 소식을 듣고 다시 시작한 케이스다.)
이제 모바일 게임 시장은 사실상 정점에 이르렀다. 마케팅의 최정점이라는 ‘별들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만큼 남은 문제는 그에 걸맞은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일 테다. 모델이 누구인가는 결코 게임의 본질적인 요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올랜도 블룸이라는 헐리우드 스타의 후광이 아닌, 게임으로서 <로스트킹덤>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