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연합 뒷돈 의혹에 부쳐, 여러 연합과 공동성명서를 냈다.
어버이연합은 과격하고 투박하다. 세련된 마케팅으로 구린 데를 덮고 아름답게 포장된 공보물을 만들 줄 아는 여느 ‘나쁜놈들’과 다르다. 대놓고 폭력적인 그들은 처음부터 지는 싸움을 한다. 그들의 구호는 누가 봐도 이상하고 비합리적이다. 누가 봐도 나쁜 사람을 욕하는 건 너무 쉽다. 욕하기 딱 좋은 대상은 모든 성찰의 자리를 빼앗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투박한 폭력’보다 ‘점잖은 정의의 폭력’이 더 무섭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야당 국회의원이 독재타도를 외치는 게 더 무섭다. 전국민 사찰법 테러방지법에 분노하면서 헤어진 여자친구의 몰카가 노래로 불려지는 정의가 더 무섭다. 연약한 민중의 고통에 분노하면서 된장녀의 죽음은 에피소드로 지나치는 거룩함이 무섭다. 여성혐오 문화에 그대로 발 담근 채 시전하는, 논리적으로 완벽한 그들의 정의가 두렵다.
더불어 사람을 말하면서, 경제 성장과 개발을 이룩하자는 열정이 무섭다. 열심히 집회에 나가면서 곁의 아내와 딸들에게 밥 한 번 챙겨주지 않을 까막눈이 무섭다. 대의와 거대담론을 외치면서 타인의 삶을 쉽게 재단하고 “도와주겠다” 말하는 무례함이 무섭다. 울고 있는 사람 앞에서 국가폭력을 막기 위해 싸우자는 정의의 논리가 아프다.
누추한 그들을 조롱하면서 빈약한 곁을 돌아보지 못하는 기만이 무섭다. 돈에 영혼을 판 그들을 비난하면서 서랍 속에 영혼을 두고 출근하는 내 하루는 가만히 놔두는 오늘이 더 우려스럽다. 무너지는 중앙권력이 통쾌하기보다 일상 틈새로 파고드는 혐오의 공기가 두렵다.
멍청한 그들과 싸우느라 혈안이 되어, 더 허접하고, 엉망진창이 된 삶을 돌아볼 기회를 잃는게 슬프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손가락 정치만 하고, 그들의 판 안에서, 그들의 언어로 싸우는 거세된 삶이 슬프다. 집회 속, 스크린 속, 활자 속 혁명이 두렵다.
생활에서 정치가 증발되고, 예술에서 정치가 배제된 채, 사랑이 오늘 증발된 줄 모르고 외치는 정의가 무섭다. 곁에서 슬픔에 잠길 새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무섭다.
그들을 욕하는 건 너무 쉽다. 그들을 무너뜨리는건 너무 쉽다. 세상은 그래서 안 변한다. 그들만 무너뜨리려 해서. 사고방식의 회로, 인식의 습관을 성찰하지 않고, 내가 지금 모르는 것이 있다는걸 등진 채 부릅 뜬 정의가 무섭다.
총선승리? 승리가 어딨나. 성공이 어딨나. 그런 게 다 뭔가? 그런 건 없다. 더 슬퍼야 한다. 슬픔 속을 걸어가야 한다.
승리는 없다. 성공도 없다. 도취될 새 없이 삶의 부조리를 응시하고 울고 불며 함께 가는 거다. 침묵 속을 걸을 곁의 관계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어둠 속을, 불확실한 삶을 있는 그대로 놔두지 못하고 말하는 호기로운 정의는 껍데기다.
어버이연합의 뒷돈 의혹에 부쳐
돈 받고 시위하는 게 별 건가 이곳에서
대낮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다에 수장되고도
2년이 넘도록 진실 하나 건지지 못하는데
매일 수십 명씩 자살을 하고
3일마다 한 명의 여성이 남성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곳에서
보수단체가 경제권력에게서 뒷돈을 받은 게 별 건가
1억 2,000만원이 뭐라고
2만원 일당이 뭐라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지진에 성금을 보냈다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국경을 초월한다. 세대와 이념과 울타리를 초월한다. 이것이 시민의식이다. 나뿐 아니라 함께 하는 다른 존재들의 안녕을 생각하는 마음. 공동의 가치를 서로 지켜주는 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다 같이 구하고, 거짓을 거부하는 일. 이것이 애국이다.
어버이연합이 공동의 가치를 져버리고 있다면
진실을 밝혀내 일말의 양심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책임이다.
헌법의 가치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격해왔다.
더 이상 권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이용하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
전쟁 상처에 소금을 뿌리지 말라.
시민은 권력기관이 필요할 때 부르고 부리는 존재가 아니다. 시민은 배후도 지시도 없다. 누군가 지시한 대로 행동하고, 배후가 조종하는 대로 조종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어버이연합과 전경련, 청와대 연루 의혹에 대한 검찰의 깨끗한 수사를 촉구한다.2016년 4월 22일
대한민국효녀연합 / 대한민국효자연합 / 대한민국 자식연합 / 대한민국언니연합 / 대한민국삼촌연합
원문: 홍승희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