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이후 내 입장은 언제나 같았다. 이 사고가 벌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의지가 작동했을 것이라는 가설은 아마도 틀렸을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세월호 사고를 일으킨 적극적인 주체를 찾아서 헤매인다. 누군가가 그 배를 가라앉혔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큰 의지가 숨어서 일을 꾸몄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배가 그냥 가라앉았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시스템이 이렇게 허술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 나쁜 짓, 혹은 그저 게으른 짓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나니 아마도 내 생각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사고와 함께 우왕좌왕하던 그 모든 인간 군상 말이다. 국정원이 관련된 배라는 사실은 사고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그냥 또 하나의 상황일 것이다. 사건 이후에 계속해서 사건을 덮으려 했던 이유가 되는 다른 종류의 문제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국정원이라고 해서 가라앉을 배를 만들려고 들겠나.
진짜 배가 가라앉도록 만든 원인은 아마 각 장면에서 다 시시했을 것이다. 그냥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았을 뿐이다. 배가 수입되고, 개수되고, 운행되는 과정에서 ‘이것이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 라고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하지 않았다. 각자에게 그냥 아주 조금 나쁜 짓이었거나 조금 게으른 짓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누구도 의지를 갖지 않아서 배는 가라앉았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세월호 보고서를 만들면, 그 보고서는 어이없는 장면들로 차 있었을 것이다. 인치를 cm로 표기하거나, 타일 하나를 제대로 부착하지 않거나, 고무링 하나를 빼어먹는 정도의 단순해보이는 행동들의 긴 목록이 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언제나 실수하고, 인간이 언제나 자연스럽게 만드는 문제들 말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언제나 일으키는 온갖 종류의 문제,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비리들의 리스트가 추가될 것이다. 각자가 아주 조금씩 가져간,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 악행의 리스트.
너무나도 일반적이고 시시한 한계들
사고 당일에도 마찬가지다. 판단하지 않는 이들이 큰일을 당했다. 명령을 기다린다. 그들은 판단하지 않도록 요구되는 사람들이었다. 위의 명령을 구현하는 자들일 뿐이지. 진짜로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너무 멀어서 판단을 하지 않았다. 판단을 하면 안 되는 사람과 판단할 정보가 없는 사이의 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은 판단을 유보했다. 청와대는 한가하게 정보를 내놓으라는 명령만 계속했다. 판단하지 않는 말단의 사람들은 청와대의 판단을 구현하는 것만 신경 썼다. 시시하지 않은가? 단 한 명의 영웅이 그때 단 하나의 판단을 내려줬다면, 그 모든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배를 버리라’라고 말하는 단 한 명 말이다.
시시한 사람들의 시시한 행동 때문에 300명의 사람이 죽었다. 배를 버리라는 판단을 누구도 하지 않았다는 일은 놀랍도록 시시한 일이다. 시시한 우리가 언제나 저지르는 그런 종류의 실수와 같은 종류의 실수 말이다. 그것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무참할 정도로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종이 아주 시시한 이유나 행동 또는 비행동으로부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비극을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뇌가 정지하는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는 그 시시한 이유 말이다.
‘어떤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걷어내고 보면, 각자의 행동 양식이 보인다.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하는 척하고 있는 것이 각자가 한 일이다. 각자에게 모두 좋은 이유들이 있다. 각자의 형태로 부족한 정보, 각자의 형태로 자신에게 최선의 판단이었다는 핑계, 각자의 형태로 자기 책임의 권한까지. 너무나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너무나도 일반적이고 시시한 한계들 말이다. 특히나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더 시시해지는 그런 일반적인 인간들 말이다. 그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그것은 사실 훨씬 더 무서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가 배를 가라앉혔을 것이라는 가정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급작스레 큰일을 당한 인간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또 서로 유사하다. 다른 곳에 같은 일이 벌어지면 같은 식으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다. 인간은 시시하니까. 세월호 사고를 풀기 위해 그런 시시한 인간에 대한 반성, 시시한 인간을 돕기 위한 시스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었다.
세월호 사고는 그렇게 일어났다. 그리고 시시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던 청와대가 그것을을 세월호 사건으로 만들었다. 진솔하게 사과하고, 역부족이었음을, 인정하고, 인간이 얼마나 놔두면 엉망으로 일하는 동물인지 고민하고, 그 엉망인 부분을 막는 방법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되었을 일을 키웠다. 시시한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 본 적 없는 대통령을 지도자로 뒀다는 사실이 이 모든 국면에서 가장 큰 사건일지도 모른다.
관련자들 중 어느 누구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악마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어느 한 악마를 죽이면 끝날 비극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두렵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