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양수산부가 부활하며 윤진숙 장관이 들어섰다. 그분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해운 크 크…”의 한마디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해운업계는 해양수산부의 부활에 만세삼창을 부르고 있을까?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부처가 새로 생긴다고 해서 해운업계를 되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애초에 해운은 경기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경기를 만들어내기는 힘든 산업이기 때문이다. 조선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왜 그럴까? 안선생님은 말한다. “너를 위해 팀이 있는 게 아냐. 팀을 위해 니가 있는 거지.”라고. 마찬가지다. 배가 있기 때문에 물건을 날라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물건이 있으니까 배를 나르는 거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조선주는 반토막이 났으며, 해운주는 1/5에서 1/10까지 떨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년 증권사 보고서는 “올해만 버티면 살아난다”고 외치고 있지만, 해운사 내부 분위기는 암울하기 그지 없다.
아무튼 해운업계에 들어가자마자 최전성기를 맞이해 성과급에 감동하다가, 이제 하루하루 잘리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해운회사 직원으로서 해운업과 해운회사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이전 게임 특집 글을 보면서 생각한 건데, 사실 게임으로 따지면 도박만한 게 없다. 그리고 그 도박판 중에서도 지상 최대의 도박판이 바로 해운이다.
해운업이 지상 최대의 도박판으로 불리는 이유
선박항해용어사전에 따르면, 해운업이란 해상(海上)에서 선박을 이용하여 여객이나 화물을 운송하고 그 대가로 운임을 받거나 이에 부대하는 사업을 말한다. 즉, 해운업에서의 핵심은 화물을 운송하고, 그 행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벌크 분야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는 벌크에서는 화물 운송으로 인한 수익창출이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배 장사(…)를 통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배 장사라는 것은 배를 사고 판다는 것으로 해운업에만 있는 특수한 영업형태이다. 말 그대로 배를 매매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배를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진해운에서 독일선주한테 1년간 배를 빌리기로 계약했다. 배를 빌려서 화물운송을 해도 별 돈은 안 된다. 그런데 배 가격이 올랐다. 그리고 현대상선에서 이런 배가 필요하다면, 한진해운은 현대상선에 배를 빌려줄 수 있다. 독일 선주(진짜 배 주인)의 허락은 필요 없다. 그리고 현대상선은 또다시 이 배를 STX팬오션에 빌려줄 수 있다. 뭔가 카드 돌려막기 같지만 하여튼 그렇다(…)
배를 빌리고 빌려주는 가격은 흔히 BDI에 연동된다. BDI는 Baltic Dry Index의 줄임말로, 주식시장에서의 KOSPI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KOSPI와 다른 게 KOSPI는 개별 주가지수 변동에 따라 오르내리는 평균값, 즉 결과다. 그리고 하루에도 장 개장 시간 동안 수시로 지표가 변한다. 그런데 BDI는 하루에 한 번 결정된다. 그리고 수요공급에 따라 움직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도 투기가 더 크다) 되려 BDI가 오르면 BDI가 오르면 배 가격이 오르고, BDI가 내려가면 배 가격이 내려간다.
이렇게 매일 배 가격이 변동되고 여기서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마치 선물과 옵션처럼 이를 이용하여 큰 돈을 벌 수도 있고, 잘못하면 3대까지 망할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사례에 돈을 대입해 보자. 한진은 독일 선주에게 하루 1만불에 배 5척을 1년 동안 빌리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가격 : 1,825만불 = 1만불 x 5척 x 365일) 그리고 BDI가 미친듯 오르기 시작한다. 한진은 이 배의 가격이 하루에 2만불로 오르자, 현대에 배를 빌려주기로 계약을 맺으면서 고스란히 1,825만불(=(2만불-1만불) x 5척 x 365일)의 수익을 확정할 수 있다. 원화로 따지면 약 183억원이다. (1달러=1000원 가정).
게다가 이건 100% 현금장사이다. 그런데 BDI가 또 올라 그 배들의 가격이 4만불로 올랐고, 현대는 STX팬오션에 배를 빌려주기로 계약을 했다. 그러면 현대는 3,650만불(=(4만불-2만불) x 5척 x 365일)을 앉아서 현금으로 벌 수 있다. 365 억원이다. 돈 벌기 참 쉽다. 우리가 벌 수 없을 뿐(…)
적은 돈으로도 도박을 할 수 있는 해운업, 그리고 그 파국…
여기서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러한 배 장사에는 큰 투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해운경험이 있는 직원, 사무실과 전화,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하다. 배 한 척의 가격이야 수백억 원을 호가하지만, 배를 빌리고 빌려주는 데에는 이런 거액의 투자금액이 필요 없다. 해운회사 그만 두고, 회사 하나 차려 밑에 경리 한 명 두고 1만불짜리 배 빌렸다가 이게 2만불로 오를 때 다시 다른 회사에 넘기면 하루에 1만불의 차액을 고스란히 현금으로 먹을 수 있다.
실제로 2007년, 2008년에 이런 일이 벌어졌었고, 우리나라 최대의 벌크 선사인 STX팬오션은 2007년 4천억원, 2008년 58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위의 그림은 BDI (주식시장의 KOSPI와 같다.)의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당신이 만약 1번 시기에 1인회사를 차려 배를 빌린 후 다른 회사에 빌려준다면 떼돈을 벌 수 있다. 2번 시기에 배를 빌려서 3번 시기에 배를 빌려줘도 떼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3번 시기에 배를 빌렸다면 당신은 망한다. 2008년5월20일 11,793point라는 전무후무한 고점을 찍고, 단 7개월만에 666point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주식시장에서 하한가를 18일 연속 맞는 것과 동일하다. -94%이다. 대공황과 블랙 먼데이 따위, 해운업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까 그 사례로 다시 돌아가보자. 현대에서 4만불에 배를 빌린 STX는 떼돈을 벌길 기대했지만 그때가 3번시기였다. 그래서 가격은 떨어지고 떨어져 1만불이 된다면 아무 영업도 하지 않고 3,650억불의 손해를 볼 수 있다. (3,650만불 = (3만불-1만불) x 5척 x 365일) 365억원 적자다. 만약 STX가 이런 적자를 못 이기고 손을 든다고 하더라도, 현대는 한진에게 척당 2만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의무가 남아있다. 그리고 현대도 손을 든다고 하더라도 한진은 독일선주에게 척당 1만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해운부도이다.
2007년에서 2008년에 BDI가 폭등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해운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연간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며, 해운 수요에서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거기에 전세계의 투기세력이 BDI에 돈을 투자하면서 실제 수요 증가보다 더욱 큰 폭으로 BDI가 상승하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기로 인한 BDI의 거품을 인지하지 못했고, BDI가 2만point, 3만point까지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그 거품은 한순간에 꺼지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해운업은 2011년의 반짝 회복을 제외하고 불황의 장기터널에 빠져 있고, 앞으로도 언제 회복될지는 미지수이다.
암울한 해운업와 조선업, 희망의 끝을 잡고…
요즘 해운업은 암울함 그 자체다. 진대제가 정보통신부를 엄청나게 흥하게 했지만, 그런 구원투수가 해운계에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IT야 역사가 가장 짧은 업종이기에 국가주도적으로 산업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해운업은 그 역사가 가장 긴 업계다. 어떠한 정책이나 인물이 업계를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그저 경기 흐름, 그리고 그 도박판의 심리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리고 경기 흐름도, 도박판의 심리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한때 1만을 넘던 BDI는 여전히 1천을 넘지 못하고 있다.
요즘 애널리스트들은 해운업계가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올해만 잘 버티면 저점을 찍고 반등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 매년 했던 이야기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올해만 넘기면… 올해만 넘기면… 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하지만 글쎄… 조선업 이상으로 해운업은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를 벗기 어렵다. 글로벌 버블로 인해 이미 배가 넘칠 정도로 건조됐고, 이미 배는 남아돈다. 이 상황에서 기대심리가 단기간에 올라갈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최근에는 STX가 채권단 자율협약을 통해 긴급 자금을 지원받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조선업 중심으로 중공업, 엔진, 조선해양까지 살리려는 게 목적인 것 같은데… 조선이건 해운이건 다 암울해서 잘 될지는 모르겠다. 규모가 작지는 않아서 경쟁력이 있다는데, 세계 3위 CMA CGM이 파산위기에 처한 게 겨우 4년이 채 되지 않았음을 기억하려는지 모르겠다. 뭐, 어쨌든 정리하자면 해양수산부가 생기든 말든 조선업과 해운업에 별로 좋은 건 없다. 그리고 이 두 업계 사람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위기감 속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