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세월호를 떠올린다
나는 매일 세월호를 떠올린다. 세월호뿐만이 아니라 씨랜드 화재,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대구 지하철 방화, 크림빵 뺑소니를 포함한 모든 음주운전의 희생자를 생각한다. 피해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수많은 사건들의 전체적인 인상은 내 일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호텔이나 극장에 가면 비상대피로를 확인한다. 언젠가 누군가를 한 번이라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방 속에 에피네프린과 주사기를 항상 휴대한다.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탄 사람은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꼭 매야 한다. 물론 나도 택시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꼭 맨다. 모든 자동차 뒷좌석에서도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처음 보는 택시기사의 으레 예상되는 난폭한 운전에 내 목숨을 맡길 수 없다는 불신에 더욱 신경을 쓴다.
안전수칙을 지키고 책임자의 지시를 따르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지만, 백화점 임원과 지하철 기관사와 선장이 의무를 저버린 사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에 그들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물론 그 상황에서 알기는 어렵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판단대로 움직이기로 다짐한다. 물론 그들이 거짓말을 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단순한 지하철 정전 상황에서도 지시에 따르지 않기 위해 청개구리처럼 선로로 나온 사례는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월호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절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백화점과 교량이 저절로 무너진 나라에서, 선진국에서도 종종 침몰하는 배가 한국에서도 침몰했다는 상황에 더욱 놀라지는 않았다.
군대 가혹 행위가 이슈가 되었을 때 입대한 신병들이 가장 안전한 군 생활을 했듯이, 적어도 당분간은 부실공사로 건물이나 교량이 무너지거나, 한 사람의 방화로 지하철이 홀랑 타버리거나, 과적과 변침과 근무 태만으로 여객선이 침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 참사는 분명히 또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것이며, 언제나 그렇듯 예상된 인재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 좀 해주세요. 아마 대지진이나 방사능 누출이 아닐까?
여전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사회
일본 정부와 국민은 매뉴얼에 적힌 상황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비아냥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국민은 그냥 상황이 ‘생기면’ 아무것도 못 한다. 틀에 박힌 매뉴얼조차도 제대로 만들거나 교육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박 사고가 나면 선박 법률을 정비하고, 화재 사고가 나면 화재 법률을 정비한다. 예방주사를 맞고 독감을 가볍게 앓아야 하듯이, 내가 그 희생양이 되기 전에 누군가가 그런 참사를 겪어주기를 기대해야 한다. 정말 한 치 앞도 못 보는 행정이다.
천수를 누린 사람에게도 죽음이란 늘 아쉬운 결말이다. 하물며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은 한결 더 기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름과 얼굴과 사연을 하나하나 짚어 내려가면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호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기억해주고 있다.
그런데 2015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4,617명이다. 세월호 사망자 수의 10배가 넘는다. 그들의 이름은 일일이 호명하기에 너무나도 많고 머그컵에 그려주기에는 얼굴도 모른다. 10배나 많은 죽음의 숫자는 원래 그래왔기에 일상에 불과하고 비참하지조차 않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세월호 선장과 배를 불법 개조한 선주를 욕하며, 나는 결코 배를 소유하거나 운전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게 나를 책임감에서 해방하지 않는다. 책임자를 처벌해도 아직 사건이 터지지 않았을 뿐인 운 좋은 책임자들은 그대로 있다.
그렇다면 내가 책임질 일을 생각한다. 내가 운전하는 차를 작은 세월호라고 생각하여, 내 세월호에 탄 승객들의 목숨에 책임감을 느낀 선장으로서 안전벨트를 매라고 요구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겠지만, 적어도 음주나 태만으로 인해 급격한 변침을 하는 상황까지는 내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건축자재를 빼돌려 부실공사를 할 일은 없어도,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빼먹지는 않으려고 한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얼굴을 머그컵에 그려주거나, 이름을 호명하거나, 가방과 옷깃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거나, 추모교실을 만들거나,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는 것, 책임자를 더 찾아내 처벌하는 것, 세월호의 숨겨진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조사가 많은 이들에게 추모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세월호를 다른 방식으로 추모하며,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려 한다. 눈물이 메마를 때까지 울기 전에, 눈물을 흘릴 일을 줄이는 방법을 찾고 싶다.
원문: John Lee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