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처에 쓴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글을 썼더니 흔한 어그로꾼 하나는 위안부 문제는 어디 가고 세월호를 파냐며 더럽다고 댓글을 달았고, 모 씨는 서해페리호랑 마우나리조트나 기억하라며 욕 댓글을 달았다.
앞의 비난이야 진보적인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인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한 것 같으니 패스. 평화나비-총학 기호2번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 활동가들은 여전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사실 저런 식의 발화의 실체는 대개 자기 자신의 관심이 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밖엔 안 된다.
뒤의 비난은 조금 생각해봤다. ‘그러게, 서해페리호랑 마우나리조트는?’
서해페리호 침몰사건은 1993년의 일이다. 내가 네 살 때 일. 세월호는 내가 사회의식이 충분히 생긴 스물다섯 때의 일이다.
물론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관심 밖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위안부’ 문제가 그렇다. 형제복지원 문제도 그렇다. 다만 어떤 사건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남아있느냐의 문제다. ‘위안부’ 문제나 형제복지원 문제는 그 생존자들이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 문제들은 현재진행형이 된다.
내가 모르고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서해페리호 사건과 관련해 싸우고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연관 사건’으로 다시 되새겨졌을 뿐이다. 많은 사건들이 그렇게 잊혀간다. 불행이다. 세월호만큼은 그렇게 잊히지 않도록 기억하자는 거다. 그리고 나는 서해페리호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기억인 것보다도, 탈규제와 무한이윤추구가 만든 상징적 사건으로서.
마우나리조트는 좀 다르다. 물론 나는 그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역시 탈규제와 무한이윤추구의 사건으로서. 그 탐욕에 죽어간 대학생 동료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당시 새터를 준비하던 대표자였기에 더더욱. 하지만 마우나리조트 사건과 세월호 사건을 경계짓는 어떤 지점 때문에,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말한다.
그 지점이란 바로 ‘국가’다. 구조에 실패한 해경, 사건을 덮기에 급급한 정부, 유가족을 모욕한 새누리당. 세월호가 단순 침몰사고가 아닌, 국가실패로 인한 사건이 되는 까닭이다.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은 희생자들과 사건양상을 기억하자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사건이 왜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것이 해결되지 못하고 이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는지를 기억하자는 말이다. 세월호를 해결하자는 말은 서해페리호도, 마우나리조트도 해결하자는 말이다. 그 모든 사건들이 한데 얽혀있다.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한, 세월호는 여전히 나의 사건이다.
굳이 그들의 댓글에 답을 따로 달고 싶지는 않다. 소통은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지, 받아들일 생각조차 않는 사람들과 하는 건 서로 얘기를 하고 있대도 불통이다. 다만 이러한 ‘비난’들이 우리세대의 일반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
덧: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위안부’든 서해훼리호든 천안함이든 마우나리조트든, 그 자신이 그 사건들을 충실히 기억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무엇에 열심히 신경쓰는 사람에게 “왜 다른 문제는 신경 안 쓰느냐”고 딴지 걸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마음이지만, 이건 염치의 문제다.
원문: 강남규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