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글쓴이 이기정 선생님의 저서 『교육 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의 내용을 발췌·편집한 것입니다.
현 내신제도의 특징
우리나라의 학교 시험은 살벌합니다. 시험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교무실 출입문에는 경고문이 나붙기 시작합니다. ‘학생 출입금지, 시험문제 출제 중’. 대략 이런 경고문입니다. 교무회의 시간에는 교사가 시험감독을 할 때 지켜야 할 규정이 여러 번 반복해서 얘기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수많은 ‘작전지시’가 하달됩니다. 교사감독 유의사항이 빼곡히 적힌 문건을 보면 교사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이 족히 수십 가지가 넘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합니다. 서로 다른 학년의 학생들을 반반씩 섞어 시험을 보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시행됩니다. 한 교실에 두 명의 감독교사가 들어가는 것은 기본입니다. 학생들이 교과서나 커닝페이퍼를 서랍에 넣어두지 못하게 하려고 책상을 전부 돌려놓기도 합니다. 교육의 냄새라고는 조금도 나지 않습니다. 학교 시험은 교육이 아니라 입시입니다. 그것도 살벌한 입시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도 생깁니다. 몇 해 전 B중학교에서 근무하던 K선생님이 제게 해준 얘기입니다.
B중학교는 휴대폰을 가방 속에 넣고만 있어도 부정행위로 간주하여 그 시간의 시험을 0점 처리했습니다. 수능시험과 똑같이 말입니다. 학생들을 겁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시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K선생님이 시험감독을 하는 중에 한 학생의 휴대폰이 울리고 말았습니다.
일단 휴대폰이 울린 이상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시험 중 휴대폰이 울린 학생의 시험점수를 0점 처리한 일이 그전에 여러 번 있었는데 자기만 규정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도 휴대폰의 주인이 나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범인을 찾기 위해 모든 학생의 소지품을 검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휴대폰을 가진 학생이 8명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그 8명의 학생들은 학교 규정에 의해 그날 시험이 모두 0점 처리되었습니다. 규정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행위였지만 K선생님은 이 일로 무척이나 괴로워했습니다. 과연 자신이 한 일이 옳은 것인지,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일인지…
괴로워하면서 K선생님은 핀란드 학교 얘기를 했습니다. 핀란드 학교의 시험 장면이 TV에 방영된 걸 본 것 같았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시험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교사는 조용히 앉아 학생들을 지켜봅니다. 문제를 풀던 학생 하나가 시험지를 가지고 나와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요. 교사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풀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해줍니다. 교사의 조언을 받고 문제를 푼 학생이 매우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학교의 시험 장면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모습이지요.
최근엔 학교 시험과 관련한 제 아내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내의 학교는 답안지에 빨간펜으로 체크만 해놓고 컴퓨터용 펜으로 정식 마킹을 하지 않으면 0점 처리하기로 규정을 정했습니다. 다른 학교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컴퓨터용 펜으로 정식 마킹을 하지 않으면 채점기계가 정답을 읽지 못해 오답 처리를 하게 됩니다. 빨간펜으로 100점짜리 답안을 만들었어도 컴퓨터용 펜으로 마킹을 하지 않으면 0점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여러 번 주의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컴퓨터용 펜으로 정식 마킹을 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학생은 0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학부모의 항의가 매우 거셌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규정이 그런데 학부모가 항의한다고 그 학생만 예외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아내는 그 문제로 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과연 교육적인 것인지 깊은 회의가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아내만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니까 지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까짓 것 그냥 점수를 주면 되지, 뭐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 내신제도에서 도중에 규정을 바꾸어 이 학생의 점수를 올려주는 것은 다른 학생의 점수를 깎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 됩니다. 학교 시험이 곧 입시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특정 학생에게만 어떤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곧바로 다른 학생의 손해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규정을 어겨가며 이런 일을 하게 되면 당연히 다른 학부모의 항의를 불러일으킵니다.
핀란드와 우리나라는 왜 이리 다를까요? 핀란드의 학교 시험과 달리 우리나라의 학교 시험은 교육으로서의 역할보다 입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학교의 시험 장면은 살벌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시행 중인 우리나라 학교 내신제도의 특징은 이렇게 살벌한 시험을 통해 학생 전체를 일렬로 줄 세우는 데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인문계와 자연계로 나누기도 하고 선택 과목별로 나누기도 하는 등 상황이 더 복잡합니다만, 기본적인 내용은 가급적 학년 전체 학생들 동일한 시험을 통해 줄 세우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평가’라는 말에 유의해주십시오. 현 내신제도에서는 이를테면 한 학년 10개 반의 수업을 서너 명의 교사가 나누어 담당해도 시험만은 반드시 동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이 동일하기 위해선 수업내용이 전반적으로 비슷해야 하고, 수업에 사용하는 교재 또한 동일해야 합니다. 결국 현 내신제도는 다음 세 가지 동일성을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
- 수업내용의 동일성
- 수업교재의 동일성
- 평가(시험문제)의 동일성
이 세 가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내신제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생시킵니다. 물론 그 문제점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중첩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각각의 사안을 따로따로 살펴보겠습니다.
문제점 1: 획일화된 수업
학교에서는 전체 학년을 몇 명의 교사가 몇 개 반씩 분담하여 수업을 합니다. 국·영·수 등의 교과는 거의가 그러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내신제도는 세 가지 동일성을 요구합니다.
이 상황에서 어느 교사 한 사람이 기존의 수업과는 다른 새로운 수업을 시도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예컨대 국어교사 홍길동 선생이 매달 학생들에게 소설을 한 권 읽게 한 다음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합니다. 알다시피 학교 수업은 대부분 주어진 교과서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수업입니다. 국어수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홍길동 선생이 그런 수업관행을 벗어나 새로운 수업을 시도한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무엇보다 학생들이 그런 수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기는커녕 온갖 불만을 토로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 낯설어서만은 아닙니다. 수능시험과 논술고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매달 소설 한 권을 통째로 읽고 토론하는 수업은 수능시험과 논술고사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런 수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시험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그런 방식의 수업이 학교 시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 시간에 교과서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수업을 할 것입니다. 시험은 그런 수업에 맞추어 출제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경쟁자인 다른 반 학생들이 시험과 관련된 수업을 받을 때 자신들은 시험과 아무런 관련 없는 수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결국 홍길동 선생이 담당한 학급의 학생들은 학교 시험에서 현저히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됩니다. 내신성적을 둘러싼 경쟁은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의 제로섬 경쟁이니까요.
그러니 학생들이 홍길동 선생의 수업을 좋아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좋고 싫고를 떠나 학생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수업이 수능·논술시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일단 중요한 것은 눈앞의 학교 시험이니까요. 학생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은 교사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교사가 이 부담을 이겨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물론 홍길동 선생이 자신이 담당한 학급의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새로운 형식의 시험문제를 출제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예컨대 수업시간에 읽은 책의 감상문을 쓰게 하는 논술식 문제를 출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교사들의 처지가 매우 곤란해집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교과서를 분석하고 해설하는 수업만을 해왔는데 뜬금없이 그런 시험문제를 내면 어쩌란 말입니까? 학생들의 거센 항의에 시달릴 게 분명한데요.
홍길동 선생이 미리 학년 초에 자신과 동일한 수업을 하도록 다른 선생님들을 설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 한 명이라도 설득하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입니다. 게다가 해가 바뀌면 설득해야 하는 교사가 바뀝니다. 해마다 그런 설득을 되풀이해서 성공시키기란 불가능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홍길동 선생을 긍정적으로 묘사했지만 교사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홍길동 선생은 이상한 사람입니다. 느닷없이 기존 관형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수업과 시험을 시도하면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다른 사람의 처지는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는 처사가 아닐까요.
결국 이러저러한 난관에 부딪혀 학교의 수업과 시험은 기존의 관행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몇몇 교사들이 때때로 새로운 수업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들도 머지않아 주어진 교과서를 해설하고 분석하는 강의식 수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세월이 흐르면 이제 새로운 수업을 꿈꾸던 교사들도 결국 기존의 관행적 수업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수업을 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퇴화합니다. 그래서 또 다른 어떤 교사가 새로운 수업을 하자고 제안할 때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의 관행적인 수업을 강력하게 주장하게 되겠지요. 이래서 학교 수업은 획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문제점 2: 저차원적 수업
획일화라 해도 높은 차원으로 획일화가 이루어진다면 그나마 나은 일입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의 획일화는 반드시 낮은 차원으로만 진행됩니다.
첫째, 서로 수업의 차원이 다르면 누군가가 양보해서 한쪽에 맞춰줘야 하는데 누가 누가에게 맞추겠습니까? 고차원적인 수업을 하는 교사가 저차원적인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모든 교사가 고차원적인 수업을 할 수 있어도 평가의 동일성에 얽매이다 보면 낮은 차원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 교사가 자신의 개성을 희생하가 수업내용을 서로 맞추다 보면 수업의 차원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교사가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수업을 시도하면 어떨까? 교사들이 합심하여 이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시도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교사들이 자신의 특기와 개성을 살린 수업을 하면 그 수업은 서로 많이 다르게 된다. 그러나 시험은 내신제도 때문에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출제해야 한다. 어떤 특정 반에만 이익이 되게 하거나 불이익이 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험은 교사들의 다양한 수업내용 중에서 서로 공통되는 부분에서만 출제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대로 교사의 수업에 압력으로 작용해서 교사들로 하여금 서로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가르치게 만든다. 그리고 교집합이 없으면 교집합을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 결론은 정해져 있다. 학교에서 채택한 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내신제도에서 학교 수업은 필연적으로 주어진 교과서를 해설하고 분석하는 상투적인 수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교사들은 자신의 특기와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교과서만을 해설하고 분석하는 상투적이고 평면적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수업은 단편적 지식의 전달에 머무르게 된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 수업은 가장 낮은 차원의 수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들의 능력도 점차 그에 맞게 후퇴하게 된다.
문제점 3: 노예 시험, 객관식 시험
내신제도는 학교 시험마저도 저차원적으로 획일화합니다. 고차원적인 시험문제는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논술식 시험은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시험은 대부분 객관식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논술식 시험은 전무합니다. 논술식 문제는 단 한 명의 교사만 곤란하게 생각해도 출제하기 어렵습니다.
전체 학생을 엄밀하게 줄 세우는 시험에서 논술문제를 채점한다는 것은 교사들에게 매우 큰 부담입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수많은 이의제기와 항의를 배겨낼 도리가 없습니다. 논술시험에서는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주관도 상당 부분 작용하게 되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모든 교사들이 논술식 문제의 출제에 동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물론 지금도 학교 시험에 서술형 문제가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형식적으로만 서술형 문제일 뿐 사실은 객관식 문제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암기된 지식을 답으로 요구하는 서술형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채점의 곤란함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객관식 시험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객관식 시험이 교육에 얼마나 큰 폐해를 주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교육선진국들에서는 학교 시험이 객관식으로 출제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독일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 학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객관식 시험이 학생들에게 요구하고 강요하는 노예의 길은 크게 두 가지 기술로 이루어진다. 공부하는 기술이 그 하나요, 시험 보는 기술이 그 다른 하나이다. 전자는 주인이 준 것을 충실히 기억하는 기술이요, 후자는 주인이 묻는 것에 충실히 답변하는 기술이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실수는 처벌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자유로운 개인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식과 사유가 자리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
모든 것은 오답을 피한다는 목표로 수렴된다. 노예는 주인이 원하지 않는 것은 피해야 한다. 가장 좋은 노예는 주인이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내놓는 노예이다. 명령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인간과 같은 노예가 가장 좋은 노예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사들이라고 객관식 시험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국어교사 중에는 국어시험을 객관식으로 출제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사들조차도 막상 학교 시험은 객관식으로 출제합니다. 내신제도가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한 이런 현상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점 4: 단 하나의 수업과정
대한민국 학교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수업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래 놓고 학생들에게 그 수업에 무조건 눈높이를 맞출 것을 요구합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업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그것은 온전히 학생의 책임이 됩니다.
제가 작년에 3학년 담임을 할 때 보니, 저희 반 학생 중에서 절반 이상의 아이들에게 고3 수학수업은 외계인의 언어로 진행되는 수업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한편으로 그 아이들 중에는 수학을 상당히 잘해서 학교 수업에서는 아무런 지적 자극을 받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런 학생에게 학교의 수학수업은 자신이 다 아는 것을 확인하는 지루한 시간일 뿐입니다. 물론 수학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영어수업에서도 수학수업 못지않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국어와 과학 등의 교과에서도 상당히 자주 보이는 현상이지요.
하지만 교사들은 이 학생들을 배려할 수 없습니다. 교사들이 불성실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교 교육과정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학습속도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신제도에서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문제점 5: 비교육적 평가제도
내신성적을 둘러싼 경쟁은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의 제로섬 게임입니다. 나의 성적이 오르면 반드시 같은 학교를 다니는 다른 학생의 성적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일렬 줄 세우기를 위한 냉혹한 상대평가 때문입니다.
결국 현재의 내신제도는 (다른 학교 학생들은 조금도 경쟁자가 아닌데) 같은 학교의 학생들을 치열한 경쟁자로 만듭니다. 같은 학년 중에서도 동일 계열 학생들끼리 더 가혹한 경쟁을 하게 됩니다. 동일 계열 안에서는 동일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끼리 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함께 노력해 다 같이 성적을 올려보자는 생각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협력관계가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학교의 시험제도를 모르는 순진한 생각일 뿐입니다. 냉혹한 상대평가의 학교 시험 어디에 우정과 협동 같은 낭만이 들어서겠습니까. 학교 시험에 교육의 가치는 조금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살벌한 입시의 논리만을 따를 뿐입니다.
문제점 6: 패배자를 필요로 하는 제도
입시의 본질은 합격이 아닌 탈락에 있습니다. 입시는 본질적으로 학생을 떨어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시험입니다. 어느 대학교의 입학 정원이 2천 명인데 5천 명의 학생들이 지원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3천 명의 학생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입시에는 탈락자, 낙오자가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지금 학교 시험이 완전히 이와 같습니다. 현재의 내신제도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학생을 낙오자로 만듭니다. 제도 자체가 그것을 강제합니다.
제 둘째 아이는 서울 강북의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지금 제 책상 위에는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올해 중간고사 성적표가 있습니다. 수학 과목의 1학년 평균점수가 41.10입니다. 영어 평균점수는 52.00이고,과학의 평균점수는 47.60입니다. 시험이 대단히 어려웠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수학 만점자 수는 전체 학생의 2%나 됩니다. 영어와 과학고 1%를 조금 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는 수능시험을 쉽게 출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쉬운 수능시험에서 정부가 목표로 하는 것이 만점자 1%입니다. 이렇게 보면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습니다.
하지만 평균점수를 보십시오. 상당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학생들을 위해 무작정 수업과 시험의 난이도를 낮출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만점자가 너무 많아질 테고, 학교 전체에 1등급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교사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평균점수를 높게 해도 문제가 발생하고 낮게 해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의 내신제도에서는 필연적인 딜레마입니다. 이 제도에서는 상당수 학생들이 낙오해 패배자가 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신제도에서는 누군가가 시험의 들러리를 서줘야 합니다. 누군가는 성적의 아래를 깔아줘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아래의 아래를 깔아줘야 합니다.
문제점 7: 사교육에 취약한 제도
학교 시험, 수능시험, 대학별 논술고사 중 어느 시험이 사교육을 유발하는 효과가 가장 클까요. 현재의 상황에서 그 순서를 얘기하려면 대학별 논술고사, 수능시험, 학교 시험 순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별 논술고사의 사교육 유발효과가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수업이 논술고사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논술고사에 관한 한, 학생들은 학교 수업으로부터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논술고사의 사교육 유발효과는 대학의 논술시험 문제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통해서는 논술고사 준비를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능시험은 그래도 학교 수업을 통해 준비할 수 있는 정도가 논술시험에 비하면 상당히 큽니다. 어쨌든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통해 수능시험 준비를 하긴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수능시험은 학생들에게 논술시험만큼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논술고사는 학교 수업을 통해 준비되는 면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학생들이 큰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학교 교육의 잘못입니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받는 것이 논술고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큰 문제입니다.
프랑스와 독일 학생들도 대학에 진학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바깔로레아와 아비투어라는 대학입학 자격고사가 그것입니다. 바깔로레아와 아비투어는 완전한 논술식 시험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학생들은 논술시험에 우리 학생들처럼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만큼 입시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깔로레아와 아비투어가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와 독일 학생들은 학교 정규교육을 통해 이미 논술식 시험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습니다. 학교 수업이 논술시험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평소의 학교 시험이 논술식 시험입니다.
사교육 유발효과가 가장 작은 시험이 학교 시험입니다. 아무튼 학교 시험은 수업시간에 공부한 내용이 출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 시험의 사교육 유발효과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작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논술고사와 수능시험에 비해서는 작지만 그 격차가 아주 크지는 않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면 생각되지 않습니까. 학교 시험은 학교에서 수업한 내용이 상당 부분 그대로 출제됩니다.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문제를 출제합니다. 그렇다면 학교 시험의 사교육 유발효과는 거의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이것은 중학생 대상 학원의 상당수가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원이라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왜 이런 형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물론 경쟁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학원 강사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학교 시험은 학생의 성적을 올려주기가 상당히 쉬운 시험입니다. 사실 대학별 고사나 수능시험보다 학교 시험의 성적을 올려주기가 훨씬 쉽다는 것은 웬만한 학원 강사라면 다들 인식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학교 시험은 1980년대의 학력고사와 성격이 아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원 강사 생활을 시작한 것은 학력고사의 마지막 해였습니다. 훗날 생각해보니 학력고사는 그야말로 학원 강사에게는 최고의 시험제도였습니다. 특히 저 같은 국어 강사에게는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학원 강사 생활을 시작한 지 반년쯤 돼서 교과서를 거의 암기해버릴 수 있었고 시험문제에 나올 만한 요소를 훤히 꿰뚫어볼 수 있었습니다.
사교육이 줄어들려면 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차원이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의 학교 교육에서는 학교 시험에 대한 준비조차도 학교가 학원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 글쓴이 이기정 님과 함께하는 어벤져스쿨 특강!
교사가 본 헬조선 끝판왕: 공교육 현장과 입시제도
왜 이 강연을 만들었나요?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1/3은 잡니다. 학기가 한 달만 지나가도 다음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1/3은 이미 선행학습으로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는 상태이고, 교사는 오직 1/3의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합니다. 이런 문제의 대안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강연을 들으면 뭘 알 수 있나요?
교사들은 아이를 케어하고 싶어도 잡무에 시달리느라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정부는 사교육을 잡겠다고 입시제도만 바꿉니다. 바뀔 때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학부모와 학생에게 가고, 부유층 아이들만 편해집니다. 한국 중등 교육이 왜 이처럼 헬인지를 이야기하고, 그 대안과 함께 학부모와 학생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이야기합니다.
왜 이기정 선생님이지요?
이기정 선생님은 민주화 운동으로 복직되기 전까지 직접 사교육을 체험했으며, 지금은 교사로 근무하며 교육 개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현직 경험을 통해 문제와 대안을 좀 더 냉철하게 읽어낼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 강연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