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중식이밴드 사태를 지켜보며 참 많은 감정이 들었던 정의당원 중 한 명입니다. 정의당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 만큼, 그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젠더적 입장과, 정의당의 대처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고 싶어 글을 썼습니다.
0. 여성혐오란 무엇인가
중식이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우선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오해와 달리, 여성혐오(Misogyny)는 단순히 ‘여성을 혐오하는 것(Hatred for women)’이 아닙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여성에 대한 남성중심적 편견, 나아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21세기에도 많은 여성은 ‘객체’, ‘도구’, ‘소유물’, ‘뮤즈’ 등의 위치에 놓이고 있으며, 여성혐오는 가부장 사회에서 자라온 여성 본인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사상입니다.
1. 중식이 밴드의 가사에 대하여
우선 <야동을 보다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잠시 나의 눈을 의심했어 네가 앞에 나타나니까
잠시 커버렸던 나의 그것도 고개를 숙이며 울었어
첨엔 네가 아닐 거란 생각에 멍하니 널 쳐다보다가
유두 옆쪽에 큰 점이 있더군 맞아 기억나는데
너의 유방 삼국지 나의 첫 여자 친구의 야동손으로 가린 얼굴 설레어 아는 얼굴 이제는 늙어버려 주름이 늘었구나
그래도 예쁜 얼굴 그리운 아는 얼굴 내 품을 떠난 너는 나쁜 놈 만났구나 조용히카메라를 보는 너 모니터를 보는 나
우린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전혀 상관없는 남인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너를 사랑했던 내가 그때 그 시절 네가 떠올라
담배 꺼내 물어봐 한숨에 연기 뿜어봐
서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전혀 상관없는 남인데 왜 자꾸 성질이 나지
너를 사랑했던 나는 지금 화가 나서 가슴이 타올라아직 나는 백수로 살고 있어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술 먹으면 개가 되지 너와 헤어진 지금도
너는 나랑 헤어지길 잘했다 생각했었는데도
너의 남자친군 씨발놈인 것 같아
얼굴 찍지 말래도 지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카메라를 보지 마 그런 눈을 하지 마
네가 다른 누군가와 사랑하는 모습 보여주지 마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나랑 사귈 때에 너는 저런 체위한 적 없는데
화면으로 보니까 내 꼬추가 더 크다
네가 나를 떠나 만난 사람 존나 작은 변태 새끼야
야동 보는 나도 뭐 그래 나는 외로워서 그래 밤에 잠 안 와서 그래
혹시 이 가사를 보시면서 리벤지 포르노로 피해를 입은 후 한동안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실제 여성분들을 생각해보신 분 계신가요? 리벤지 포르노는 한 남성의 딸감이나 감성 팔이로 소모될 수 있는 영상이 아닙니다. 명백한 범죄입니다.
<야동을 보다가>의 가사에서 전 애인을 향한 중식이의 사랑이 느껴지시나요? 정말 그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랑했다면, 사이버수사대에 연락해서 이 영상이 온라인에 흔적도 남아있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왜 날 떠나서 그런 시발놈한테 갔을까 되물을 시간에요.
실화처럼 전달되도록 쓰인 저 가사를 여성분들이 봤을 때 어떤 불쾌감과 두려움을 느낄지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누가 저걸 찍고 배포했건 간에, 중식이가 저걸 볼만큼 이런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는 어떤 여자를.
잘 안 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남성분들은 더욱 그러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 번도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본 적이 없는 것과 관련이 있겠지요. 저는 만약 중식이가 그런 불쾌감과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저런 가사를 쓸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여성혐오’의 사례입니다. 여성의 인격에 남성인 자신의 인격과 동일한 무게를 두지 못하는 것. 머리로야 동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짐작컨대 무의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라면 하다 못해 눈이라도 가렸을 것 같습니다. 화면 속에 있는 그 여성은 찍히는 걸, 그리고 보이는 걸 원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2. 정의당과 선데이 서울
그리고 <Sunday Seoul>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문제적 현실을 짚어내고 이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혐오가 아니라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모든 노래 가사에서 여성혐오의 혐의를 찾아내 심판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노래의 가사는, 창작자, 즉 중식이밴드가 가진 편견대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정의당원이 아니라면, 이런 노래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과 함께 문화소비자의 일원으로서 대응할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당과 얽힌 이번 사태에서의 핵심은, 자칭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이 중식이밴드를 청년의 대푯값으로 선택했다는 겁니다. 가사를 보시면서 남성 청년의 대푯값(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알바를 하는 남성)과 여성 청년(성형값을 갚기 위해 몸을 파는 여성)의 대푯값을 비교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혼한 내 친구는 술취해 물었지 가난이 죄가 되냐고?
친구야 꿈이 있고 가난한 청년에겐 사랑이란 어쩌면 사치다
나는 힘없는 노동자의 자식 낭만이란 내겐 무거운 사치다
아직은 꿈많은 책임질 것 없는 청춘이라서나는 아직도 노래 부르며 산다빚까지 내서 대학 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해도 취직 못 하는 자식
오늘도 피씨방 야간알바를 하러 간다
식대는 컵라면 한 그릇하루의 첫 담배는 날 행복하게 하지 담배도 끊어야 하는데
어디서 돈벼락이나 맞았으면 좋겠네
나의 기타 나 대신 노래좀 불러줘빚까지 내서 성형하는 소녀들
빚갚으려 몸파는 소녀들
홍등가 붉은 빛이 나를 울리네
이 노래가 나를 울리네
전 솔직히 중식이밴드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자친구도 있고 누나도 있고 엄마도 있으신 중식님, 태어나서 제일 많이 본 여자가 빚까지 내서 성형을 하고 빚 갚으러 몸을 파는 소녀들인가요?
생계를 이유로 혹은 자의적 선택으로 성노동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된장녀-성형-취집’이라는 전설이 남성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곧 신화가 되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빚까지 내서 성형하는 소녀들, 빚값으로 몸파는 소녀들’이란 문장은 너무 위험한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중식이밴드가 본인들의 세계관, 가치관을 가사에 녹여내는 것은 사실 제 알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정의당은 다릅니다. 정의당은 중식이밴드와 콜라보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외모지상주의가 극심해진 사회,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성형을 많이 한다는 사실에도 의미를 두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물론 ‘문제적 현실’일 것입니다. 동감합니다.
그러나 ‘문제적 현실’ 가운데 무엇을 ‘문제’로 설정하는 게 온당할까요? 세상에는 분명 가난의 무서움을 모르고 철없이 아이나 졸라대는 여자, 나쁜 애인에게 몰래 찍힌 포르노 속에서 중식이를 만난 여자, 빚내서 성형하는 여자가 존재하지만, 왜 ‘아이 갖기를 원하는 여자’가 ‘철없이 아이 갖기를 조르는 여자’가 되었는지, 왜 이 여자는 ‘빚까지 지면서 성형’을 해야 했는지, 왜 이 여자는 동의 없이 찍힌 화면 속에서 중식이를 만나야 했는지, 이 모든 것은 정치의 영역에 속합니다. 정치는 이런 것들을 되물어야 합니다.
중식이밴드의 가사는 ‘정치적 사유의 확장’이 아닌, 문제적 현실을 속에서 애쓰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낙인’과 ‘족쇄’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가사를 그렇게 받아들이신 분들이 처음으로 중식이밴드의 여성혐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신 거고요.
3. 여성의 당사자성에 대하여
정의당 당원 게시판을 보며 제가 가장 크게 놀랐던 것은 ‘여성들이 중식이밴드의 노래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무시하거나 폄하하시는 남성분들이 계셨다는 겁니다. 당사자인 여성이 가사에서 위협과 혐오를 감지하고 있다는데 거기에 굉장히 함부로 말을 덧붙이시는 걸 보았습니다.
질의나 토론,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서로 다르며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니까요. 그러나 그 누구도 약자나 소수자가 느끼는 피해에 대해서 민감하다거나 피해의식이라거나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분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여기서 젠더 문제와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같냐고 느끼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저는 그것에 대해선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분이라면 남성중심적 사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분일테니까요.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당장 여성들이 호소하는 피해에 대해서 공감이 안 가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는 당사자들에게 더 많이 묻고 공부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의당을 지지하시는 분들이라면 더욱 더요.
혐오를 전시하는 발언에는 그 누구도 표현의 자유를 들이밀 수 없습니다. 흑인에 대한 혐오를 전시하는 백인 가수의 가사는 사회적 지탄을 받기 마련입니다. 젠더 문제라고 해서 ‘정의’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죠. 총선에서 여성 유권자들을 놓치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정의’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