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는 요금이 아니다
장애인 주차장에 비장애인이 주차를 하면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과태료는 장애인에게는 무료로 주차를 하게 해준다거나, 비장애인에게 주차요금을 추가로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장애인 주차장에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은 주차할 수 없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이미 일어나 되돌릴 수 없는 행정적인 위반은 사후에라도 제재하겠다는 의지가 과태료다. 고작 조례 위반으로 거창하게 차량을 압류하거나 운전자에게 징역을 선고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10만원의 과태료는 의외로 위반을 방지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운전자가 다른 유료주차장을 알아보거나 차라리 길가에 대서 불법 주정차 딱지를 끊는 편이 더 싸게 먹히기에, 위반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태료나 심지어 벌금이라 해도 돈의 힘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많다.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에 버스만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규칙은 보다 많은 사람이 도로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탑승 인원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차종별 최대 탑승 인원을 적발 기준으로 하였다. 그래서 텅 빈 버스라고 할지라도 버스 전용차선을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의 예외는 사회적으로 용납되리라 생각된다. 승합차는 여러 사람을 자주 태우기 위해 구입하는 차니까.
그런데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꼼수가 있었다. 한 재벌 회장이 고속도로 체증으로 짜증이 나자, 아예 벤츠 버스를 사서 혼자서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닌 것이다. 당연히 차의 최대 승차 인원을 기준으로 만든 법에는 걸리지 않지만, 버스전용차로제도의 의의를 생각해 본다면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은 맞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롤스로이스를 타고 편안하게 그러나 빠르게 가고 싶은 회장님에게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냥 가고 싶은 만큼 달리면 된다. 속도위반 과태료? 푼돈이야 내면 그만이다. 운전자 면허 취소? 다른 운전기사를 고용하면 그만이다. 차량 압류? 롤스로이스 하나 더 사면 된다. 이것이 돈이 만드는 권력이다. 그런데 고속도로 속도제한의 취지가 과속 차량에게서 고속도로 추가 이용료를 걷는 것이 아니라면, 과태료가 아무리 푼돈으로 느껴지더라도 일단 신의 성실하게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속도위반 과태료는 과속 가능 요금이 아니기에.
과태료를 내고 TV 토론을 거부하는 후보들
북한에서도 선거를 한다. 단지 찬성이 아닌 표를 던질 자격이 없을 뿐이다. 투표를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투표를 하지만 투표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은 완전한 민주주의일까?
대다수의 국민이 실제로 얼굴을 본 적도,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는 후보를 뽑게 되는 현대사회에서, TV 토론회는 후보자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마치 범죄 경력이나 재산 상황이 후보자의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고지하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유세가 아니라 검증의 장인 것이다. 어쩌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름 석 자보다도 후보자의 토론 내용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며, 이것이 필요 없다고 느껴질 정도라면 차라리 비례대표 선거만을 남겨도 무방할 것이다.
충분히 짐작이 가는 전략적인 판단 아래, 너 나 할 것 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과태료 400만원을 내고 TV 토론을 거부하였다. 그들에게 과태료는 TV 토론에 빠지는 옵션을 선택하는 요금에 불과하다. 다른 표현으로는 TV 토론을 하면 선거 비용을 조금 깎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무나 막 밟아댄 시승차를 조금 싸게 사면 찝찝하듯, 누구한테 밟힐지 모른다는 찝찝함이 그보다 크니까.
어차피 당선되기만 하면 400만원이든 4,000만원이든 남의 돈으로 메꿀 수 있다. 지면 모든 판돈을 잃는다. 그러니 해도 되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지를 신경 쓰라. 법을 지켜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과태료가 얼마인지를 생각하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이러다간 그냥 체육관 선거로 당선되어 놓고, 전 국민 투표를 하지 않은 과태료 10억원만 내면 퉁쳐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굳이 이름을 거명할 필요도 없다. 싸잡아서 욕하고 싶으니까.
원문: John Lee 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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