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는 일본의 여성 천황 문제가 어떠한 배경에서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가라앉았는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남자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국회에서까지 심각하게 논의되었던 여성 천황 문제는 2006년 사내아이가 태어남으로써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당시 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일본 언론에서 보여줬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의 불씨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지적은 있었지만 정작 이 문제의 함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짚은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한국과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일본의 여성 천황 문제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헌법개정 논의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본 헌법 개정 논의의 핵심 : 어떻게 일본의 전쟁을 불가능하게 할 것인가?
일본에서 헌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보도될 때마다 한국과 중국 등의 주변국은 강하게 우려해 왔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세계의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헌법을 개정하지만 어느 나라도 일본과 같이 비상한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그리고 국가의 주권 개념을 생각하면 헌법 개정 문제에 다른 나라가 입을 여는 것 자체가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렇다면 일본 헌법은 뭐가 문제길래 그걸 바꾼다고 말만 나오면 여기저기서 두드려 맞는 동네북 신세가 된 걸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지난 세기 일본은 거의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패전한 국가다. 오늘날 일본 헌법의 기원은 바로 이 전후 처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직 동아시아에서 냉전이 시작되지 않은 시기에 미 군정, 특히 사령관이었던 맥아더의 의향에 강한 영향을 받아 영어로 초안이 작성된 것이 바로 일본 헌법이다. 그리고 이 헌법을 둘러싼 논의의 초점은 언제나 ‘9조’에 맞춰져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장 전쟁의 포기
제9조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
제2항 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戰力)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는 일본이 전쟁을 못하게 해 두겠다는 의도가 매우 분명히 드러나는 조항이다. 당시 미 군정에서는 일본을 농업국가화해서 아시아의 스위스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헌법이 만들어질 때는 이렇게 이상적인 조항이 그럭저럭 수용 가능했지만 세계의 정세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사실 50년대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는 미국의 경찰예비대 설치 및 병력 증강 요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북한 정부가 수립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며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이에 따라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고, ‘전력’이 아닌 경찰예비대를 갖게 된다. 이 경찰예비대는 이후 육상자위대가 된다. 모든 헌법 개정 논의의 초점은 이 9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아예 전력 보유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국방군’으로 명기하자는 안부터 오히려 현 9조의 내용을 보다 더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하자는 안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이러한 일본의 헌법개정 논의에 대한 국내의 보도는 천편일률이다. 이들 기사에서 주로 사용되는 수식어는 ‘용의주도하게’ ‘교전권 획득을 노려’ ‘군국주의 부활의 신호탄’ 등이다. 그러나 이른바 ‘9조 문제’는 일본 군사력의 현실과 헌법 규정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이미 일본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90년대 이후에는 제한적이나마 자위대의 해외 파병도 이루어지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전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주목하려면 오히려 다른 지점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실마리가 되는 것이 바로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여성 천황 문제이다.
여성 천황 논의와 헌법 개정 문제, 그리고 아베 총리
앞의 글에서 밝혔듯이 일본 천황가의 남자아이 기근이 극에 달했던 2004년(자그마치 40년 가까이 남자가 태어나지 않았다), 일본 자민당은 처음으로 개헌 요강을 공개한다. 여기에서 기존에 논의되어 왔던 9조 문제와 함께 천황 계승에 대한 규정도 개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천황의 자리를 계승할 수 있다고 명기하고자 한 것이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자민당(이라 쓰고 일본의 핵심 지도자들이라 읽는다)이 여성 천황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근 논란을 일으킨 자민당의 헌법 개정안(2012년 4월 발표)이 작성될 때에는 여성 천황과 관련된 논의가 전혀 없었다.
여기에는 당분간 천황 계승 문제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이 작용하고 있지만, 만약 다시 그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여성 천황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문제에 극력 반대하는 ‘황실의 전통을 지키는 국민의 모임’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이기 때문이다. 이 ‘황실의 전통을 지키는 국민의 모임’은 여성 천황론으로 시끄러웠던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6년 3월에는 ‘황실의 전통을 지키는 1만인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 출석한 여야당 국회의원은 86명(대리 출석을 합치면 164명)에 이른다. 당시에 결의된 주요 내용은 (1) 남계에 의한 황실 계승 유지를 위해 구체적인 안을 검토하고 제시한다 (2) 황실에 대한 경애의 마음을 높이기 위해 학교 교육의 내용을 충실히 할 것을 요망한다 등이었다. 2012년에는 설립 총회를 열고 정식으로 발족했는데 이 때 아베 신조 현 총리가 등단하여 인사를 했다.
자민당의 2012년 개헌안과 되살아난 가족주의
자민당의 2012년 개헌안은 여성 천황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전통적 가부장제 부활’의 느낌을 강하게 준다. 몇몇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가족, 혼인 등에 관한 기본원칙) 제24조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단위로서 존중받는다. 가족은 서로 돕지 않으면 안된다.
식견이 좁기 때문에 헌법에 이러한 조항을 규정한 다른 국가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한다는 헌법의 역할을 생각하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조항이다. ‘가족’의 중요성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고 국가는 변화하는 가족상에 맞추어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인데, 대체 이러한 조항을 왜 집어넣으려 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떠오르는 것이 1941년, 일본의 파시즘이 막장으로 치달아가고 있던 때에 일본의 문부성에서 간행했던『신민의 길(臣民の道)』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우리나라가 가족국가라는 것은, 가족이 모여서 나라를 형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즉 가족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개의 가족은 나라를 본(本)으로 삼아 존립하는 것이다.”
나치즘을 비롯한 전체주의 사상은 대체로 국가유기체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국가는 개인과 사회적인 계약에 의해 성립된 가상의 기관이 아니라 생물과 같은 유기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 속에서 개인과 가족은 국가라는 공동체(나치의 용어로는 민족공동체)를 구성하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시민 대 국가’라는 근대 국가의 기본적 도식이 사라지고 ‘국가의 신민’(제국 일본) 또는 ‘아리아 민족의 피와 땅’(나치 독일)이라는 도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독신이었던 히틀러가 항상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나치 독일의 고위 간부 집에는 화목한 가족사진이 반드시 걸려 있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특히 일본은 이것이 ‘천황제’와 연결되면서 특유의 전체주의 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천황제는 가족국가론과 그리 강하게 연결되지 않았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룬다. 제국주의 일본의 대표적인 철학자 이노우에 테쓰지로 역시 그의 저작에서 “우리나라는 종합 가족제도의 궁극에 달한 것으로, 그 가장은 천황이다”(『우리의 국체와 가족제도』1911년)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지점에서 ‘가족주의’와 천황제는 연결된다. 만세일계의 천황은 가족국가인 일본의 가장인 것이고, 그 구성요소로서의 가족은 교육을 통해 국가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천황을 반대한 아베 신조 총리는 자신의 1차 내각(2006.9-2007.9)에서 새로운 교육기본법을 통과시킨 바 있는데,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키워 온 우리나라와 향토를 사랑함’을 교육의 목표로 추가한 바 있다.
‘초국가주의’와 현대 일본
위에서는 가족-교육-전통-천황제의 논리를 강조하는 자민당의 멘탈리티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개헌안의 다른 조항에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 조항을 보자.
(사상 및 양심의 자유) 제19조 사상 및 양심의 자유는 이를 보장한다.
(재산권) 제29조 재산권은 이를 보장한다.
얼핏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는 조항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행 헌법에 해당하는 조문에서는 ‘이를 보장한다’가 아니라 ‘(국가는) 이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라고 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개헌안에서 제시하는 조문에서 ‘국민의 자유와 재산’은 ‘침해당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주는’ 권리로 변한다. 이러한 시혜적 규정은 특히 다음 조항에서 잘 드러난다.
(헌법 존중 옹호 의무) 제102조 모든 국민은 이 헌법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조항 역시 다른 어느 나라의 헌법에 혹시라도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근대 국가의 헌법이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여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이러한 규정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역시 자민당의 국가관을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는 사회계약의 산물이 아니라 ‘국민’이 따라야 할 ‘지도원리’나 규범을 제시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의 그림자를 다시 한 번 읽어낼 수 있다. 전후 일본의 대표적 자유주의 사상가이자 정치학자로 불린 마루야마 마사오의 다음 글은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전쟁시기의) 관료들이나 군인들의 행위를 제약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합법성의 의식이 아니라 더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것, 즉 절대적 가치체에 더 가까운 존재라는 것이다. 국가질서가 자신의 형식성을 의식하지 않는 곳에서는 합법성의 의식 역시 결여되지 않을 수 없다. 법은 추상적인 일반자로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같이 제약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천황을 장(長)으로 하는 권위의 계서제(hierarchy)에서의 구체적인 지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준법이라는 것은 오로지 아랫사람에 대한 요청인 것이다.
(중략) 따라서 거기서의 국가적・사회적 지위의 가치규준은 그 사회적 직능보다도 천황으로부터의 거리인 것이다. 니체(Nietsche)는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라는 것으로 모든 귀족적 도덕을 특징짓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비천한’ 인민과는 떨어져 있다는 의식이 그만큼 최고가치인 천황에 가깝다는 의식에 의해서 한층 더 강화되어 있었던 것이다.”(마루야마 마사오「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중에서)
물론 위의 인용문은 제국주의 일본의 ‘초국가주의’가 어떠한 논리로 구성되어 있었는가를 논하는 내용이며 전후 일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과거에 일본이라는 국가에 이러한 ‘경향성’이 존재했다는 점, 그리고 자민당의 최근 개헌안은 몇몇 부분에서 상당히 이와 유사한 ‘논리’와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논리 속에서 천황은 결코 여성이어서는 안되며 ‘만세일계’의 남계 혈통을 유지해야 한다. 가족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단위로 규정되며 국민에게는 헌법을 ‘존중할 의무’가 생긴다.
이러한 상호간의 유사점은 작지만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에 대한 규정, 국가관의 변화이다.
일본의 보수화 경향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많은 이들은 현재 일본의 보수화 경향만을 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일본 국내에서는 전쟁 이후 대대적인 반성이 이루어졌다(그것이 비록 아시아 각국에 대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지만). 전후 일본 사회에서 이른바 좌파(혁신정당)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았으며 의회에서도 상당수의 의석을 차지했다. 또한 학계에서도 한국에서라면 빨갱이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을 논의가 주류를 이루었고 시민들의 인식 역시 오늘날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왼쪽에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은 버블 붕괴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서 가속화되었다고 봄이 옳다. 경제가 침체되면서 이른바 우익의 축적된 불만이 공공연하게 표출되기 시작했다. 냉전의 종결과 변화하는 국제정세는 이러한 흐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전후 일본이 걸어온 길, 헌법 9조로 대표되는 평화주의가 국가를 망쳤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웃나라 한국이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개칭하려 한다거나 평화유지군 활동에 적극 참여하려 한다는 점에만 주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중요한 것이지만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나 ‘침략을 위한 준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명칭이 바뀐다고 해서 현재 갖고 있는 전력이 뻥튀기되는 것도 아니며 일본의 해외파병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심리적인 고삐나 명분이 없어짐으로써 일본이 폭주할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그다지 현실적인 주장은 아니다(거기에는 적어도 미일동맹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 빠져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사회 인식의 변화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좌든 우든) 극단적인 위치에서 목소리를 내는 세력은 존재하지만, 사회의 핵심적인 세력의 인식 변화가 공개적으로 표출되었을 때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자민당의 최근 개헌안은 의미를 가진다. 일본 정치의 주도 세력이 국가를, 국민을, 그리고 시민 대 국가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우리는 개헌안을 통해서 그들이 과거 일본의 멘탈리티와 일정부분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개헌안이 그 내용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리고 일본의 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은 일본이 그렇게 쉽게 과거로 회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움직임을 앞으로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때 주목해야 할 지점은 자위대의 명칭 변경이 아니라 국가관의 변화, 그리고 천황제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잘 주목하지 않는 바로미터 – 여성 천황제 용인 문제나 가족 및 교육에 대한 법률의 개정 등 – 를 통해서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