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omen Still Can’t Have It All(왜 여성은 여전히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는가)이라는 다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제목의 글을 읽었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출산휴가 중이었다. 첫 아이가 생기고 워킹맘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적응해나가던 시기. 그래서 그 글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같은 주제로 한 앤 마리 슬로터의 책이 출판된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아마존 장바구니에 넣고 손꼽아 기다리다 미국에서 배송되는 시간도 아까워 발간되자마자 이북으로 읽어내려갔다.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쉐릴 샌드버그의 Lean In을 읽었을 때처럼 반가운 느낌이었다. (리뷰는 여기에서) 더구나 Lean In을 건설적으로 비판하며 논지를 펼치고 있기에 그 책에서 2% 아쉬웠던 부분을 명쾌하게 채워주는 느낌도 들었다.
Lean In이 여성이 일과 가정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 대해 여성 스스로가 변해야 할 것들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면, 이 책은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여성, 남성, 그리고 직장에 관한 절반의 진실들
저자인 앤 마리 슬로터(Ann-Marie Slaughter)는 힐러리 클린턴 밑에서 미국 국무부의 정책기획실장을 역임했고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정책대학원 학장을 지냈다. 그리고 두 아들의 엄마이다. 꿈의 직장이었던 국무부에서 2년간 일하고 가족과 학계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한 뒤 쓴 그녀의 글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잡지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글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하는 여성의 일과 삶의 균형, 양성평등 등 비슷한 주제를 다룬 기존의 톤이 “누구나 열심히 하면 가능해!”와 같은 응원이나 조언이었는데 비해, 앤 마리는 여성이 처한 사회 전반적 현실과 통념에 돌직구를 날린다. 책의 제목이 Why Women Still Can’t Have It All인 이유는 양성평등을 향해 지난 몇십 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이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그리고 성공적인 커리어에 관한 전반적인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3분의 1을 여성, 남성, 그리고 직장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여러 통념들을 “half truths, 절반의 진실”이라고 칭하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반박하는데 투자한다. 다음이 우리가 무의식/의식적으로 되풀이해온 만트라이다.
- 여성이 충분히 해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 맞는 파트너를 만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 커리어와 라이프 이벤트의 순서를 잘 조절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 남성도 일과 삶에서 모든 것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
- 아이들은 엄마를 필요로한다.
- 남성의 역할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다.
- 양성평등은 여성의 문제이다.
- 탄력근무제가 답이다.
- 가장 오래 일하는 사람이 최고의 직원이다.
예를 들어 이 중에서 두 번째 만트라와 그것에 대한 저자의 반박에 대해 설명해보면 이렇다.
쉐릴 샌드버그가 주장한 것처럼 일과 가정에서 동등하게 역할 분담을 하는 “right partner”를 만나면 여성이 커리어 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동등하게”라는 말에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커리어 사다리의 끝까지 올라가려면 배우자가 가정에서 동등한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정과 육아에 더 많이 시간과 노력을 쏟는 주 양육자, 즉 lead parent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성 CEO들이 모든 승진기회와 해외 어싸인먼트에 “오케이!”할 때 그를 따라 옮기며 써포트하는 부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우리 회사도 보면 디렉터급 이상 여성 리더들의 남편은 그들보다 덜 경쟁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분의 남편은 골프선수, 사진작가이거나, 같은 회사 사내 커플일 경우에는 남편이 더 낮은 직급에 있는 경우도 많고, 전업주부 남편인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여자들조차 남자들과 가사 노동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면서도 본인의 커리어 야망을 위해 남편은 통속적인 잣대로 보았을 때 덜 성공한─더 적은 연봉에 낮은 직급─커리어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적절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파트너와 두 사람의 가치, 야망, 미래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매우 구체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내 다음 어싸인먼트를 위해 이사를 해야 한다면 함께 가줄 수 있나요? 심지어 그것이 당신 커리어에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라도? 내가 출장을 많이 다녀야 한다면 학교행사나 아이가 아플 때나 먼저 챙겨줄 수 있나요? 내가 당신보다 돈을 더 벌고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도 괜찮나요? 그럴 때 당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폄하하는 발언들을 견뎌낼 자신 있나요? 등등의 질문리스트들을 적어놓았다.
이렇게 앤 마리는 기존에 통념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돌봄과 경쟁의 가치
저자는 또한 caregiving과 competition에 대한 우리 사회가 부여하고 있는 가치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남성/여성 성 역할에 대한 것을 떠나 인간 본성의 두 가지 자연스러운 역할(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과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 하나를 더 우선시 하기 때문에 양성불평 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일이 저소득 직종에 속하고 여성이 그러한 직종에 더 많이 종사한다는 것도 양성 불평등의 잣대 중 하나인 소득 격차를 늘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자는 특정 직업에 필요한 역량에 따라 보수가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하지만, 정말 돈을 버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좋은 양육자는 물리학자의 분석력과 위기관리자의 적응력, 심리학자의 감성지능, 그리고 미국 퀴즈쇼 jeopardy 챔피언 정도의 상식 수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진정 인력자원을 중요시하게 생각한다면 인간의 평생 지적 감성적 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갓난아기부터 8살까지의 유아교육 역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경쟁 우선 사회에서 벗어나서 caregiving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역시 편견에서 자유로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승진을 미루거나 육아휴직을 하거나 24/7 회사에 붙어있는 것을 거부할 때 “남자답지 못하다”거나 가장 중요한 커리어를 희생하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평등을 위하여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진정한 양성평등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앤 마리는 이에 대해 개인, 기업, 국가 정책 및 법 등 포괄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 개인의 측면에서는 우리가 하는 말을 바꾸고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이중 잣대를 버려야 한다. 남자 직원에게도 결혼을 하거나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커리어와 가정을 꾸려나갈 것인지 물어보고 남성 지원자에게도 회사의 가정 친화적인 정책이 있다는 것을 홍보하자.
그리고 이제 커리어에 대한 개념도 재정립할 때이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현대인은 노동에 종사하는 시간이 증가했기 때문에 4~50대에 커리어 정점에 올라가서 멈춰버리는 일직선 사다리 같은 커리어 패스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중간중간 caregiving이나 가족과 관련된 필요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는 것 역시 가능해졌다.
또한 포트폴리오 커리어라는 개념도 소개한다. 시간제 근무나 프로젝트 베이스로 개인의 커리어를 꾸려가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라면 시소와 같은 결혼 즉 여성과 남성이 번갈아가며 lead career와 lead parent의 역할을 해나가는 방법도 있다. 물론 이렇게 개인이 competition에 집중하는 시기와 caregiving에 집중하는 시기를 모두 아울러 계획할 때에 커리어에 대해 별로 야망과 의지가 없다고 폄하하지 않도록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한편 기업의 측면에서는 페이스타임을 중요시하고 24/7 회사 일만을 우선시 하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조금 늦더라도 개인의 커리어 골에 충분히 다다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무제한 휴가를 제공하는 에버노트나 (최근 링크드인도 같은 정책을 발표했다) 전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는 워드프레스 같은 기업도 관료적인 제도를 벗어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전제하에 직원들에게 충분한 자유를 제공하는 좋은 예이다.
이 밖에 양질의 유아 교육 및 노인 부양 시설 확충, 가족/의료 관련 유급휴가 확대, 탄력근무제 실시, 모성보호법, 시간제 근로자 및 탄력 근무하는 직원에 대한 차별 금지법, 한부모 가정에 대한 재정적 사회적 지원,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초중등 교육 시간표 개정 등 정책적인 변화도 촉구하고 있다.
워낙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다. 양성평등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직장 여성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책이 부담스럽다면 앤 마리 주장의 골자가 담겨있는 이 글 Why women still cant have it all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양성평등은 여성만의 이슈도 아니고 윤리적 당위성만을 강요한 주장만도 아니다. 리더십 포지션에 여성이 많은 회사가 더 창의적이고 더 좋은 비즈니스 성과를 낸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온 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성평등을 향한 걸음이 더딘 이유는 그것을 해결하는데 무의식적 의식적,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양성평등지수에 매번 꼴찌를 다투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그럴수록 이슈를 공론화하고 개인과 사회의 인지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도 미약하나마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문: 직장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