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프로듀스101>이 끝났다. 2017년 4월, 새로운 <프로듀스 101>이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픽미’는 가끔 듣지만, 솔직히 프로그램을 챙겨본 적은 없다. 그래도 그 프로그램이 어떤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그것에 어떤 맹점이 있는지는 많이 전해 들어 알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맹점들. 거의 초반에 순위가 정립된 후에는 상위권 출연자들이 노출되는 빈도가 훨씬 많아지고, 그게 다시 그들에 대한 시청자들-유권자들-의 좋은 반응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리고 개중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치고 들어온 소수의 출연자들이 ‘계층 상승’의 가능성을 보증하고, 그것이 곧 경쟁을 정당하고 공평한 것으로 합리화한다는 것.
여기서 ‘빈익빈 부익부’와 ‘신자유주의 경쟁논리’ 정도만 읽어내면 딱 절반 정도만 읽어내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우리로서는 투표에 대한 어떤 맹신주의를 읽어도 좋지 않을까. 즉 우리는 선거에 직면하여 판단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확보할 수 있고, 그로부터 가장 합리적인 투표를 수행하여 공리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
하지만 프로듀스101의 그것처럼 선택에 필요한 정보는 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며, 우리가 가진 미디어 권력은 빈약하고 또 빈약하다. 또한 ‘우리가 가진 미디어 권력’이라고 부를 만한 미디어, 즉 한겨레신문 같은 곳부터가 나서서 ‘야권연대를 만들기 위해 유권자가 후보를 협박하라’는 투의 기사를 써내는 마당이라 선택에 필요한 정보들은 상당 부분 필터링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끔 소수정당을 다뤄준대도 그 비중이나 빈도가 양대 정당의 그것과 비교해 현저히 차이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양당은 양당이라서 계속 양당이고, 소수정당은 소수정당이라서 계속 소수정당이다.
선거제도는 또 어떤가. 우리는 양당제-지역주의-레드콤플렉스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수한 제약장치들에 둘러싸인 채 ‘단순다수제’라는 제한된 선택을 강제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정말로 온전히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결국 선거는 민주주의의 여러 장치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것은 굉장히 제한된 형태로 이루어지고, 그마저도 특정한 권력에 의해 유도된 형태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거라는 장치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성격, 즉 내가 직접 뽑았고 누구도 그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맹신적 착각이 이 사실들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선거는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기에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면, 그 꽃을 피우기까지 과정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는 똑같이 아름다워 보여도 나쁜 토양에서 자랐거나 뿌리가 썩어 있으면 이내 시드는 법이다. 꽃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피우는 노력이, 이 떠들썩한 국면 이후에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일 것 같다.
원문: 강남규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