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없는’ 언론사 떠나는 인재들…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려니 하면서도 마음이 뒤숭숭하다. 귀감이 되는 회사 선배가 조만간 벤처캐피탈로 떠난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이외에도 다른 분야에 젊음을 투자하기 위해 편집국을 떠나는 선배와 동기들이 눈에 보인다. 이제 막 2년차에 접어든 초짜 기자에 불과하지만 언론계의 ‘인력 공동화’를 깊이 체감하고 있다. 기자협회보도 얼마 전 1~5년차 주니어 기자들의 이탈 분위기를 보도했다(‘채 피워보지 못한 기자의 꿈, 절망에 짓눌려 내려놓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언론은 인재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분야가 됐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덕분에 ‘앞으로 언론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유료 뉴스앱 운영과 디지털 전략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며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바탕으로 원인과 해법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언론사 위기의 원인은 ‘공급 과잉’
우선 언론이 위기에 처한 원인부터 짚어보자. 개인적으로 ‘언론의 위기’는 ‘뉴스 플랫폼의 평등화로 인한 콘텐츠 공급과잉’에 기인한다고 본다.
예전엔 언론의 진입장벽이 높았다. 인쇄물을 찍기 위한 윤전기, 지상파 사업자 허가가 있어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며 IT기업들이 ‘플랫폼 파워’를 가져간 이후엔 얘기가 달라졌다. 기성매체보다 빠르고, 트렌디한 기사를 다량 생산해내는 온라인 매체들이 IT기업의 플랫폼 파워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넓혔다.
플랫폼 파워가 떨어지자 신문의 꽃인 ‘1면 톱’ 기사의 가치도 떨어졌다. 주요 신문에서 1면 톱으로 내도 포털에서 메인에 안 실어주면 ‘댓글 0개’인 기사도 허다하다.
기자보다 전문성있고, 기사체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개인 콘텐츠제공자(CP)들도 등장했다. 이들은 블로그나 소셜에 훌륭한 글을 쓰고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 전문성도 퀄리티 저널리즘 못지 않으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진 것이다.
그래도 언론에겐 ‘힘있는 단독기사’라는 차별화된 콘텐츠가 있지 않냐고? 얘기거리가 될 만한 단독이 뜨면 금방 수백개 매체에서 받아쓴다. 1보를 어느 매체의 어떤 기자가 때렸는지는 같은 출입처를 공유하는 소위 ‘선수’들이나 안다.
결국 기성매체의 콘텐츠를 유료로 봐야 할 유인이 급격히 낮아졌다. 이는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위기에 처한 조선, 철강, 전자 등 한국 주력 제조업과 비슷한 상황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지닌 경쟁제품(?)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기존 미디어가 생산하는 뉴스의 시장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언론은 IT기업에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하청업체’ 역할까지 한다. 최근 일부 신문이 네이버와 맺은 업무협약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인력공급업체가 인부 파견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언론계 ‘카노사의 굴욕’이라 할 만한 사건이다.
결국 ‘구관이 명관’
이처럼 언론사는 포털과 소셜 때문에 ‘플랫폼 파워’를 잃었고, 과잉공급 문제로 콘텐츠 측면에서도 수세에 몰려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플랫폼이 탐나겠지만 IT기업에게 플랫폼으로 도전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IT기업들은 플랫폼 파워 유지를 위해 매년 언론과 비교도 안되는 액수를 재투자한다.
결국 콘텐츠다. ‘원래 잘 하던 것’을 더 잘해야 한다. ‘퀄리티 저널리즘’을 ‘깊이있는 정보로 신뢰를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정의해 보자. 언론사는 이런 측면에서 여전히 상대적 강점을 가진 게 사실이다.
필드에 전문가들이 많지만 이들에게 항상 콘텐츠의 질과 공급량을 일정 수준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IT기업은 스낵커블 콘텐츠 유통과 제작에 강하나 아직 퀄리티 저널리즘에는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퀄리티 저널리즘의 핵심은 ‘전문성’이다. 전문성을 가진 수많은 각 분야 고수가 경쟁자로 등장했으니, 기자들은 더욱 더 치밀한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해야 한다. 기자의 지향점도 제너럴리스트에서 스페셜리스트로 바뀔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변하고 있다.
‘진지 빠는 뉴스’는 돈 안된다? 일단 버텨보자…
퀄리티 저널리즘이 지금은 돈 못 버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훗날에는 각광받을 수도 있다. 결국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공급과잉이 지속되면 언젠가 경쟁력이 부족한 플레이어들이 나가 떨어진다. 혹독한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아 빛 볼 날을 기다리는 수 밖에.
한때 주식시장에서 외면받았던 음식료품주가 수출 침체로 인해 ‘내수주’로 주목받고, 사양산업 취급받던 종이산업이 고부가가치 소재산업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언론업에도 우리가 예측하기 힘든 성질의 산업 사이클 변환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뉴스가 돈 안되면 다른데서 벌자
그렇다고 ‘좋은 글만 쓰면 독자들이 알아서 돌아올 것’이라는 로맨티시즘에 빠져 시류를 외면해도 된다는 얘긴 아니다. 문제는 ‘퀄리티 저널리즘, 그거 좋은건데 예전처럼 돈이 안 된다’는 것이지 않나.
결국 다른데서 돈 벌어야 한다.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매출 감소에 대비하고, 벤처투자 등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 이미 한 신문사는 국내 벤처를 넘어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에도 투자할 계획을 짜고 있다.
주요 신문사들이 막대한 초기투자비를 감안하고 종편에 뛰어든 이유도 결국 ‘방송’이라는 새 사업분야에서 일정수준의 매출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11년 종편이 출범할 즈음 ‘1등 신문’ 사주께서 “신문만 하면 빨리 망하고, 방송을 하면 늦게 망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동시에 콘텐츠 소비 취향이 달라진 요즘 독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뉴스를 ‘더 친절하고 섹시하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콘텐츠 경쟁력은 수익모델과 상관없이 브랜딩 차원에서 유지하는 것이니까.
여튼 시대 변화에 대응하되 언론업의 ‘핵심 가치’ 내지 ‘핵심 경쟁력’은 잊지 말자는 게 요지다.
미국이 망하지 않은 이유…신문은 과연?
수십년 전부터 ‘미국이 망할 것’이란 비관적 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미국이 망하지 않은 건 이같은 보고서 덕분에 ‘미국이 망할 것’이란 우려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안그래도 신문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수록 편집국은 경각심을 가지고 개혁을 추구할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신문의 미래는 밝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 격언에 ‘밀짚모자는 겨울에 사라’는 얘기가 있다. 과연 ‘퀄리티 저널리즘’은 언젠가 재평가받을 ‘밀짚모자’ 일까.
원문: 유하늘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