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더불어?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은 최근 제자 논문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홍익대 수학교육과 박경미 교수를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했다. 민주개혁 세력의 적통을 자임하는 정당의 1번 주자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박경미 교수의 비례 1번 공천은 심히 우려스럽다. 연이은 보수정권의 ‘나쁜’ 통치에 무너져가는 이 나라를 보며, 이번 총선에서 야권과 진보세력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기에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억울하겠지만, 한국에서 진보 혹은 민주개혁의 적통을 자임하는 정당은 보수정당보다 도덕성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좀 더러워도 유능한 후보에게 투표한다. 그러나 진보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의 눈은 훨씬 까다롭다. 유능하면서 도덕성과 명분까지 갖추어야 비로소 지지를 보낸다. 도덕성과 명분이란 것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려스럽게도 더민주당은 이 문제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천을 주도한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옛날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논문을 써봤느냐”면서 “옛날 사람들은 그 분야마다 다른데 제자하고 같이 논문을 많이 썼다. 내가 보기에 그건 마이너(심각하지 않은)한 것”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일단 제자 논문 표절이 과거에는 관행이었다는 언급은 논평할 가치조차 없으며 설사 관행이라고 해도 그 부분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불법정치자금도 엄연한 관행인데 잘못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또한 만약 제자하고 같이 논문을 썼다고 해도 그걸 자신의 단독 논문으로 게재하는 경우에도 비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게 과연 ‘마이너’한 문제인가? 계속된 비판에 “문제없이 대학생활을 지속”했다는 궁색한 답변을 내놓고 있는 더민주당의 행보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복붙’과 ‘문도리코’를 넘어서
이에 필자는 논란이 되었던 정**의 석사논문과 박경미 교수의 논문을 비교분석했다. 결과는 후술하겠지만, ‘분석’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로 단순 ‘베끼기’였다. 독자들께서는 지금부터 가볍게 아래의 표 내용을 살펴보시길 바란다.
다들 어떻게 보셨는지? 이게 “문제없이 대학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시는가? 이 두 논문의 유사성은 초등학생도 파악이 가능한 수준이라 하겠다. 만약 이게 표절이 아니면 내 기꺼이 똥파리를 새로 인정하리라…ㅠㅠ 아!
물론 차이는 있다. 목차 구성에서 예비교사와 현직교사의 순서를 다르게 배치했고, 설문대상에서 정**의 논문에서 조사했던 지방의 중·고등학교 교사 30명을 서울 지역 교사로 둔갑시켰다. 목차도 미세하게 조정했고, 문장도 더 매끄럽게 썼다. 이 정도 수고로운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이 논문이 ‘복붙’과 ‘문도리코’를 넘어서는 신기원을 열었다고 인정해주자.
문제는 ‘갑질’과 대학 내부의 권력관계
하지만 이 사건을 표절 문제로만 국한해서 이해하면 안 된다. 석사학위 논문 작성자는 대학이란 공간 안에서 ‘을’ 중의 ‘을’이고 교수는 절대권력자이다(대학원생의 인권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화제의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런 현실에서 제자 논문을 표절한 것은 곧 ‘대학원생의 지적재산권을 착취’한 행위가 된다. 이 문제가 문대성 표절 건과 같이 묶여선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여전히 표절 문제로만 인식되고 있는데,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사건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와 ‘인분 교수’ 사건에서 드러났던 대학원생 인권문제, 지도교수의 논문을 대필하면서까지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던 故서정민 열사(난 꼭 이 분을 열사로 부르겠다!)의 자살에서 드러났던 대학 내부 권력관계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지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그런데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눈감거나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야권 지지자들도 보인다. ‘반새누리 · 정권교체’라는 정세론 때문인 듯하다.
‘반 새누리’를 위해 눈 감을 것인가
새누리당을 막는 것, 야권이 이기는 것 중요하다. 지금 상식 있는 개혁적 시민들 중에 그 대의명분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 어떤 합리적 정세판단도 진실보다 우선할 순 없다. 불의에 침묵하고 진실을 외면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가 도대체 무엇일까? 야권이, 진보개혁 진영이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선 이 문제를 그냥 넘겨선 절대로 안 된다. 거듭 얘기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표절사건이 아니라 한 집단의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으로 약자의 지적재산을 착취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프더라도 상처를 도려내길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 도려내지 않으면 그 상처는 영영 치료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