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이 좋아서 짱구 극장판 <로봇아빠의 역습>을 보게 됐다. 아무런 과장 없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심한 ‘여성혐오’로 점철된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런 만화를 아이들이 접한다는 게 무섭다.
2.
아버지의 외로움과 고난을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렇듯이) 힘들다. 아버지의 애환을 그려내는 치유의 서사가 나쁠 이유가 뭐가 있을까.
하지만 아버지의 외로움과 고난을 다룬 이런 식으로 다룬 이 서사는, 나쁘다. 그냥 나쁜 것이 아니라 악질적으로 나쁘다. <로봇아빠의 역습>은 아버지의 상처를 돌아보는 선을 넘어, 상처의 책임을 ‘집에서 놀며 뱃살이나 찐’ 아내, ‘공원을 산책하며 지하철 여성전용칸을 이용하는’ 여성에게 돌린다. ‘혐오’의 서사다.
영화의 초반부에 짱구와 아빠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들과 마주한다. 한 남편이 담배를 피우며 아내가 날 돈벌어오는 기계로 안다고 푸념한다. 이내 아이를 데리고 온 ‘진상’ 여자들이 남자들을 놀이터 밖으로 내쫓는다. 남성들의 고민은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반면, 여성들의 행동은 극단적으로 과장되어 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여기서부터 투명 ‘스시녀’를 만들어 패기 시작한다.)
사실, 일본에서 남성이 가정 밖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남성이 가정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어서다. 일본의 남성 가사분담률은 OECD 최하위를 달리며, 기혼 가정의 절반은 부부간 하루 대화 시간이 30분을 넘지 않는다. 인간은 돈을 받고 감정을 내뱉는 자판기가 아니다. 관계는 지속적인 교류와 교감을 통해서만 발전되고 유지된다. 하루에 30분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상대에게 차가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절대 그런 부분을 비추지 않는다. 대신, 그 모든 것들을 ‘남편이 일하는 동안 쏘다니며 노는’ 여성의 잘못으로, 남성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그려내기에 급급한다.
일본 남성들에게도 이렇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의 근무환경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좀 더 문화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가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회사를, 자신을 둘러싼 맨박스를 비판하면 될 일이다. 결혼 후 관계가 좌절되고, 남편과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내가 아니라. 하지만 이 서사는 그런 고민이 없다.
3.
몇몇 장면이 지나고 로봇이 된 아빠는 악당의 계획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아빠는 ‘집에서 놀아 살이 찌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밥상을 뒤엎는다. 자식인 짱구와 짱아에게 고함을 내지른다. 말리려던 엄마는 아빠가 간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자 충격적인 표정을 짓더니, 벌벌 떨다가, 잘못했다며 말하며,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짱구 아빠는 이제 집을 나서 놀이터로 향한다. 예전의 그 남편들에게 말한다. 어딜 남자를 우습게 아냐고. 본때를 보여주자고. 공원에 이전의 ‘진상’ 여자들이 다시 온다. 짱구 아빠가 고함을 지르자 아까 전 힘없이 물러났던 담배피는 남성이 담배에 불을 붙여 아이의 얼굴에 담배연기를 분다. ‘진상’으로 묘사된 여성들은 기겁하며 말리려 들지만 남성들은 물리력으로 이를 저지한다. 여성들은 다시금 ‘벌벌 떤다.’
영화는 지하철의 ‘텅빈’ 여성전용칸과, 꽉찬 일반칸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남성들을 보여준다. 아빠에게 설득된 남성들은 지하철의 여성전용칸에 우격다짐으로 들어간다.
이제 남성들은 길가를 행진하며 시위한다. 여자들은 길가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남성들을 향해 절을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악당의 사주로 일어났으니까, 하고 회피할 여지는 아직 있다. 하지만 영화는 악당을 ‘가정에 헌신하지 않는 냉정한 어머니에게 상처받은 끝에’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된 인물로 묘사한다. 악당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기에 눌려’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인물이었다. (다시 한 번, 이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스시녀’ 만들기인지 가사노동 시간을 보고 확인하자.)
그렇다. 이 작품에서 이 인물은 순수한 악당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또다른 여성의 희생자로 묘사되는 것이다.
4.
위키에 따르자면, 이 악당의 마지막 대사는 이러하다.
“아내여! 딸이여! 아빠에게… 아빠에게 사랑을!”
그렇다. 그 모든 폭력과 혐오의 책임은 결국 아빠를 사랑해주지 않은 아내와 딸, 여성에게 돌려진다. 변주도 가능하다. 이 영화를 간략하게 줄인다면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터넷 여성혐오 댓글과 같은 형태를 띄게 될 것이다.
“김치년들이 지랄지랄 하는데 남자들이 화나면 니들 걍 패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ㅋ 근데 우리가 그러냐? 안 그러잖아. 솔직히 남자가 뭐 잘못한게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말로 해줄때 알아서 잘 해라. 우리가 훨씬 더 힘든데 니넨 집안에서 쳐놀잖아.”
물 건너 지구 반대편에선 아이들을 위한 대중 애니메이션에 소수자 담론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겨울왕국>에 이어 <주토피아>로 이어지고 있다. 같은 시기 동아시아에서 나온 이 작품은 여성의 남성 역차별을 말하며 투명 스시녀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동아시아에 빛이 들 날은 대체 언제일까.
5.
덧붙이자면, 로봇아빠는 악당에 의해 흑화하기 전까진 완벽초인이다. 요리도, 집 수리도, 마당 잡초 뽑기도, 회사일도 만능이며 여직원들의 선망어린 눈초리를 받는다. 마지막에는 아이를 구하기까지 한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모든 판타지를 대리만족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아버지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거야 문제 없다만, 그래서 결국 하는 일이 고작 투명 스시녀를 패는 일이라니. 속이 너무 보인다. 이런 애니메이션은, 어린 아이에겐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대로.
원문: 학이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