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슈퍼갑이다. 그것도 매체ㆍ기자 나름이고 그나마 겉보기만 갑일 수 있지만, 그 이름을 들어 본 매체라면 대략 갑질 좀 하고 다닌다고 보면 된다. 이처럼 직업이 슈퍼갑인 데다 사회정의를 추구하는(예, 죄송합니다….) 조직에 몸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인 기자들 역시 성폭력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그리고 아마 아래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칠 정도로 소소한 사건일 것이다. 워낙 말도 안되는 일들이 터지는 나라니까.
여기자에게 성희롱은 일상사
나와 내 주변 여기자들이 겪은 일들을 의식의 흐름 순으로 풀어 본다. 입사 첫 해, 20대 중반의 수습 여기자 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입처인 유통업계 관계자들과 저녁에 술을 먹었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술을 매개로 출입처 관계자들과 인간 관계를 맺고 술약속 안 잡으면 취재 하고 다니는 거냐고 의심스러워하는 분위기는 조금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중 한 사람이 자신을 집까지 데려다 줬다고 한다. 여기까지야 고마운 일인데, 이 관계자는 ㄱ기자의 방까지 들어가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설마 너무 술을 마셔서 자신의 방으로 착각한 걸까. 인적 드문 밤, 자신보다 힘이 센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물리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단 공포감을, 남자들이 얼마나 알 지 모르겠다.
ㅇ기자는 노래방에서 어느 정부조직 관계자로부터 성희롱+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이 문장 자체가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거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로 추정되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결론은 가해자는 한직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전해 듣는 이야기로는 기자 간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나마 기자니까, 어떻게든 사과를 받아내고 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가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는 생각된다. 다행히 해당 기자의 데스크나 국장 차원에서 나서 가해자와 그 조직에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조직 생활 해 보면 알겠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고맙다.
끊을 수도 없는 네버엔딩 성희롱 가해자, 취재원
나는 취재원 한 명과 연락을 끊은 적이 있다. 연락을 끊는 단호한 액션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모 기업 임원이었던 이 취재원이 대화 도중 조금씩 엉뚱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만났을 때 ‘부인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부터 시작해 세 번째 만났을 때는 ‘나는 아침에 땡기는데, 부인은 그렇지가 않다’까지 나왔다. 성희롱으로 느껴지기보다 그냥 좀 혐오스러웠다.
기자가 취재원들에게 연락을 하고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건 기본적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이 사람이 그 기업 임원, 그 회사 관계자가 아니라면 만나자고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물론 보다 보면 개인적으로 친구나 선생 삼고 싶어지는 매력덩어리들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일 이야기 도중에 친해지기 위한 제스처로 취미 같은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질문도 던질 뿐인데, 혼자 므흣하게 착각하는 경우가 좀 있다. 남기자가 밥 먹자고 하면 ‘왜 그러시는데요?’라고 경계하고 여기자가 밥 먹자고 하면 지 혼자 착각한다. 어쩌라고…;;;
그런데 가끔 혐오스럽다고 연락을 끊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상무나 전무 정도가 아니라 CEO나 기관장이거나 거물 정치인이라 어떻게든 말 한 마디라도 더 붙여야 되는 경우다. 물론 젠틀하신 분이 더 많지만, 안 그런 분도 많다. 내가 아는 CEO는 저녁 자리에서 손금을 봐 준다며 여기자들의 손을 주물렀다. 여기까진 그래 뭐 잠깐 싫고 말자, 하더라도 맥을 짚어보더니 “성관계 한 지 오래됐네?”라고 씨부리는 건 누가 들어도 좀 더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자들은 이 CEO가 어딘가 나타나면 쫓아가서 말을 붙인다.
피할 수조차 없는 언론사 내부 성희롱
언론사 조직 내부의 분위기는 한국의 평균적인 조직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긴 하지만, 썩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 다른 여기자 ㄱ은 기분 나쁜 언사나 행동도 대강 넘겨버리는 습관이 들었다. 어차피 부ㆍ차장급 남자 기자들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조직에서는 문제를 제기해봐야 ‘내가 잘못했으니까 조심해야겠다’보다는 ‘저 미친년을 조심해야겠다’는 여론(?!)이 조성되기 마련이다.
ㄱ기자의 부장은 ㄱ의 부서에 처음 발령돼 환영식을 한 날, 전 부서에서 같이 일했던 ㄱ에게 “그런데 ㄱ이가 그동안 좀 섹시해진 것 같다.”며 이후 밑도 끝도 없는 말을 지껄였다. ㄱ은 지금도 가끔 그 순간을 회상하며 ‘그 때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한 마디 쏴 줬어야 하는데….’라고 자책하곤 한다.
여기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런 종류의 자책은 상당히 오래 간다. 나도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오다가 마주친, 별 볼 것도 없는 부위를 노출하고는 실쭉 웃으면서 도망간 새끼라든가 지하철에서 계속 쳐다보면서 지하철이 흔들려서 그런 것처럼 가장하며 접촉을 시도하던 새끼를 한 대 쳐 주지 못했다는 후회를 몇 년째 하고 있다. 한 대 쳤다가 개같이 두들겨 맞더라도 때렸으면 좋았을 걸, 하고.
기자 출신 윤창중의 성희롱, 여기자들은 그들과 함께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윤창중의 사고는 일부 남기자들이 성희롱, 성추행에 대해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모 사의 ㅇ 정치부장은 윤창중 경질 소식이 전해진 바로 이튿날 데스크회의에서 “걔가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라며 실드를 쳤다고 한다. 윤창중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친분이 없더라도 실드를 쳐 줄 만한 부장이긴 했다. 평기자 시절부터 출입처 기자실에서 노모자이크 야동을 보는 걸로 유명하신 분이었으니….
또 다른 모 사의 한 차장기자는 윤창중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미국에 가서도 그랬다는 건 평소에도 그랬다는 것”이라고 운을 뗐는데, 여기서 “그래도 교포 여자였으니까 그렇게 바로 신고하고 한 거지, 한국 여자들이 반성해야 한다. 쉬쉬하려고만 하고….”라며 라이트 형제 뺨칠 법한 비약을 시도하셨다. 피해자의 사진이라는 게 떠돌아다니는 걸 보면서도 그런 주장이 가능한 당신은 진정한 논리왕, 이라고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비겁하지만 일일이 부딪칠 기운은 없다.
다만 이런 일들이 터지고 윤창중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등장한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자신의 욕구를 위해 사람을 멋대로 이용하려 드는 인간이 얼마나 찌질하고 추레해보일 수 있는지, 그는 온 몸을 바쳐 증명하고 있다.
당신의 딸이 같은 일을 당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한편 별로 실생활에 도움될 거리는 없지만 사회 생활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면, 딸을 둔 남자들은 100%는 아니지만 거의가 믿을 만했다. 그들은 자신의 딸이 어떤 위협에 노출될 수 있는지 체감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이해도나 공감도도 높은 경우가 많다. 이런 분들과는 심지어 성적인 농담을 해도 편안하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 인간끼리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거다.
이건 어떤 남자들에게는 상당히 불합리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똑같은 음담패설 A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반응을 불러오게 된다. 의도했든 아니든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혹은 자신과 별개의 생물로 인식하는 게 굳어진 남자(의 존재까지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아직 사회가 못 변했는데 개인만 탓할 수는 없을 테니) 중에서도 눈치가 없는 녀석이 발화 주체인 음담패설 A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뜬금없이 나온 음담패설 A라면 기분이 나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는 꼭 딸을 낳아서 딸바보가 돼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