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컷오프 건으로 말이 무성하다. ‘집토끼 산토끼론’. 난 김종인 비대위가 집토끼를 ‘합리적 보수’로 설정했다고 생각한다─정청래 컷오프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현명한 판단이라 평가하나, 지지층의 이반은 상당하다.
하지만 이는 적극적 의사표시를 하는 분들이 과잉대표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야권이라는 막연한 카테고리에서 나오는 목소리, 야권 중 민주당 외 지지층의 몫도 적지 않다.
실제 정청래 컷오프를 기점으로 조사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소폭 하락, 그 지지율은 정의당으로 이동했다. 무당층 모두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아니다. 말하자면 ‘유동층’-상황따라 지지정당을 택하기도 이탈하기도 바꾸기도-은 ‘새누리당-민주당’ 사이보다 ‘민주당-정의당’ 사이에 더 많다. 정청래 컷오프 효과가 발현된 곳이 이 지점이고,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합리적 보수’로 가려는 김종인 비대위
이 나라의 성향은 어쨌든 대세적으로 보수다. 그간 여론조사를 봐온 감으로 대충 써내려간다면… 전체 100에서 ‘지지층-유동층-무당층’은 대략 70:10:20 내지 70:15:15 정도. 유동층과 무당층의 변동은 선거 열기에 따라 갈린다. 고정된 70의 지지층을 ‘새누리-민주당-정의당’이 나눠먹는 구도가 대강 40:25:5정도. 70을 다시 ‘보수-진보’로 나누면 나는 대략 50:20 내지 55:15로 본다-20은 민노당이 13% 얻었던 시절에 민주당-진보 블록까지 더한 극한치다.
일단 진보를 15로 보자-숫자놀음엔 ‘보수적’이어야 하니까. 보수의 55 중 새누리가 무려 40을 점하고 있다. 자, 보수를 수구와 (합리적)보수로 쪼개 보자. 수구 극한치는 30 정도로 본다-MB 말년의 지지율이었다. 새누리가 +10을 가져가는 상황은 민주당의 입장이 불분명해서 +5에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감 +5에 기인한다.
김종인은 합리적 보수 스탠스를 취하며 새누리를 최소 30까지 깍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새누리당엔 지금 합리적 보수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잔존한 인물들도 공천에서 다 날려버릴 작정인 모양이다─유승민은 죽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새누리당도 요단강 건너기 직전이다. 선거 국면이 첨예해지면 지지층+유동층까지 85. 30으로 묶으면 나머지는 55, 35면 50, 40이면 45다.
선거 열기를 뜨겁게 해야 보다 유리할 것, 만약 유동층이 5 정도 줄어든다면 상당히 불리해질 것이다. 30까진 어려울 것이고-박근혜 +5가 크다- 대략 35~38정도면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일 것이다. 만약 30까지 깍는다면 김종인은 필설로 형용을 불허할 승부사로 기억될 것이다.
합리적 보수를 취해서 진보적 지지층의 이반은 어떻게 할 것이냐, 아주 크게 문제되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정의당 찍거나 투표를 안할 사람들이다. 새누리로 넘어간다거나 국민의당을 택할리는 없다. 정의당은 지금도 원내교섭단체가 요원하여 좀 내어준다고 큰 의미는 없다-어차피 비례대표가 줄어드는 바람에 정의당 이득은 미미하다. 선거 열기가 더해지면 군소정당에 불리한 결집효과까지 나타날 것이다.
반면에 김종인이 내놓는 경제 정책을 보면, 진보에 어필할 법 해서 아주 큰 이탈을 가져오진 않을 것이고 보수층이라도 이른바 ‘수동 혁명’ 수준이라 유별날 정도의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손익계산서는 거의 변함없다.
국민의당은 포지션이 없거나 굳이 있다고 해도 ‘새누리-민주당’ 사이라 더더욱 의미 없다. 애초에 ‘이념 없음'(…)을 표방했고, 이념적으로 움직이기엔 이렇다할 브레인도 대표할 만한 인물도 없다. 이념 이상돈에 인물 정동영이라 한다면 그게 바로 윤여준이 말한 제갈량 10명도 못 풀 난제 중 하나일 것이다.
정책은 귀여운 수준이다. 정치 혐오자 성향다운 포퓰리즘적인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고 포퓰리즘이 아닌 양 유권자를 설득할 수준도 못된다. 아무리 민주당이 무능한들 고작 장하성 하나로 뒤집혀질 멍청이는 아니다. 장하성이 그렇게나 대단할 인물도 아니고. 정의당이 운신의 폭이 협소하다 해도 국민의당보단 나을 것, 국민의당은 ‘새누리-민주당’ 사이에서 ‘압살’될 것이다.
더민주는 ‘이기는 길’로 가고 있다
새누리 치세가 가히 혼돈스러운 탓에 민주당의 비판적 혹은 진보적 지지층도 결국 마지못해 민주당을 찍을 것이다-탈당을 하니, 다른 당 지지하니 말로는 그래도 대부분은 민주당 찍게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를 38정도로 묶고 야권이 42에서 47정도가 될텐데 그래서 이길까? 총합으로나 그렇다는 것이고 승리를 담보하는 숫자는 아니다. ‘부분’에 불과하다.
사실 38은 실제 새누리당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로 나오는 수치다. 그러니 뇌관은 국민의당. 새누리당이 그간 야권단일화를 맹비난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전분열과 비합리적인 선거구제로 다수당을 점해온 것이 새누리당의 전략이었으니까.
김종인은 국민의당을 죽여버리기로 결심한 것 같다. 지금껏 없던 전략인데, 내 개인적인 기호와는 별개로─나는 국민의당 경멸한다─, 매우 효과적일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국민의당이 전국적으로 준동하는 것도 아니고 호남은 경쟁체제로 가도 무방하며 문제는 수도권이다. 그런데 이미 수도권에서 국민의당이 정의당에조차 밀리는 결과가 나오고 있어서, 이대로 간다면 자연히 사멸할 것으로 보인다. 반전? 최소한 국민의당 자체 역량으론 안된다. 사실은 알파고가 오메가고로 돌아와도 불가능할 일이다.
정리하자면 김종인의 합리적 보수 스탠스와 국민의당 사멸 전략은 상당히 현명한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여기까지 읽어보셨다면 두 전략은 상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고, 내 생각엔 가능한 방법 중에서 양수겸장 거는 최상의 외통수다. 새누리당은 합리적 보수의 가능성을 스스로 잘라내고 있으며 국민의당은 애초에 존립이 위태했는지라 스탠스 잡을 깜냥도 안된다. 정의당의 반사이익은 0에 수렴한다.
물론 정청래를 좋아하던 여러분들에겐 대단히 유감스럽긴 하다. 난 민주당이 가진 문제의 본질은 원칙없는 통합과 영입, 그로 인한 잡탕 정당화라고 봤다. 그래서 안철수와 호남 정치인들의 이탈을 잘된 일로 생각했다.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무작정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고 잘라내 정제하는 것이다. 수구는 새누리당으로 합리적 보수는 민주당으로 그리고 진보는 정의당 기타로, 이게 맞다.
오히려 민주당이 그간 모자란 역량으로 보수와 진보를 한 몸에 담으려 한 것이 작게는 민주당의 패착이었고 크게는 국민의 고통이었다, 적나라하게는-과장은 아니다- 민주당의 ‘원죄’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진보적 지지층이 느낄 배신감의 반은 그렇게 해온 민주당의 책임이고 나머지 반은 진보가 아닌 민주당을 택한 지지자 본인의 잘못때문이다.
합리적 보수 스탠스가 어느 정도 귀족(?)스러운 느낌을 낸다면 정청래 컷오프는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난 귀족정스러움이 지지층에 어필하는 것도 크다고 본다. 이건 정치인의 잘못이 아니라 국민의 허세 혹은 무지라고도 보고, 김종인의 카리스마는 그 무게를 견줄 이 없을 ‘권위’에 있다. 재차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변엔 이런 사람들 많다. 아재들 말고도 말이다. 그래, 당신말이다.
정치는 한 순간이 아니다
진보적, 비판적 민주당 지지층이자 정권교체 열망이 강한 분들께 다시 말씀드린다. 당신의 생각보다 많다. 엄청나게 많다. 감정에 표를 준다면 당신은 필승하겠지만, 사실 당신은 소수다. 일희일비하지도 마시라. 정치는 순간이 아니다, 당신의 평생과 함께한다. 당의 의사결정이 당신의 마음과 전적으로 일치할리는 만무하다. 그냥 따져봐도 어떻게 10만─신입당원이 그 정도라 들었다─의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물론 비대위에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납득할만한 설명은 했어야 한다. 이러니 조국 교수가 계몽군주라고 하는거지. 인간은 스스로 이해해야 납득할 여지가 있다. 김종인이 계몽에 힘쓸 타이밍이 다시 온 셈.
이거 마음에 안들어서 그만 두고 저거 별로라고 때려치우고. 이게 당신이 소수라는 반증이다. 그게 ‘유동층’의 정의(definition)니까. 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투표권─이를테면 당대표 선거─조차 없을지 모르겠다. (보통 당원 기간이나 당비 납부 기간을 투표권의 조건으로 둔다.) 정치를 투표권 행사하는 한 순간으로만 인식할 때 당신의 권리는, 그래서 당신의 가치는 급전직하한다. 가장 크게 배신감을 느낄 사람은 당신이다. 하지만 당신의 책임도 반절임을 잊어선 안 된다.
정당은 정당이지, 인물이 아니다. 민주당 아닌 정청래를 지지한다 해도 당신의 자유지만, 최소한 당신은 스스로가 무책임함을 느껴야 한다. 손혜원 위원이 정치적 아마추어임이 드러난 장면이기도 하고. 나는 정청래를 포함한 모든 컷오프된 의원들─당연히 이해찬도─의 무소속 출마를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이해할 수 없는 컷오프는 김종인 비대위에게 ‘설득의 책임’을 안겨주는 것이지, 컷오프된 의원들에게 무소속 출마의 명분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정치를 종교적으로 볼 이유는 한 톨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나는 컷오프된 의원들이 ‘순명’하는 태도를 갖추길 간절히 바란다. 그 정도로 나라가 위태하다.
한간에는 정의당으로 이적해 출마하라는 말도 있던데, 그건 의원들 개개인의 이력에 먹칠하는 짓이다. 정의당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철새로 전락된다는 의미다. 비정하다고 한들 무용하며, 숨을 골라야 할 때가 있고 과실 하나를 맺자고 가지치기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여간 세상엔 치열함이나 진득함보다 고상한 양 사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귀족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유동층이나 이 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유동층’이여, 당신이 열렬히 지지하는 정치인은 아마도 당신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치열하고 진득했을 사람들이다─일례로 은수미의 이력은 상상의 범주조차 뛰어넘는다.
들끓기보다 그들의 치열함과 진득함을 닮기 바란다. 만 분의 일만 달성해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보고 듣고 읽고 토론하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화를 내도 의미있는 분노가 된다.
덧. 며칠이 몇 년보다 더했을 번뇌와 유혹 끝에 순명의 길을 택한 더불어민주당 마포을 정청래 의원님께 진심을 담아 존경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