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AI 석사 과정이던 2001년은 이미 1차 인공지능 붐이 한바탕 불었다 시들해졌을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인공지능 업계의 분위기는 일종의 패배주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정적인 요소가 많았고,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특정 도메인에서 제한적인 역할로서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정도로만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안 그래도 딥러닝의 개발로 IT업계가 술렁이던 차에 알파고가 나타나 2차 AI 붐을 예고하고 있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 일종의 일관된 패턴을 느낄 수 있는데, 여기서 그걸 글로 정리해 볼까 한다.
신기술 쇼크
예상했던 대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자마자 언론에서는 항상 써먹는 레퍼토리가 흘러 나왔다. <터미네이터>의 영상을 내보내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내용의 보도 말이다. 20세기 말에도 언론에서 자주 보던 영상과 멘트들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심리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무지한 인간에게 기술은 일종의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에서부터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그것은 이카로스의 날개가 될 테니 남용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어 왔다는 게 증거이다.
이카로스는 밀납 붙인 날개를 달고 자신을 가둔 미궁을 탈출했다. 하지만 그에 도취되어 너무 높이 난 나머지 태양에 녹아 추락해 죽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가 만든 날개로 우리 스스로가 파멸할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미 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너무나 많은 날개를 만들어 왔다. 말보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 들짐승을 날게 하는 비행기. 공장 제조 라인의 수많은 섹터에서 인간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며, 칼로 백만번을 찔러 죽여야 할 걸 약간의 광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질 때 마다 똑같은 패턴으로 반응한다. 놀라워하고, 걱정하고, 도입하고, 문제를 해결한 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내겐 알파고에서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예전의 그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알파고는 그저 기능적 성과일 뿐이다
알파고가 인간을 이겼다는 식의 호들갑을 자제하기 위해 조금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인공지능을 내 방식대로 쉽게 풀이하면 이렇다.
AI = 특정 입력에 가장 적합한 답을 내주는 소프트웨어
써 놓고 보니 그냥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그 ‘특정 입력’에 대해 ‘적합한 답’을 찾기 위한 경우의 수를 프로그래머가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인공지능의 수준이 한 단계씩 올라가야 한다. 가장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은 rule-base 방식이다. 이게 방금 얘기한, 한 마디로 모든 경우의 수를 프로그래머가 다 고려해서 프로그래밍하는 방식이다.
그다음으로 높아진 수준, 이게 내가 대학원에 있던 시절 가장 주류였던 분야인데, 통계적인 방법이 있다. 한마디로 투표자들 모두에게 물어보지 않고 샘플링된 출구조사를 통해 당선자를 알아맞히듯,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하지 않고 일부를 학습하여 “이번 수를 여기에 놓으면 이길 확률이 51%이다”라는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여기서 인공지능은 그저 수학, 통계학의 한 종류이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좀 더 설명하자면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인공지능의 수준은 그저 이런 통계적 방법이 주류였으며 이를 통해 이미 어마어마한 돈을 번 곳도 많다. 그 대표적인 회사가 알파고를 만든 구글이다. 구글은 페이지랭크라는 검색 기술로 검색엔진 시장의 일인자가 되었고 그 검색 기술이 바로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리는 통계적 추론 분야이다.
이 검색어와 통계적으로 가장 유사한 문서를 나열하시오.
그 밖에 통계적 방식의 인공지능으로 돈 번 곳으로, 영화 추천의 정확도로 유명해진 넷플릭스, 애플이 만든 음성 인식 엔진 Siri, 그리고 내가 있던 대학원 연구실이 AI lab에서 BI(Bio Intelligence) lab으로 이름을 바꾸며 한동안 대세가 되었던 유전자 검색 엔진 등도 있겠다.
이런 통계적 방식은 대체로 인간 능력을 극복하기 불가능하다는 평을 받았기에, 초기에 일었던 붐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왜냐면 통계적으로 분석하기 어려운 영역들 즉, 사물의 이미지를 보고 무엇인지 알아맞히는 것, 대화의 내용을 듣고 그 주제를 찾아내는 것 등이 정말 그럴듯한 인공지능인데, 이런 것들을 통계적으로 해결하기엔 입력을 정형화(모델링) 하기가 쉽지 않고, 설령 모델링 하더라도 실로 어마어마한 입력양과 컴퓨팅파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이 Neural Net이라는 새로운 인공지능 영역이다. 사실 새롭다고는 하지만 내가 공부하기 전부터 있었던 분야였는데, 쉽게 말해 우리 인간의 뇌 단위인 뉴런이라는 신경 세포가 동작하는 원리를 모방한 것이다. 나 때만 해도 Neural Net은 ‘대세’가 아닌 ‘찬밥’, 즉 일종의 미운 오리새끼였다. 백조로 클 놈이긴 하지만 몇 가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서 그저 이론적으로, 몇몇 분야에서만 실험해 보는 수준이었을 뿐.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이 또한 통계적인 방식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비정형화된 문제를 풀기 적합한 수학, 통계학, 전산학의 관점에서 언젠가는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그러다 최근에 Neural Net의 한 종류인 Deep Learning에서 빵 터진거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에 써 봤자 머리만 아프니 결론만 말하자면 딥러닝은 이런 것이다.
수많은 패턴을 집중적으로 인식시키면 인간의 뇌와 같이 패턴을 인식하여 그와 비슷한 것을 보여 줬을 때 같은 답을 내 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
즉, 우리가 빨리 달리는 것을 자동차로 해결했고, 특정 키워드에 맞는 웹페이지를 네이버로 해결했듯이, 우리는 딥러닝으로 특정 패턴이 무엇인지 빠르게 알아내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알파고는 딥러닝과 수많은 전처리, 후처리 알고리즘을 통해 이세돌이 만들어 낸 포석의 패턴에서 그다음 수를 알아내는 문제를 해결한 사람의 소프트웨어다.
다행히 앞으로도 한동안 알파고는 바둑을 두면서 미생을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지면 창피해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도 안 할 것이다.
마케팅이다
구글이 알파고를 만드는 데 회계적으로 어떤 비용을 사용할까? 물론 개발자들이 개발하고 결과물 또한 명확하므로 경상연구비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비용은 엄밀히 말해 마케팅비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구글이 노린 것 또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딥러닝이 등장한 2년 전부터 인공지능 대세론이 떠올랐고, 이제 인공지능 시장 규모는 한동안 수백 수천 배 커질 것이다. 구글이 누군가? 인공지능으로 일인자가 되었고, 이제 새로운 기술로 인공지능 시장의 다른 분야를 정복하려 하고 있다. 무인 자동차, 직립 로봇, 번역, 추천 등등.
내가 생각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성공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 한가지 있다. 바로 신뢰성이라는 것인데, 딥러닝에서 해결하는 문제들 또한 일종의 통계적인 접근법이므로 100% 완전한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가능성이 큰 답을 낸다. 그래서 결과물들이 틀릴 수도 있고 모호할 때도 잦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성이다. 쉽게 말해 “우리 남편 사업에 성공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용하다는 점쟁이가 “물을 멀리하고 가장 믿는 사람이 배신할 수 있으니 그것만 조심하면 돼”라고 한다면 그대로 믿어 버리고 나중에 실패하더라도 “당신이 그때 그 친구와 바닷가를 가서”라고 생각해 버리는 사모님의 심리와 비슷하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를 구글이 만든 무인 자동차에 탑재했다고 하면 그 차의 신뢰도는 높아지게 돼 있다. 이는 실제 자동 운전의 성능과 무관하다. 성능이 똑같더라도 ‘구글이 만든 건 왠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도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구글은 서양 사람 0.1%도 하지 않는 바둑 프로그램 만들며 돈을 퍼붓고 있는 것이고, 넷플릭스가 ‘넷플라이즈’라는 대회에서 엄청난 상금을 걸고 영화 추천 알고리즘 개발 경진대회를 진행했던 것이다. (넷플릭스는 그 대회에서 1등한 알고리즘을 자사의 추천 엔진에 탑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미 자만하다
그래도 불안하다. 이렇게 하나하나 인간을 극복하는 날개를 만들어 가다 보면 언젠가 모든 면에서 인간을 극복하는 기계가 나오지 않을까?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그럴 일은 없다고 확신하지만, 굳이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 질문 자체가 인간의 오만함을 대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기계가 나오면 불안한 것은 곧 노예제 폐지 때 미국 남부 백인들이 느꼈던 느낌과 비슷할 수 있고, 동물을 보호하자고 피켓 시위하고 있는 인파를 보며 유별나게 생각하는 일부 행인들의 심리와도 비슷할 수 있다.
인간과 똑같은 기계가 나오면, 그건 인간인가 아닌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브레이드 러너>에서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작동을 멈추는 사이보그를 보며 우린 그들과의 이질성을 극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미 인간 자체가 잔혹하고, 공격적이고, 때론 사이코패스도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우리와 태생이 다르다고 하여 그들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극의 씨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똑같은 기계가 나와서 비극이 발생한다면, 그건 인간이 그만큼 불안정해서 발생하는 일일 것이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전쟁부터 우리나라 국회에서 벌어지는 유치한 싸움까지, 절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불안전한 개체들의 싸움일 뿐. 그게 뭐 대수일까? 기계가 인간을 해칠까 봐 걱정이 아니라, 기계를 만든 자본이 인간의 터전을 바닥부터 야금야금 먹어가는 모습이 혐오스럽고 걱정스러울 뿐이다.
알파고 이야기에서 참 멀리도 왔다. 아무튼, 내게 알파고는 구글의 딥러닝 마케팅으로 성공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구글은 그렇게 한동안 세계 IT 강자의 자리를 고수하며 무인 자동차, 이미지 인식, 로봇 등의 분야에서 독주해 갈 것이다.
우리 스타트업 관점에서는? 마케팅 비용이 쏠리는 곳에 기회가 있다. 인공지능의 환상에 빠져 본질을 놓치지 말고 딥러닝이 활용될 수 있는 도메인을 적극적으로 찾아봄이 어떠실지?
배달 손세차 와이퍼 또한 카매니저의 자동차 딜리버리 동선 관리를 위해 딥러닝 도입을 검토 중이다. ^^v
원문: 문현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