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에 알파고가 이길 거라 예상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가 되니 착잡한 맘 감출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셔서 이번 사태의 의미, 영향 분야, 역사적 산업적 의미, 향후 승패 전망 등을 간단히 정리합니다.
1. 알파고의 승리, 무슨 뜻인가? 곧 로봇은 우리보다 일을 잘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이 머리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컴퓨터가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코앞에 닥쳤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파란색과 푸른색이 비슷한 색이란 것을 압니다. 비가 내리면 우산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죠. 하지만 컴퓨터에게는 이런 것들을 미리 입력해 주지 않으면 컴퓨터는 알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정말로 무한히 많은) 경우가 있고, 그 모든 경우를 다 입력해 놓을 수는 없으니, 컴퓨터가 사람을 대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글 알파고에 적용된 심층신경망(DNN)이라는 기술은 모든 경우를 다 입력해서 그 경우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입력되지 않은 경우에 마주쳐도, 알고 있는(학습된) 가장 비슷한 경우를 따라서 판단 내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실제 신경망을 아주 비슷하게 재현하도록 짜여진 프로그램이죠. 그래서 비슷한 것에 대한 판단, 직관, 감 같은 것을 아주 사람과 비슷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바둑의 경우는 모든 경우를 계산해서 게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사람은 그렇게 하지도 않습니다. 알파고는 사람 신경망을 흉내내서 사람을 이겼습니다. 수년 이내에, 바둑과 비슷하게, 사람이 하는 영역의 일 대부분을 비슷하게 혹은 더 잘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어떤 분야가 그런가? 대부분이 그렇다
제일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분야로 떠오르는 것은 ‘로보 어드바이저’ 등의 투자 분야입니다. 역시 수많은 경우의 수로 구성되고,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의 상당수가 수치화할 수 있는 데다가(바둑처럼 명확하죠) 완전히 똑같은 패턴은 잘 나타나지 않지만 워렌 버핏이나 투자 고수들은 어떤 패턴을 깨달을 수 있고 큰 돈을 법니다. 이런 분야는 대체 가능할 겁니다.
공공정책이나 경제정책, 정치나 외교 분야도 비슷합니다. 다만 이런 분야에서는 결정 요인들을 어떻게 변수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아울러 얼마나 많은 샘플 케이스를 확보하고 수치화할 수 있느냐도…
법률, 의료, 회계 등을 비롯한 전문 분야 내근 사무직들은 대부분의 경우 컴퓨터가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컴퓨터들은 비슷한 단어라도 입력된 단어로 찾지 않으면 판례조차 찾아주기 어려웠는데, 이 기술을 사용하면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는, 더 나아가 다른 분야의 비슷한 판례나 비슷한 케이스의 다른 판결 내용까지도 찾아주고 사람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중학 2학년인 83년부터 ‘사람보다 똑똑한 초지능(hyper-intelligence)을 만드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연구를 해 오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만큼, 혹은 그 이상 똑똑한 존재를 만들면 그 존재에게 모든 난제 – ‘너 자신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봐’를 포함해서 – 의 해결책을 찾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파고 수준의 인공지능이라면 이제 사람이 맡던 난제들을 맡길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3. 왜 우울한가? 고용의 미래는 인공지능이 앞선 일부 기업에 달렸다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의 직업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구글과 IBM 등 관련 기업들이 앞다퉈 기술을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전문성과 노력으로 사람만큼 일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될 겁니다. 실제 그런 프로그램들이 영역별, 업종별, 직급별, 산업별로 등장하면서 그 총 비용이 사람의 고용비용보다 떨어지는 시점이 수년 내에 올 것이기 때문에, 알파고의 승리는 고용의 위기에 대한 서곡입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창의력, 비판력, 직관이 필요한 사무직/전문직은 괜찮고 육체노동직이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믿고 있다던데, 내근사무직/전문직이야말로 가장 먼저 대체될 직종입니다. 이번에 구글이 입증한게 그 능력이니까요. 게다가 그게 공개된 기술이라, 똑똑한 사람들이 인간 대체 S/W를 만들어낼 수가 있고, 그 결과물은 컴퓨터 소프트웨어라서 값이 쌉니다. 사람 고용비보다 훨씬 싸다는 거죠.
반면, 값비싼 로봇을 써야 하는 육체노동직, 대면직종 등은 거의 마지막에 대체될 직종일겁니다.(세일즈맨, 외과의사, 가사도우미, 청소미화원, 경찰/소방직 등이 그렇겠습니다)
더구나 그런 기술들은 대자본이 만들었고,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와 대규모 학습용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구글, IBM 같은) 대자본들, 선발주자들에게 유리합니다.
자본주의 속성상 자본으로 개발된 기술은 고용의 안정이나 사회적 부의 증진, 균등화보다는 더 심한 자본 축적과 부의 불균등화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제가 구글보다 더 빨리 성공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구글보다 빨리 뭔가를 해내겠다고 한 것은 거의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앞으로 모든 한국의 IT 기업들은 구글 기술을 공부해서 그거 갖다 쓰는 응용 연구에 매달리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야 남들보다 빨리 돈을 벌테니까요. 그게 맞을 수도 있고요. IT 기업 아닌 곳들까지도 자기들 분야에 구글 기술을 접목할 궁리를 해야 생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울합니다. 제 자식들의 고용과 노동의 미래가 구글등 대자본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구글을 이기는데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4. 대회 자체의 승부는 내일부터
아마도 2국부터는 한번 진 이세돌 9단이 알파고 자체와 이번 대국 자체를 객관화 하고 좀 더 자기다운 바둑을 두면서 승부를 박빙으로 가져가리라 봅니다. 오늘 승부 자체를 보니 알파고도 오판을 꽤 하더군요. 그런 것들을 잘 활용하고 큰 실수를 안 하면 이 9단이 이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오늘 대국으로 알파고는, 심층신경망은 인간 직관의 영역을 인간 수준 가까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제는 누가 그 기술을 더 빨리, 더 영향력있는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PS. 심층신경망과 인공지능, 그리고..
참고로 전산학계에서는 신경망으로 인공지능 연구하는 사람들을 connectionist-연결주의자-라고 하고, 거기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symbolist-기호처리자-라고 불렀습니다. 심볼리스트가 1960년대 이후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주류였고, 인공신경망으로 상징되는 연결주의자는 80년대말 이후 2010낸 전후까지 고사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 그래서 국내외에 관련 연구자가 적죠.
저는 커넥셔니스트에 해당하는 사람인데, 90년대 초에 인공신경망과 기호처리쪽의 장점을 취합한 ‘유사지능’의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해 오랫동안 준비를 하고 작년부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 아래 두 그림을 보시면 문장구조가 같은데도 ‘동생이’의 서술어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사람은 하는데 컴퓨터는 못 하는 일이고, 신경망을 쓰지 않고도 컴퓨터가 해 낼 수 있게 제가 작년에 성공을 시켜서… 범용 인공 지능 분야에서 구글보다 제가 앞서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DNN 기술과 구글이 신경망 자체로 월등히 앞서 나가 버렸네요.
이제 설사 제가 저의 이론대로 구글보다 월등한 것을 만든다 해도, 사람들은 구글 기술을 활용하려 할 것이고, 그런 구글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착잡합니다.
원문: 안빈낙도 블로그 – invent HYper iNTELig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