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정하는 일은 항상 어렵죠. 브랜드 이름을 지을 때 영감이 될 만한 잘 지은 이름 10가지를 정리해봤습니다. 평소에 메모해둔 것들입니다.
1. B612: 마음으로 찍는 셀카
가장 잘 지은 앱 이름을 하나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B612’를 꼽고 싶습니다. ‘B612’는 생텍쥐페리의 명작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의 이름이죠.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 볼 수 있어”라는 명대사를 인용해 ‘마음으로 찍는 셀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카메라 앱의 핵심 타깃이 10-20대 여성인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런 감성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름을 찾아냈다는 게 감탄스럽습니다. 이 이름을 떠올린 라인 직원분은 자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2. 리멤버
‘리멤버’는 카메라로 명함을 찍으면 직원들이 수기로(!) 입력해 저장해주는 명함관리 앱이죠. 듣는 순간 서비스의 핵심 기능이 바로 전달되면서 아재들도 외우기 쉬운, 가장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아낸 느낌입니다.
3. 왓챠
“갓챠(Gotcha, I’ve got you)”라는 말에서 뽑아낸 왓챠(Watcha)도 멋진 이름입니다. 본 영화를 저장하고 아직 안 본 영화 중 재밌게 볼만한 영화를 찾아주는 서비스에 잘 어울리죠. 타깃층에 맞게끔 새롭고 젊은 서비스라는 느낌을 주면서 글로벌 시장에도 먹힐 것 같은 훌륭한 이름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단점이 하나 있다면 ‘왓챠’인지 ‘왓차’인지 헷갈린다는 점.
4. Queen Guard Glasscoating
지나가다 차 유리에서 본 이름인데요. 와 잘 지었다, 생각 들어 바로 메모해뒀습니다. ‘Queen’이라는 단어가 핵심이죠. 철통같이 단단하고 절대 실수 없이 지켜줄 것 같은 이름이면서 동시에 여성 운전자까지 잡을, 잘 지은 이름인 것 같습니다.
5. 풀무원: 바른 먹거리
‘풀무원: 바른 먹거리’ 이 이름 하나로 깨끗하고 좋은 재료를 쓸 것 같은 브랜딩에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풀무원에 대해 전혀 모르죠. 그런데도 이름 때문에 왠지 풀무원의 먹거리는 좋은 재료를 쓰고 깨끗할 것 같지 않나요? 사실 풀무원은 이름만큼 바르지만은 않고, 화물 노동자 부당계약 등 잡음이 있는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브랜딩의 힘…
6. 면사무소
저희 회사 근처에 있는 국숫집입니다. 정말 센스 있지 않나요? 찾아보니 체인점이더라고요. 직장인이라면 퇴근길에 국수를 먹고 가야 될 것 같은 이름입니다.
7. 여기서헤어 & 오바마노래방
동네마다 미용실과 노래방은 엄청 많잖아요. 다 거기서 거기인 이름들 사이에선 이렇게 확 가버리는 이름도 좋은 것 같습니다. 오바마노래방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도무지 저 이름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8. 잘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은 영화도 잘 찍지만 제목 짓는데도 비범한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의 제목은 듣는 순간 어떤 영화일지 호기심이 생기고 입에 착 붙는 것 같아요. ‘ㅍㅍㅅㅅ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같이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름입니다.
9. 자바스크립트 닌자 비급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인 제이쿼리(jQuery)를 만든 존 레식 형의 책입니다. 뭔가 어마어마한 걸 신속하게 가르쳐줄 것 같은 책 제목 아닌가요? 원제는 ‘자바스크립트 닌자의 비밀(Secrets of the JavaScript Ninja)’입니다. 번역도 센스 있게 잘된 것 같네요.
10. 과학하고 앉아있네 & 과학같은 소리하네
‘과학하고 앉아있네’와 ‘과학같은 소리하네’는 정말 재밌는 과학 팟캐스트입니다. 전 살면서 지금까지 과학 공부라는 걸 해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었는데요, 이 팟캐스트를 듣고 너무 재밌어서 과학, 특히 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왔다 갔다 듣다 보면 상대성이론이 뭔지 대략이나마 이해하고, 반복해서 들으면 양자역학이 뭔지 이해한다고 착각할 수 있게 됩니다.
참고로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이름은 이 팟캐스트의 진행자/기획자이신 파토(원종우) 님께 허락받고 천재적인 네이밍 센스를 빌려온 것입니다. 파토 님의 책 『태양계 연대기』, K박사 님의 책 『우주의 끝을 찾아서』 역시 간결하게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잘 지은 제목입니다. 책 역시 팟캐스트처럼 과학을 잘 모르는 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쓰여 재밌습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팟캐스트 들어보기
맺는말
이름을 짓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영감을 줄 만한 좋은 이름들을 찾아보며 뇌를 자극해놓고 나서, 오랜 시간 머릿속에서 이렇게 붙여보고 저렇게도 굴려본다면 머지않아 괜찮은 단어 하나를 얻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원문: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