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실마리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 20년 지기 친구들을 만났다. 3구에 있는 새로 생긴 식당 ‘엘머(Elmer)‘는 변화하는 파리를 보여주는 듯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프랑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넓고 탁 트인 공간, 모던한 나무 인테리어에 일단 기분이 좋아졌다. 왠지 즐겁고 맛있는 점심이 될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유쾌했던 점심시간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러자 미카엘은 내 사진에 친구 하나를 태그한다. 누군가 가서 보니 좀 전에 테이블에서 만난 식당 주인이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한다. 생전 처음 보는 이름과 얼굴의 사람들이, 그의 친구들이 이 한 장의 사진을 매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엘머라는 식당을 배경으로 우리의 찰나는 계속 살아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엘머와 내 친구들, 숭어 요리와 한국의 지인들, 낯선 사람들, 심지어 그 가족들과의 공감과 연결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떤 발견의 희열을 느꼈다. 비즈니스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번 글을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커머스를 사례로 들면 우리는 제조사라서 어려워요, 데이터를 사례로 들면 우리는 데이터를 쌓지 않는 연구소라 어려워요, IoT를 사례로 들면 우리는 오프라인 유통이라 달라요. 개념을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필드에 적용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밥 안 먹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문제의 정의
이번 글에서는 연결된 세상에서 어떻게 미디어와 비즈니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비즈니스의 진화, 무엇보다 ‘사회적’ 진화를 함께 논의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미디어 개념에 대한 공감이 필요할 것이다. 미디어는 사회를 이해하는 관점이다. 사회관계를 반영하고, 창조하며, 현상을 증폭시킨다.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도구가 미디어로 정의되던 시대, ‘대중’에게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던 시대의 미디어는 끝이 났다. 연결된 세상에서 미디어는 관계를 만드는 모든 것,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 모든 것을 아우르게 되었다.
미디어에 대한 시대적 관점은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열쇠다. 비즈니스 자체가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연결된 세상이 이전 세상과의 단절이라면 비즈니스의 본질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관계’라는 유기적 틀로 재편되는 지금 비즈니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왜 ‘파는’ 것이 목적인 시대가 끝났으며 비즈니스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식당을 메타포로 사용하고 샤오미를 사례로 쓸 것이다. 업이 무엇이든 비즈니스의 본질은 같다. 식당이 샤오미로 전환되는 대목에서 여러분도 나와 같은 발견의 희열을 느끼기 바란다. 그 발견을 돕는 것이 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1. 가치의 전환, 주인공의 탄생
유학생 시절에는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닐 돈도 없었지만 20년의 세월 동안 파리의 식당이 많이 변한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식당 하면 새하얀 식탁보와 금빛 반짝이는 접시, 손님을 주눅이 들게 만드는 엄격한 서비스와 비싼 가격이 떠오르지는 않는가?
반갑게도 손님보다 식당이 존귀하고 규율 넘치는 테이블이 맛을 압도하던 시절은 조용히 가고 있다(고전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고급 호텔보다 에어비앤비, 베르사유 궁전보다 갓 구운 바게트, 신선한 채소와 생선을 파는 동네 가게가 관광객을 빠리지엥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구경’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주는 여행이 가능해졌다. 에펠탑과 베르사유 궁전보다 그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왔다.
엘머와 같은 ‘네오 비스트로(Neo bistro)‘는 이러한 시대적 현상의 반영이다. 지금 파리는 저렴한(?) 가격에 예술의 경지를 노리는 식당들, 네오 비스트로의 춘추전국시대다. 젊고 창의적인 음식을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 이들의 음식은 프랑스 음식의 전통을 깨지 않으면서도 신선하고 재기 발랄하고 솔직하다. 판에 박힌 일상에서 우리를 꺼내준다. 이 모든 평범한 듯 조화로운 특별함은 우리의 만남을, 이야기를, 유쾌함을 더욱 특별한 순간으로 승화시켜준다.
여기서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다. 짐멜(Simmel)이 ‘식사의 사회학’에서 지적한 사회화 과정이 이제 식탁의 범주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2005). 찰나를 즐기는 우리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때, 그 찰나에서 작은 연결이 만들어질 때, 심지어 기록되고 공유될 때 의미를 만든다. 식당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사소한 연결을 돕는 것이 이들의 비즈니스가 되고 있다.
2. 연결의 주체, 성장하는 미디어
과거에는 제품이 주인공이었다. 제품을 미디어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선형적 과정에 비즈니스가 있었다. 이 과정이 짧고 빠르며 대규모로 이뤄질 때 성공한 비즈니스로 보았다. 매스 미디어는 이 활동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연결된 세상에서 사용자는 스스로 모든 유형의 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되었다. 아래 그림과 같은 선형적인 비즈니스의 시대가 가고 있다. 대신 제품은, 콘텐츠는, 누군가는, 식당은 우리가 만드는 연결의 매개체로 작용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 연결 하나하나에 비즈니스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연결을 도와준 제품이 내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는 순간 제품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소비재를 넘어선다. 연결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내 연결의 콘텐츠가 된 숭어회처럼.
식당은 오가닉 미디어 현상의 상징이자 메타포다. 우리는 모두 연결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미디어가 되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기꺼이 사람들이 가치를 발견하고 선택하고 공유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네트워크가 바로 미디어로서 그 사람을 정의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왜 샤오미는 비즈니스의 본질적 변화인가?
샤오미는 주인공으로서, 오가닉 미디어로서 사용자가 성장하고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즈니스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샤오미 자신도 미디어로 진화하고 있다. 식당의 진화가 연결된 세상에서 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면 샤오미는 그 원리를 비즈니스로 해석하고 적용했다. 최근 5년간 샤오미가 보여준 행보가 증거다.
1. 네트워크가 샤오미의 제품이다
나는 샤오미의 비즈니스 철학을 담은 리완창의 책 <참여감>을 읽으면서 여러 번 놀랐다. 정말 이런 생각으로 사업을 해왔다는 말인가 놀랐고 내가 2년 전 쓴 책 <오가닉 미디어>의 개념을 교과서처럼 담고 있기에 놀랐다. 마치 이론서가 사례집으로 둔갑한 것 같았다.
“지금 젊은 세대가 소비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 참여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경하고 만져볼 뿐 아니라 참여를 통해 그 브랜드와 함께 성장하고 싶어한다.” <참여감>
2010년 샤오미가 MIUI(샤오미의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처음 출시했을 당시 샤오미의 팬은 50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 50만 명이 되었고 2014년 기준으로 2000만 명에 달한다(<참여감> p. 206). 샤오미의 사용자들 중에서 자신의 샤오미 계정을 친구들에게 빌려주는 사용자는 20%나 된다. 그들은 친구들이 샤오미 제품을 추천하고 쉽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업사원이다. 제품을 사용하다 질문이 생기면 샤오미 직원보다 친구들을 먼저 찾는다. 이 팬들은 샤오미의 직원이다.
단순히 소셜 미디어를 잘 이용하는 샤오미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다. 이들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하길래 스스로 이렇게 열성적인 직원이 되기를 자처한단 말인가? 샤오미는 이것을 ‘참여감’이라고 표현한다. 제품의 개발과정부터 판매, 홍보, 운영까지 일련의 과정에 팬들이 모두 관여한다. 이 과정에서 얻게 되는 참여감, 소속감이 인센티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참여에 기반한 소비 행태를 넘어 비즈니스 본질의 진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팬들은 샤오미의 기획자, 개발자, 테스터, 마케터이며 샤오미의 제품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된 관계에 있다. 연결된 세상에서 제품은 더 이상 구매할 대상도, 소비자에게 공급할 재화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용자가 참여하는 과정 즉 제품과 사용자의 연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크가 궁극에 샤오미의 제품이다. ‘재화의 판매’에서 ‘사소한 연결의 합’으로 비즈니스의 본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 사용자의 연결 활동을 돕는 비즈니스다
샤오미는 연결된 세상에서 비즈니스의 주인공이 자사의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사용자가 왕이라서 섬기라는 뜻이 아니다. 주인공이 일생의 이야기를 일상을 통해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사소한 연결이 (제품, 콘텐츠, 친구, 발견, 선택 등) 이들의 네트워크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품의 역할, 샤오미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샤오미의 사례는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서로의 미디어로 동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이 샤오미의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연결 활동을 ‘도와주기 위해’ 비즈니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비즈니스의 실체는 제품을 만드는 조직과 시스템에 있었다. 하드웨어를 제조하는 시스템, 계층구조가 있는 (관료)조직이 삼성전자의 비즈니스를 말해왔다. 이 조직을 없애면, 삼성전자의 비즈니스도 사라질 것이다.
이에 반해 샤오미 비즈니스의 실체는 네트워크다. 샤오미의 직원, 제품, 사용자로 이뤄진 네트워크는 스스로 진화가 가능하다. 제조 시스템, 조직이 만들어내는 가치보다 이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더 큰 것이다. 수백, 수천만, 수억의 사용자 한 명 한 명이 만드는 평범한 연결이 반복되고 쌓여 만드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일상을 발견의 즐거움으로 만들어 주는 과정에 가치가 있다. 이것이 연결 비즈니스, 오가닉 비즈니스의 실체다.
3. 구성원도 미디어로 성장한다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도 같은 법칙을 따른다. 조직보다 구성원이 우선하는 구조, 위계보다 소통이 우선하는 구조가 없으면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네트워크는 자산으로서 만들어질 수가 없다. 네트워크가 곧 제품이 되는 시장에서 구성원은 네트워크의 일부이자,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미디어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에서는 각 구성원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사용자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과 밖의 경계를 없애고 소통 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는 노력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시스템보다 미디어로서의 역할이 우선해야 한다. 샤오미에서는 개발자가 사용자와 직접 소통하고 그 결과 MIUI를 일주일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며 제품에 반영한다.
구성원의 주인의식은 모든 경영자의 바람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만드는 제품의 팬이 되는 것은 기본이고 조직은 유연하고 투명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은 단순하고 공개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샤오미 매장의 개선 사항은 건의하고 보고하고 논의하고 보고하고 기다리지 않는다. 의견을 게시판에 개진하고 운영팀 내에서 3인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바로 실행된다. 의사결정 과정은 빠르고 투명하다. 더 많은 직원이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선순환이 된다.
비즈니스의 목적과 결과, 유기적 네트워크
“과거에는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고 나면, 그것으로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관계는 끝났다고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그때부터 소비자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참여감, p. 21>
이 철학은 지금까지 샤오미의 진화를 이끌어왔다. 나는 오가닉 미디어 시대에는 ‘끝이 곧 시작‘이라는 말을 여러 번 강조해왔다. 연결된 세상의 모든 비즈니스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유기체의 진화를 만드는 것은 오직 연결(관계)뿐이다. 네트워크를 만들지 못하는 기업은 성장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다만 이 네트워크는 시스템처럼 구축되는 것도 아니고 사업자 혼자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사용자의 소셜 관계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사용자가 연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즉 미디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과정에서 구축되는 네트워크를 말한다. 비즈니스가 연결을 만드는 미디어로 작동할 때 가능하다.
아마존은 제품-사용자-제품의 연결을 통해 매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사용자에게 발견의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쇼핑이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되도록 만들었다. 아마존은 제품을 팔지 않는다. 정보의 연결을 통해 사용자가 발견의 즐거움을 얻도록 ‘도와준다’. 그 결과 아마존의 비즈니스 자체가, 판매자-구매자-협력자의 관계가 네트워크로 성장하고 있다.
아마존이 연결의 결과를 놓고, 데이터가 연결된 결과를 놓고 오가닉 미디어를 얘기할 수 있는 사례라면 샤오미는 그 과정을 훨씬 더 서사적(narative)으로 보여준다. 샤오미는 제품을 통해 사용자가 이야기를 만들고 참여하고 소속감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 결과 제품은 네트워크가 되었다. 삼성전자도 샤오미의 네트워크를 도입(?)하거나 복제할 수 없다. 유기적 진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돌연변이처럼 나타나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많은 회사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업의 종류가 다르고 과정과 전략이 다르고 사용자의 관계가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유기적 네트워크가 제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본질은 모두 같다.
비즈니스의 사회적 진화
지금까지 비즈니스의 본질적 변화를 사용자가 미디어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네트워크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여기서 미디어는 신문, 방송이 아니다. 데이터, 사람, 정보, 제품 등 콘텐츠가 무엇이든 간에 연결을 만드는 모든 주체다. 사업자도 조직도 사용자도 가족도 모두 미디어로서 존재한다. 모두 같은 노드다. 사업자는 그 연결이 즐겁고 유익하고 빠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비즈니스(기업)는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관점이다(<막스 베버>). 이를 조직, 경제활동, 재화의 거래 관점에서 설명할 뿐이다. 과거에는 흩어진 개인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관료제(bureaucracy)가 필요했고 한정된 (언제나 불충분한) 재화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창출했다.
그런데 이미 개인들이 연결되어 있고 재화(생산자)가 넘쳐나며 부족한 것은 시간뿐인 세상이 왔다. 모두가 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되었고 연결된 개인이 매 찰나 생산하는 관계들이 모여 역사를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서 비즈니스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산물로서 길을 묻고 길을 내고 있다. 사회적 연결을 돕는 주체로서 비즈니스는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다시 미디어의 사회적 확장의 증거가 된다.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자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주체로서 미디어를 다시 정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 끼의 식사, 물건의 구매, 장소 좀 이동하는데 무슨 정의로운 의식이 필요한가. 비즈니스는 이 하찮은 기록이 의미가 되고 연결이 되고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그 결과가 미디어로, 즉 네트워크로 나타날 뿐이다. 비즈니스는 이 사회적 관계의 결과물이자 액셀러레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