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CSR Dead?
이 도발적(?)인 주제에 토론자들도 매력적이었던 토론회를 굳이 시간을 내어 첫 번째 글과 두 번째 글을 통해 요약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정리가 필요한 이슈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토론회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CSV(공유가치창출) 각 영역에서 원조 또는 대부라 불리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여서다. 수준 높은 논쟁이 오갈 것으로 기대했고, 역시 기대대로였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도 CSV 거품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 전에 이런 치열한 논쟁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달랠 겸 내 생각을 글로 가다듬어 본다.
나는 마크 크레이머가 피력하는 CSV의 필요성과 영향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CSV라는 개념은 확실히 ‘현실’에서 ‘기존의 경영방식’을 가진 기업들에게 사회를 향한 강력한 동인을 ‘거부감 없이’ 제공해줄 수 있는 유용한 개념이다. 성과 측정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실제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성공적인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에서 네슬레가 실행하는 CSV, 그리고 마크 크레이머와 FSG가 하는 일은 높이 산다.
그러나 마이클 포터는 아니다. 그는 CSV를 자기의 의도에 맞게 재단하고 자신이 철통같이 믿는 이론의 옷을 입혀 세상에 내보였다. 2011년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CSV 논문을 발표한 이후부터는 상당 기간 계속해서 CSR에서 CSV로 ‘진화’해야 한다고 다니는 곳마다 ‘설파’했다. 유럽과 미국의 CSR 전문가들과 교수들로부터의 거센 비판에 부딪혀 지금은 한 발 물러났지만, 문제는 이미 포터식 CSV 신봉자들이 상당수 생겨났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학계나 기업이나 포터 교수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유독 우리나라에서 CSV 광풍이 더 심하다. 그래서 나는 CSV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대부분의 컨설팅, 사회공헌, 비즈니스 개발에 일단 우려의 시선을 들이민다. 포터 교수가 주장한 이 개념이 어떤 크고 작은 문제와 부작용을 보이고 있는지는 지식으로나 경험으로나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CSR 학자인 인하대 김종대 교수의 글에 워낙 잘 나와 있으므로 깡그리 생략하고, 보다 경영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딱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CSV가 우리나라에서 유행을 얻기 시작하던 초기에 나는 강의든 회의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네슬레의 CSV 체계와 이 회사의 거버넌스를 소개하곤 했다. 그 이유인즉슨, CSR이나 지속가능성에 대해 깊이 탐구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네슬레가 처음 세상에 소개한 CSV 체계를 자의적으로 쪼개 퇴행적으로 취사선택하고는, 이 ‘퇴화’ 된 용어를 CSR보다 ‘진화’ 된 고유명사로 개념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CSV 유형을 일반화시키고 용어를 고유명사로 활용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CSV가 왜곡되는 빌미는 포터 교수의 논문에서부터 제공하고 있으니 비즈니스에 있는 사람들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CSV를 CSR의 다음 단계로 곡해하고 있고 CSV가 고유명사화되었을 때 생기는 그림자는 감추면서 광채만 드러내는 상황이라, 이에 대한 정화는 어떤 식으로든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네슬레의 CSV를 설명한 자넷 부트의 설명이 공감 가고 반가웠다.
네슬레의 CSV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 건가?
아래 그림은 네슬레의 CSV를 설명한 피라미드이다. 네슬레는 CSV를 처음 발표할 때부터 변함없이 이 피라미드를 사용한다.
자넷 부트가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네슬레의 CSV는 지속가능성과 컴플라이언스의 모든 요소들을 포괄하는 토대 위에 영양, 수자원, 농촌 지역개발을 수행하는 프레임으로 되어 있다. 네슬레는 이 피라미드의 전역에 걸쳐 2020년까지 달성할 38개의 목표를 관리하고 있다. 그중 맨 아래 컴플라이언스 목표가 8개, 그 위 지속가능성 목표가 6개 그리고 맨 윗단에서 영양 목표 15개, 수자원 목표 4개, 농촌 지역개발 목표가 5개다.
다음 그림은 현재 네슬레 공식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CSV 거버넌스다. 자넷 부트가 말한 대로 CSV 운영팀 같은 부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CSV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종류의 위원회, 그룹, TF가 운영되고 있다. CSV와 관련된 위원회와 태스크포스 종류를 자세히 보면 컴플라이언스, 수자원, 국제 규범 준수, 인권경영, 여성, 심지어는 아동노동과 GMO에 관한 TF까지 뻗어 있다.
즉, 네슬레가 CSV라고 명명한 기능들이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CSV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CSR 또는 지속가능성의 상당수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CSV 초기 거버넌스에서는 그나마 위의 피라미드대로 세 가지를 구분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CSV로 통합하는 진화를 이뤘다. 이런 것이 진화다. 그런데 이 네슬레의 CSV는 마이클 포터가 2011년 논문에서 주장한 CSV의 특징 또는 범주와 상당히 괴리가 있다. 심지어 그가 이전 논문에서 전략적 CSR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내용과는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흥미로운 점은 네슬레에서 CSV라는 용어를 모두 CSR이라는 말로 바꿔도 개념상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포터 교수가 주장하는 CSR과 CSV의 간극이나 긴장 관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CSR에서 CSV로 진화해야 한다는 포터 교수의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넘겨짚어 보자면 네슬레가 세상에 내놓은 CSV라는 용어는 사회 속에서 기업의 역할을 깊이 고민하고 연구해서 만들어낸 네슬레만의 고유한 CSR을 지칭하는 특수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김종대 교수나 CSV를 비판한 논문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앤드루 크레인 교수, 또는 한국에 자주 오는 마틴 노이라이트 교수 같은 CSR 전문가들이 CSV를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전략적 CSR의 좋은 사례 또는 유형으로서 위상을 가질 뿐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포터식 CSV는 자본주의도 세상도 바꾸지 못한다
CSV가 기업의 경영진에게 거부감이 없고 강한 추동력을 지닌 접근법인 것은 분명하지만, CSR을 넘어선 새로운 개념이자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독립적인 개념은 전혀 아니다. 설사 개념을 조작적으로 정의하여 보고할 때나 홍보할 때 그렇게 활용하더라도 현실에서까지 그렇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 포터식 CSV를 신봉할 경우 비즈니스는 진흙탕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진흙탕이 되는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국내에서 네슬레와는 거리가 먼 CSV 사례들 즉, 포터식 CSV를 펼치는 기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회책임 관련 부서의 이름을 아예 CSV로 바꾼 CJ그룹, 현대차, SKT, 아모레퍼시픽, KT 등과 CSV를 경영의 화두로 내 건 삼성전자 등 사례는 많다. 이들 기업이 공히 네슬레와 다른 점은 하나같이 CSV를 CSR과 긴장 관계로 설명하고, CSR보다 진화된 개념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회사들의 CSV를 CSR로 대치시켜 보면 다 이상하다. 진정성과 성과 문제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CJ는 사실 CSV에 한해서는 실행 의지와 진정성을 상대적으로 가장 인정할만한 회사다. 베트남 등에서 성공적인 CSV 모델도 개발해 확산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CJ는 그룹 오너인 회장이 횡령∙탈세∙배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CSV를 선포한 이후에만도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10대 청년인턴 투신자살, 대리점에 대한 갑의 횡포 논란, 최근에는 담함에 따른 공정위 과징금 등 사건사고와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다른 계열사인 CJ 제약은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로 지난해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CSV를 적극 추진하면서 그 바탕이 창업주로부터 내려온 인간 중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기업의 경영이념이라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무노조 경영 고수, 갑질, 불공정거래로 점철된 모습을 보인다. 가장 CSV를 잘한다는 CJ가 이 정도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이해관계자들이 이야기한다. 그냥 법만이라도 잘 지켜달라고. 혁신은 안 바라고 이해관계자들 기대만이라도 잘 부응해달라고. 이것이 진흙탕이 아니고 무엇일까?
다른 기업들도 도토리 키재기다. 물론 현대차, KT, 삼성전자 같은 회사는 그중에서도 키가 작은 도토리긴 하다만. 세계에서 가장 느슨한 CSR 원칙이자 책임 있는 기업의 중요한 상징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에 전 계열사 어느 한 곳도 가입시키지 않은 유일한 5대 재벌, 바로 CSV를 경영의 3대 화두로 선정한 삼성이다. CSR은 고사하고 자신들이 경영의 화두로 내세운 CSV는 과연 삼성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이 회사들의 경영진은 또는 실무자들은 알까? CSV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성과 성과를 보이는 네슬레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글로벌 차원의 인권영향평가를 수행한 기업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업과 인권 업무만 100% 담당하는 인권 전담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CSR을 잘한다는 기업들도 달성하기 어려운 전사 차원의 포괄적인 목표들을 대외에 공표하고 매년 보고한다는 사실을. 이런 모습에는 왜 환호하지 않는지.
반대로 이런 사실은 알까? CSV라는 용어에 별 관심이 없고 대신 ‘지속가능성’이라는 용어를 중요시하는 코카콜라가 전 세계의 물 부족 문제 해결에 있어 CSV를 추종하는 어떤 회사들보다 탁월하고 지속적인 공유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런 기업을 또 찾는 것, 전혀 어렵지 않다.
참고로 코카콜라의 지속가능성에서 다루는 범위와 주제, 2020년까지의 지속가능성 목표, 심지어는 거버넌스 측면까지도 네슬레의 CSV와 닮았다. 코카콜라의 지속가능성을 CSV로 대체해도 문맥상으로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이런 점에서 CSV의 성공사례를 만들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웃픈’ 일이다. 포터 교수가 CSV 논문을 발표하기 이전까지 전략적 CSR 사례로 소개되던 기업들이 지금은 우수한 CSV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인구에 회자되는 CSV 사례들은 상당수가 CSV 개념이 확산되기 이전에 이미 하고 있던 것들이다. CJ가 초기에 내세웠던 한 CSV 프로그램은 바로 전 해까지만 해도 MB 정부 시절의 기조에 맞춰 동반성장 프로그램으로 설명되던 것이었다. 내용은 그대로, 용어만 바뀐 것이 너무 좋은 CSV 부작용 사례라 강의 때 쓰려고 캡처해 놓기까지 했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책임의식과 실행력을 가진 진정성
마침 이 글을 쓰는 중에 동아비즈니스리뷰에서 주최하는 ‘CSV 포터상’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CJ가 2년 연속으로 상을 받았고, 본래부터 추진하던 사업을 CSV로 덧칠해서 뒤늦게 CSV 대열에 합류한 유한킴벌리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한국바스프다.
본사의 글로벌 웹사이트와 최신 통합보고서 어디에도 CSV, 또는 Creating Shared Value라는 용어를 단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바스프(BASF)의 한국지사가 영광스럽게도 CSV 포터상을 받았다. 어떤 부분을 인정받아서일까?
참고로, 바스프는 UNGC 원칙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기업이자 CSR, 지속가능발전 개념을 기업의 철학과 사업 포트폴리오에까지 시스템적으로는 거의 완전하게 내재화시킨 몇 안 되는 기업이다.
CSV를 진정성 있게 추진하는 기업들을 괜히 트집 잡으려는 건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사회적 가치가 많이 창출되기를 바라고, 네슬레를 포함해 그런 일을 멋지게 해내는 기업은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다. 그러나 왜곡된 CSV 개념화는 사례와 의미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되려 기존의 기업 책임을 방기하는 논리까지 제공해주고 있다. 이런 현상이 정화되지 않는 한, CSV는 기존에 기업이 가진 탐욕을 소셜 영역에까지 확산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네슬레 칭찬을 많이 했지만 사실 네슬레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노동조합 탄압 의혹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고, 또 팜오일 원료 확보 과정에서 동물 서식지를 파괴하는 문제로 불매운동이 펼쳐지는 곳도 있다. 진짜 현실이 바로 이 부분이다. 네슬레만큼 컴플라이언스와 지속가능성에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 노력해도, 기업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기업에게 가치 창출 이전에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네슬레는 경영시스템 관점, 좀 더 관대하게 보자면 진정성 면에서는 격려를 받을 만하다. 그것이 CSR로 불리든 CSV로 불리든 이는 차후 문제다.
사람의 진정성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 최고급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겠다고 공언한 셰프가 요리학원을 갓 수료한 보조요리사를 투입한다면, 재료비로 3천 원을 책정한다면, 재료로 라면 사리와 라면 스프를 준비한다면, 요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모든 언행이 체계와 순서를 갖춰야 하고 시스템적으로 정합성이 있어야 한다.
네슬레의 경영원칙, 거버넌스, 예산과 자원 투입, TF와 위원회 종류, 세부적인 CSR 이슈들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매년 발간하는 CSV 보고서를 보면, 그래도 이 회사는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기업의 모습을 위해 자의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수준의 경영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CSR 경영시스템 심사를 해왔던 경험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 부분에 가중치를 두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분석에는 국내에서 CSV를 논하는 그 어떤 기업과도 현격한 경영시스템상의 수준 차를 보여준다. CSR 관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쓰다 보니 글이 다시 한없이 길어진다. 한 시간 주절거리면 될 것을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 각설하고 마무리해야겠다. 어느 회사에 있든 간에 거의 모든 실무자들은 진실된 고민을 안고 CSV를 추진한다는 것을 안다. CSV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생각한다. CSV, 소셜임팩트, 사회혁신 또는 다른 무엇으로 부르든 간에 보고하고 논리 만들고 모르는 임원 이해시키는 것이 진 빠지는 일이지, 아이디어 내고 실행하는 것은 보람차고 성과도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기업이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CSV라는 고유명사, 그리고 이 개념이 주장하는 획일화된 유형과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군다나 CSV를 적극 추진한답시고 CSR에 대해 왜곡된 관계 설정을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점에서, 책임투자 영역의 한 유명인사가 발언한 내용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사회책임경영은 원칙이고 공유가치창출은 이를 실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론 중 하나다. 공유가치창출을 잘하고 있다고 해서 그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에 집중하기 이전에, 어떤 이슈와 가치들이 있는지를 먼저 고심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회사와 비즈니스를 둘러싸고 어떤 이슈들이 잠재해 있는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그 중 부정적인 것은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긍정적인 것은 어떤 가치 창출이 가능한지, 이런 요소들을 먼저 깊이 고민하고 CSV의 날개를 펼치는 것이 순서다. 그래서 말장난 같지만, ‘Creating Shared Value’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Shared Value’를 Creating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에 깊이 뿌리박은 원칙과 토대 위에서.
포터식 CSV는 경계해야 한다. Shared Value는 유형과 사례의 틀 안에 갇힐 수 없는 역동적인 개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문 : 안정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