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종료, 박영선에 쏟아진 책임론
필리버스터 정국을 종료시킨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의 결정은 합리적인 데가 없지 않았다. 공중파와 조중동을 위시한 주류 언론의 편파보도로 내실이 잘 알려질 수 없었으며, 필리버스터 돌입 이후 여론조사의 흐름도 더민주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시간은 우리 편’이란 자세로 버티기에 들어갔으며, 이는 사실이기도 했다. 절차적으로도 끝내 테러방지법은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 어떤 민주주의의 시간, 시사인
그러나 과정이 좋지 않았다. 야심한 밤에 갑자기 언론을 통해 터져나온 필리버스터 종료 소식은 열정적인 지지자들의 분노를 불러왔다. 후에 이를 언론에 밝힌 것은 비대위의 박영선 위원으로 알려졌는데, 당 내부에 이를 공유하기도 전에 언론에 먼저 알리면서 분노를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의원들은 트위터를 통해 필리버스터 종료가 합의되지 않은 것처럼 글을 쓰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박영선 의원이 보여준 모습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스스로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총선에서의 지지를 호소했는데, 이는 새누리당의 ‘필리버스터는 사전선거운동’이라는 프레임에 오히려 말리는 꼴이었다. 과거 세월호 협상 때 야권의 주도자로 나서놓고도 유가족의 뜻을 반영하는 것도, 유가족을 설득하는 것도 못한 채 세월호 진상조사위의 무력화를 불러왔다는 사실이 다시 발굴되었고, 지지자들은 그의 정치력을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인권에 반대한 박영선, 필리버스터의 진정성을 의심받다
박영선에 대한 비판여론이 더욱 거세진 것은 필리버스터 중단 방침이 언론에 새어나온 바로 그날, 그가 ‘3당 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서 한 발언 때문이었다.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을 인용해본다.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합니다. 누가 이거를 찬성하겠습니까? 특히 이 동성애법 이것은 자연의 섭리와 하나님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법입니다.
동성애법, 차별금지법, 인권관련법, 그리고 이슬람문제, 저희는 결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강하게 말씀드립니다.
매우 잘못된 발언이다. 박영선은 더민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지도 않으며, 특히 인권관련법에 다 반대한다는 그의 발언은 위험하다. 인권을 대변하지 않는 입법자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심지어 테러방지법안에도 인권보호관을 두게 되어 있다. 테러방지법안의 독소조항은 인권침해 우려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들이다. 그럼 대체 왜 테러방지법안 반대토론에 나섰나?
아마 인권관련법안이 곧 기독교계를 박해하는 법인 양 흑색선전을 펴는 기독교계의 입장을 반영한 것일 터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권관련법에 반대한다는 그의 발언은 입법자로서 상식 이하다.
동성애법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가 말하는 동성애법이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동성결혼 법안이라면 애당초 한국에선 입법 논의조차 제대로 된 적이 없다. 동성애 자체에 대한 얘기라면, 박영선이 반대하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법안이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그의 발언은 가장 한심하다. 카카오톡 등에서 유포되는 악성 루머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기독교계의 흑색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인 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스운 것은, 법안에 반대한다는 그 자신이 차별금지법안의 발의자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런 그의 행보는 필리버스터에 나선 저의조차 의심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인권에 반대하는 입법자가 왜 테러방지법안에는 반대했나? 그저 여당의 발목을 잡고 싶었던 것뿐 아닌가? 필리버스터에 나서 눈물을 흘린 것도 그저 선거운동일 뿐 아닌가?
김광진, “예수님이 지금 이 시기에 동성애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할 것 같은가”
박영선이 필리버스터 정국을 혼란 속에 종결시켰다면, 김광진은 필리버스터의 첫 주자로 충분히 준비할 시간조차 없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필리버스터의 끝과 시작을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 것이다.
필리버스터의 첫 주자로 이름을 알린 김광진은 지난 2월 27일 진보 기독교 매체 뉴스앤조이와 인터뷰를 했다. 초선의원으로서 주목할 만한 의정 활동을 보여줬던 그는 여기에서도 인상깊은 발언을 많이 남겼다.
동성애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지금 이 시기에 동성애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할 것 같은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게 예수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이라면, 그 사람에게 다가갈 것이다. 물론 동성애는 병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동성애가 병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그 존재를 인정하고, 그 사람이 피해 받지 않게끔 지원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생각한 모든 사람이 공의롭게 사는 세상 아닐까.
–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은 인터넷과 SNS에서 김광진 의원 낙선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김 의원이 동성애자들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애 이야기가 기사에 나가도 괜찮은가.
정치인 김광진의 입장이다. 정치인이 이런 고민 없이 어떻게 정치를 하는가. 물론 ‘표’에는 도움이 안 된다. 교회 표가 훨씬 크다. 순천에, 아니 전국에 LGBT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그 사람들이 다 찍어 줘도, 한 교회의 인원수만도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표를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정치꾼이다. 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옳은 세상이다.
- “예수님이 꿈꾸던 세상, 땅에서도 만들고 싶다”, 뉴스앤조이
당장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청년 정치인의 발언으로서는 담대하다. 그 말대로 동성애에 대한 그의 입장은 표를 깎아 먹기에 딱 좋다. 교회 지도층의 부패가 극에 달한 오늘날에는 더 심각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입장이라 단언한다.
물론 표를 얻지 못하는 정치인만큼 무기력한 것이 없다. 하지만 표에 끌려만 다니는 정치꾼도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정치인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설득하고 대화하는 자세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갈등을 어떤 방향으로 조율하고 결정할 것인가 하는 가치관이 세워져야 한다.
김광진은 동성애가 병이 아니라는 사실관계와 예수님이 생각한 모든 사람이 공의롭게 사는 세상을 그 잣대로 세웠다. 박영선은 스스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해놓고서도, 정작 교회 앞에 가서는 인권관련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치를 내세웠다. 정치꾼을 비판하는 김광진의 목소리는, 예언자가 아니고서야 그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마치 이틀 후의 박영선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것처럼 들린다.
덧붙여, 필리버스터에서 역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은수미 의원의 같은 언론 인터뷰도 읽어 볼 만하다.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이 정치권에 더 많이 입성하여, 부패한 세상의 교회 대신 진짜 교회가 보여줘야 할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원문: 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