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면 한국 의료체계는 멸망한다
모 공중보건의가 하루에 80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예방접종을 하다가 불친절하다는 민원으로 징계를 받았다. 한 사람에게 할당된 시간은 물리적으로 30초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불친절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결국 의사들이 안 되는 걸 자꾸 억지로 꾸역꾸역 해주는 게 문제다. 제도나 국민성이 뛰어나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현실은 의료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뭔가 비틀려 있다. 어차피 누군가 알아서 계속해주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버르장머리가 잘못 들어서, 평소엔 고마워하지도 않다가 일이 잘못되면 그때서야 책임만 묻는다.
한국 의사들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면 한국 의료체계는 멸망한다. 근로기준법 지켜서 망할 의료라면 진작에 망하는 게 정상이고 순리다. 안 되는 걸 자꾸 해주니까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진통제만 쏟아부어 버티는 환자처럼.
심각한 문제가 오히려 더 멀쩡해 보일 수 있다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제조사들은 아군기의 생환율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비행기의 특성상 방어력을 높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기체의 어느 부위가 가장 많이 피탄되는지 조사해 그 부분만이라도 집중적으로 보강하고자 했다.
통계를 내기 위해 연구원들이 작전을 마치고 귀환한 전투기를 조사해 보니, 적군의 총탄에 누더기가 되었음에도 공통적으로 아주 멀쩡한 부분이 있었다. 이곳을 좀 가볍게 만들고 주로 공격당하는 부분을 보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이 부분은 바로 비행기의 연료탱크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공격당한 전투기는 귀환하지 못했고, 연구원들의 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은 가장 멀쩡해 보이는 곳이 제일 신경 써야 할 부분이었다.
심각한 문제가 오히려 더 멀쩡해 보일 수도 있다. 의료계에서는 정책의 문제로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들이 있다.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기껏 남은 사람들도 더 힘들어지고, 그래서 더 인력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전날 밤 응급수술로 한숨도 못 잔 의사가 다음날 밤까지 수술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의료행위를 억지로 이어나가다가 수술 중에 실수를 한다면, 사정이야 어찌 됐든 간에 당장 멱살을 잡을 의사가 있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마지막 병원이 문을 닫은 무의촌에서는, 응급환자가 멀리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다가 도로 위에서 사망하더라도 안타까움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전날 밤을 새워서 졸음이 쏟아지는 의사가 메스를 댄 상황은 병원에 도착하지조차 못한 상황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나은데도 말이다.
언제까지 간짜장 범퍼로 버틸 것인가
자동차 범퍼는 약간의 충격에도 쉽게 찌그러지도록 만들어졌다. 단단하게 버티면 정작 지켜야 할 사람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범퍼는 작은 충격은 그대로 다 흡수하면서 소리와 진동으로 경고한다.
예를 들어, 파일럿의 근무 환경은 매우 넉넉하게 되어있다. 최상위급의 강인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그들에게 사실 하루쯤 밤을 새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파일럿은 근무 중에 버틸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하는 직업이다. 파일럿이 정신력으로 졸음을 이기려고 노력하며 버틸수록 승객이 위험해진다.
반면 의사는 버티고 버틴다. 숨이 넘어가는 환자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의사가 하루종일 굶다가 저녁 급식 시간을 넘겨 할 수 없이 중국집에 시킨 짜장면이 불어 터지기 전에 급히 먹을 시간만큼도 기다려주지 못한다.
간짜장이 그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낮에 일한 사람이 전혀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채, 밤에도 정교한 수술을 하는 상황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범퍼는 찌그러져야 한다. 그들이 불지 않는 간짜장 메뉴를 택해서 단단하게 버티는 동안, 그 충격은 탑승객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원문: John Lee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