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발전 없는 모습
더불어민주당에서 777플랜(쓰리세븐플랜)을 발표했다. 관심 있게 들여다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직업상 유심히 들여다 본다. 이를 통해 양극화 해소한단다. 이름 참 잘 지었다. 참으로 칠칠치 못한 플랜이기 때문이다.
정책 공약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자기 패거리는 참 좋은 생각(공약)이 많은데, 정권을 못잡아서 실현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러나 공약 내용을 시비하기 전, 정당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공약을 무슨 액세서리처럼 취급하는 행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 정치는 희망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는 공약은 정권을 열 번 잡아도 실현할 수 없고, 말이 되는 공약은 야당이어도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다. 말이 되는 공약은 의원배지 하나 없는 개인이나 시민단체라 하더라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실현할 수 있다. 하물며 의석의 40% 이상을 가진 정당에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지렛대까지 있지 않은가. 진정성만 있으면 엄청나게 많은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더민당은 자신들이 날려버린 기회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공약은 발표하지만, 발표하는 자신들도 관심없고, 언론도 국민들도 관심 없는 것이다. 그러니 공약이랄까, 비전과 정책에 있어 과학적, 예술적 발전이 없다.
여전히 피상적인 양극화에 대한 분석
이제 공약 내용 좀 보자. 777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① 국민총소득(GNI)대비 가계소득 비중을 2014년 61.9%에서 2020년까지70%대로 끌어올림 (2011년 기준 OECD 평균 68.8%)
② 노동자(자영업자 포함)에게 배분되는 몫인 노동소득분배율을 2012년 68.1%에서 70%대로 제고 (2012년 기준 OECD 평균 71%)
③ 중산층(중위소득의 50~150%)비중을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70%대(1995, 73.5%)로 복원
그 수단은 다음과 같다.
- 대통령 직속으로 ‘불평등해소위원회’ 설치
- 대기업 사내유보금 과세에서 임금증가분 인센티브 부여하여 가계소득 증가 유도
- 대-중소기업간 성과공유제의 확산 및 개선을 통한 중소기업 이익 증대
- 노동자간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 ① 생활임금제 확산 ② 최저임금(시급)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단계적 인상 ③ ‘비정규직 사용부담금제’ 도입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원금’ 최대 1,200만원(1인) 지원 ④ 3同원칙(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동일처우) 법제화
그런데 공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양극화) 구조 분석이다.
- 기업소득은 늘고, 가계소득은 감소
- 증가한 기업소득의 대부분이 대기업에게 집중
-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는 증가 추세
내가 이 나라 정치권과 노동계와 지식사회에 대해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양극화가 사회의 핵심 현안으로 등장한지 10년이 족히 넘었지만, 여전히 원인/구조 분석이 너무나 피상적이고 일면적이기 때문이다. 정말 10년 동안 진전이 없다. 그 바탕 위에서 777플랜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을 노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착각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임금인상으로 돌리도록 압박하면, 그렇지 않아도 높은 대기업 임금이 더 올라 갈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더 커질 것이다. 그래도 가계소득은 증가하니 무슨 문제냐 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대기업의 임금수준이 하는 일(생산성)에 비해 지금도 높은데, 훨씬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의 근로자평균 임금(내부의 격차 문제는 접어두자)은 우리의 생산력(1인당 국민소득)에 비해서도, 하는 일에 비해서도 매우 높다. 장시간 노동=적은 고용량, 높은 시간당 임금 등이 결합되어있다. 높은 시간당 임금에는 지대(렌트)적 요소가 두텁게 깔려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발간한(2015.2.12) 2014 임금보고서는 (임금근로자 전체를 망라한) 피고용자 보수 통계 자료를 활용하여 2013년 기준 풀타임 근로자의 구매력 환산 임금은 한국이 36,354달러인데, 이탈리아(34,561달러)나 일본(35,405달러)보다 약간 높고 프랑스(40,242달러)보다 약간 낮다고 발표했다.
OECD 2015 임금 과세(Taxing Wages) 보고서는 상용직 5인이상 사업체 근로자 평균 임금(총액 기준)을 비교하였는데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한국의 근로자 평균임금은 46,664달러(원화로는 3,978만1075원)로 OECD 14위”라고 하였다. 이는 일본(46,884)과 거의 같고, 스웨덴(46,379달러), 핀란드(46,165달러), 프랑스(44,136달러), 이탈리아(40,426달러), 캐나다(39,438달러), 스페인(39,029달러) 보다 더 높은 수치다.
2014년 1인당 GDP(구매력 환산)를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한국 근로자 평균임금은 1인당 GDP의 1.32배다. 일본 1.24배, 핀란드 1.14배, 스웨덴 1.04배, 프랑스 1.09배, 캐나다 0.89배다. 평균이 1600만명 평균이 1.32배니, 이를 공공부문 민간부문, 대기업 중소기업으로 나누면 전자가 얼마나 높겠는가?
한국은 임금근로자는 상대적 고임금과 대기업 및 공공부문의 경직된 고용 등으로 인해 과소 고용 상태라면, 자영업은 과잉 고용 상태이다. 이는 피부로도 느낄 수 있고, 통계로도 입증된다. 상용직 5인이상 사업체 종사자(2015년 12월 현재) 16,047천명 을 대상으로 한 사업체노동력조사(2016.1)에서 자영업자들이 가장 많은 숙박 및 음식점업의 평균 임금은 1,889천원(2015.12)으로, 제조업 평균임금 4,540천원의 42%, 전산업 평균 3,887천원의 49%에 불과하다.
한국의 양극화 문제는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등 이윤을 어떻게 대기업 노동으로 옮길 것인가 문제가 아니다. 강제로 중소기업으로 옮기는 수단도 없다. 강제로 고용을 더 하도록 하는 것(고용할당제)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최저임금 대폭인상? 이거 한마디로 고용대학살 플랜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문제를 못푸니 777플랜이 칠칠한 플랜이 되어 버린 것이다.
능력과 무관하게 높은 임금과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는 상위 10%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최상위 소득 비중의 장기 추세(1958~2013년)를 보면 최상위 10% 소득 비중은 1960년대 초반 약 17%였다가 1979년 35.1%에 이르러 이 기간에 2배 이상 증가했고 이 상태(35%내외)로 대략 20년 동안 가다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6년 이후 지금까지 46~47%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2000~2006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신자유주의 개혁? 틀렸다. 이 시기에 공무원, 공기업, 은행 등 규제산업의 임금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건 시장원리에 따라 오른 것이 아니다. 은행 등은 구조조정하면서 사람 잘라내고 살아남은 자의 임금을 왕창 올렸다.
물론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IT 산업 등 비교우위 산업기업의 임금도 급상승했다. 요컨대 이 시기에는 세계화, 중국 특수, 지식정보화, 고속교통망도 양극화에 가세하고, 공공부문, 규제산업, 글로벌 기업도 상승랠리를 펼쳤다. 한편 하층 노동시장에는 중국 조선족과 동남아시아 노동자들도 밀고 들어왔다. 임금소득 분포에서 양 끝단을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는 이 거대한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한국의 양극화(소득 집중)가 심각한 것은 격차의 크기 보다 격차의 질이다. 상위 10%의 구성이 진짜 문제라는 얘기다. 미국의 상위 10%는 대체로 잘 작동하는 시장의 승자들이다. 실제 높은 실력(생산성)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위 10%(2014년 현재 경계소득은 4835만원)는 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라 생산성(글로벌 경쟁력)이 높은 집단도 분명히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집단은 세금 소득자들이거나, 독과점 산업 종사자거나 국가 규제라는 방파제로 보호를 받는 존재들이다.
한국 노동조합은 대개 여기에 포진하고 있고, 더민당과 정의당 등의 고용노동정책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깔고 앉은 두터운 지대(렌트)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리고 하위 90%에 대한 국가의 배려, 보호의 손길은 너무 미약하고 허술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눈감으니 모든 양극화·일자리 플랜이 사상누각이 되는 것이다. 지독하게 부조리한 1차 분배구조를 외면하고, 아니 더 악화시키면서, 2차 분배구조만 만지작 거리니 양극화가 완화될리가 없다. 2차분배구조 개선안은 2015년초 연말정산 파동에서 봤듯이, 몇 천억원의 소득세 증세도 쉽지않다.
더이상 낙관적 전망에 가정한 투자와 임금 상승은 기대할 수 없다
777플랜이 강조한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증가율 격차는 한국은행의 이슈페이퍼 가계소득 현황 및 시사점이 나름대로 깊이 분석했다. 요약하자면, 격차 요인(원인)의 절반은 경제성장을 주도한 수출·제조업의 고용흡수력이 낮아진 탓이고, 나머지 절반은 자영업자들이 법인사업자(대형마트, SSM, 인터넷/홈쇼핑 유통, 기업형 외식 체인 등)에게 시장을 뺐겼고, 또 순이자 소득이 감소한 탓이다.
사실 음식숙박업 등에 법인 사업자가 뛰어드는 것은 경제발전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세계적인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기에 순이자소득 문제도 대책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수출·제조업의 고용흡수력이다. 이는 정말로 깊고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딱 하나만 보면, 1996년 이후 완성차를 생산하는 해외 공장은 15개가 생겼는데, 국내에는 단 한개도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무도 자동차 회사들에게 돌을 던지지 못한다. 하는 일에 비해 엄청난 고임금(너무 낮은 생산성)을 받고 있고, 지속적으로 임금이 상승했고, 구조조정은 커녕 라인간 배치 전환조차도 힘든 고용 경직성 등을 알기 때문이다.
777플랜이 강조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이 급증한 적이 있었다. (주: 여기서 노동소득분배율은 (피용자보수/(피용자보수+영업잉여)인데, 777플랜의 노동소득분배율은 (피용자보수+개인영업잉여)/(피용자보수+영업잉여)인 것 같다.)
1994년 57.9%, 1995년 60.2%, 1996년이 역대 최고인 62.4%였다. 이렇게 가파르게 올라간 적이 없다. 경제성장율 보다 더 빨리 올라갔다. 1994년 대비 임금근로자가 무려 600만명이 늘어난 2014년의 노동소득분배율이 62.6%에 불과한 것을 보면 알 수있다. 1996년 수준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왜 1994~96년에 이렇게 노동소득분배율이 가파르게, 올랐을까? 당연히 임금근로자 숫자도 많이 늘었고, 임금도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는 낙관적인 전망과 부채를 통해 단군이래 최고의 과잉 투자가 일어난 시기였다. 하지만 이 때의 초과잉(공격적) 투자는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시기에 과잉, 공격적 투자를 주도했던 재벌대기업과 은행 등 금융기관들의 상당수가 파산하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이 때 구조조정을 하도 거칠게 하다 보니 살아남은 기업들은, 그 피해의식으로 인해 더 심한 보수적, 안정적 경영을 하기 마련이다.
비정규직에 책임을 물릴 게 아니라, 유연한 고용과 임금 및 사회안전망을 교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4~96년의 경험은 노동소득분배율을 올리는 왕도는 기업들이 국내에서 임금근로자도 많이 늘리고, (소수가 아니라 다수 기업이) 임금 인상도 많이 하고, 국내 투자도 과감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기업들이 느끼는 각종 리스크(고용리스크, 금융리스크, 규제리스크, 사법 리스크 등)를 줄여 주고, 금융권이나 부동산을 기웃거리는 자본이나 자금이 사람을 고용하고 설비를 갖추는 생산자본으로 좀더 많이 변신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이 조건은 무엇일까?
그 동안 진보와 노동계는 급증한 사내유보금 등을 들먹이며, 자본 특히 재벌대기업의 과잉 착취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원흉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국제비교 통계를 종합해 보면 지난 20년간 전반적으로 노동의 몫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2014년 현 시점에 노동과 자본의 분배구조가 유달리 나빠서 한국의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가 생겨났다고는 볼 수가 없다.
오히려 노동과 노동, 노동과 비노동(비임금근로자)의 분배 구조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내투자와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평균적으로 상위 10% 안에 드는 한국의 공공부문, 규제산업, 조직노동고용임금 복지 수준은 지극히 비정상이다. 한국판 정규직도 비정상이다. 이를 정상으로 간주하고 나머지를 거기에 맞추는(상향평준화) 정책으로는 그야말로 노답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이 고용을 지금보다 덜 부담스럽게 늘리도록, 시간제, 기간제(계약직) 등을 오히려 폭넓게 인정하고, 이들의 부담을 국가와 기업이 더 떠안는 형태로 가야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부담금(디센티브)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매력적인 일자리가 되도록 임금(인상) 및 사회안전망(두터운 고용보험)과 유연한 고용을 교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중장년은 불신 때문에 이 교환을 못미더워 하니까, 청년들이라도 새로운 고용형태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증가로 연결된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심야노동 철폐 사례에서 봤듯이 일자리는 하나도 안늘고, 좋은 일자리가 더 좋은 일자리로 바뀔 뿐이다.
슬프지만 ‘좋은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릴 때
분명한 것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수준(표준)과 패러다임을 우리 생산력에 맞게, 자신의 생산성에 맞게, 시장환경에 맞게 조정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약자들과 후세대가 도저히 살 수 없는 나라가 된다. 노동시간 단축해도 일자리 안 늘어난다.
500만명 가량이 두터운 경제적 지대를 깔고 양반처럼 살고 나머지를 노비처럼 부리는 나라가 지속가능할 리가 없다. 이런 반동적 구조가 세금-복지로만 해결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온통 재벌/자본/기업/1%부자가 너무 많이 챙겨가서 청년·고용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만 횡행한다.
10%에 속하는 선수들이 너무 남탓만 한다. 이 구조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그 어떤 국가 비전정책도 사상누각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어떤 형태로든, 지하철 폐지를 주워서라도 소득활동을 하는 사람이 대략 3500만명이다. 가구 조사로 파악된 경제활동인구는 2500~2600만명, 임금근로자 1900만명, 국세청에 파악된 근로소득자는 1650만명 내외다.
시간제, 기간제, 파견제라도 국세청에 파악되는 근로소득자가 2000만명이 넘게 만들어야 한다. 임금근로자도 2200~2300만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명백히 비정상인 ‘좋은 일자리’ 아니면 안 늘리려고 하니 고용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3동을 외치면서 거기에 정면으로 반하는 공무원 호봉제는 개혁하려 하지 않고, 3동은 오로지 기업체 안에서만 통용되는 논리로 생각하니 아무런 개혁성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