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는 케네디 시절에 미국의 국방부 장관이었고, 포드가 가문의 사람이 아닌 외부인으로서 최초로 포드 회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며, 흔히 ‘컴퓨터 두뇌’나 지독한 계량주의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2차대전과 한국전쟁을 지나 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군사, 경영, 금융 등의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특히, 60~70년대를 살아가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맥나마라’라는 이름을 대부분은 기억하고 계실 정도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최근 뒤늦게 <The Fog of War>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겪은 11가지 교훈에 대한 내용인데, 상당 부분은 그가 2차대전과 베트남전에서 얻은 내용이었습니다.
흔히 알려진 대로 그가 시장조사를 통해 당시 미국시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경제형 차량의 니즈를 발견, ‘Falcon’이라는 경제형 모델을 출시해 포드의 수익률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야기나 최초로 안전벨트를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인상이 깊었지만, 그보다도 공감이 가는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결과를 만들어낸 데이터를 면밀히 살펴보라는 교훈을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때 영국에서 독일로 출격하는 미국 폭격기들의 임무 중단비율이 20%였는데, 실패의 원인으로 전자계기의 작동 불량, 무전상태, 몸 상태 등의 이유가 보고되었답니다. 보고서를 받아 든 맥나마라는 올라온 보고서 결과 이전에 생성된 비행일지 등의 원천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했고, 이를 통해 임무 중단한 대부분의 조종사가 공포심 때문에 목표물에 접근하지 않고 그냥 돌아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커티스 르메이라는 지휘관은 매일 그 자신이 폭격하는 편대의 맨 앞에 서서 출격을 했고, 결과적으로 임무 포기율은 그 이후 현격히 줄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데이터를 세부적으로 살펴보지 않고 표면적 결과만을 수용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오류를 ‘Simpson’s Paradox’라고 합니다. 이는 숫자 데이터를 분석할 때만 사용하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비스 기획의 과정, 혹은 사용성을 개선하거나 직간접적으로 나타나는 장애나 부하 등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많은 경우 깊이 있는 사실에 대한 분석 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값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합니다. 더 나아가 연구자에게 유리한 사실들만을 꺼내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맥나마라의 계량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나 오류의 원인을 최말단의 레벨까지 살펴보고 숙고하는 자세를 말하려 하는 것입니다. CSI와 같은 과학 수사물을 보면 현장에서 지나쳤던 아주 작은 증거 하나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그 증거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들의 노력이 눈물겹게 연출되지요. 그만큼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뜻일 것입니다.
컴퓨팅 파워는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고, 그만큼 데이터도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주 소수의 사람에게만 공유되던 고급 정보도 지천으로 널린 게 요즘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나 프로그램이 만들어놓은 결과값만을 취하고 정작 중요한 인과 관계를 파헤치는 것은 등한시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런 일 자체가 매우 하찮은 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고요.
바야흐로 데이터 스트림(data stream)의 시대, 빅 데이터(big data)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눈앞에 나타난 결과값에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깊숙이 데이터와 사실에 집중하는 능력이 성공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고객들은 절대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고객들은 그 데이터를 통해 말하고 있다.”는 말씀이 요즘은 매일 가슴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