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독교
‘개독교’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비하하는 말인데, 과거 아프가니스탄 선교단 피랍사태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사례, 명동 등 주요 도심 지역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전도 행위,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 등 다양한 원인이 중첩되어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인터넷상의 악플로만 취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신교에 대한 여론의 반감은 크고 또 뿌리가 깊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개독교 같은 말이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훌륭한 경제학자이자 유명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폴 크루그먼은 여러 칼럼에서 공화당의 보수주의자들(미묘한 뉘앙스를 보다 살려 번역하자면 ‘수구세력들’에 가까울 것이다)과 기독교의 관계를 지적하며,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정치 간섭이 심각한 수준임을 주장했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면 되니 안 되니 하는 논쟁이 아직도 일어나는 상황이니 외국인으로서도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할지 짐작이 간다.
개신교의 정치 간섭 – 차별금지법을 비롯하여
그런데 사실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 원리주의자, 보다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기독교계가 정치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려 하는 정황이 자꾸 눈에 띈다. 개중에서도 특히 ‘한국 최대’ ‘세계 최대’ 같은 말이 수식어로 붙는 초대형교회가 이런 풍조의 선두에 서고 있다. 또한 그 간섭은 단순히 종교적 이슈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의 활동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심대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 때마다 개신교계는 그 정치적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2007년에는 기독교계의 반발 등으로 인해 여기에서 성적 지향, 학력, 병력, 출신국가,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언어 등의 이유가 빠진 상태로 입법 예고되었고, 그나마도 국회 임기가 끝남과 함께 폐기되었다.
2013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한길 의원 등이 발의한 3개의 차별금지법안이 있었으나, 기독교계 등의 반대운동에 부딪혀 결국 철회되었다. 공론 과정을 다시 거친다는 명분이지만, 그 말을 믿더라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정작 그 법안을 발의한 김한길 의원 본인이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다” “동성애가 조장되고 확산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발언하는 등,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계가 차별금지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을 비난해야 할까?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 기독교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특히 보수 기독교계에게는 고깝게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문제는 보수 기독교계의 이런 반응이 실제 국가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얘기한 헌법 제20조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특정 종교의 경전에 의거한 특정 종교의 논리가 국가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표리부동表裏不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저 유명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기도회 자리에서 “광우병 괴담은 마귀의 꼼수”라는 요지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 최대의 감리교회라는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는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성도들의 기도로 좌파의 두 뿌리가 뽑힌 것”이라고 표현하거나 촛불시위를 겨냥해 “빨갱이를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 당시 추부길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 홍보기획 비서관은 감사예배 자리에서 “사단의 무리가 이 땅에서 활개치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등 광화문 촛불시위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조용기 목사는 배임 및 탈세 혐의 등 수많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김홍도 목사는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형을 선고받았고, 아들에게 목회자 자리를 물려주는 등의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또 추부길 씨는 2009년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게 되는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빨갱이와 사단의 무리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운 일이다.
물론 기독교계의 진보인사들은 이런 기독교계의 현실에 개탄하고 나름대로 개혁을 시도하기도 한다. 실제로 조용기 전 목사나 김홍도 목사, 추부길 전 비서관 등의 비리나 발언이 알려지게 된 것은 기독교계 내부의 성찰과 내부비판에 기댄 바 크다.
하지만 이미 거대교회는 너무 커졌고, 너무 큰 권력을 손에 쥐었다. 반면 기독교계의 진보인사들은 비록 양심적이지만 그 세가 너무 작다. 진보인사들은 거대교회를 “성경이 말하는 이단에 가깝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이 주장에 매우 동감하면서도 과연 진보 기독교계가 거대교회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무척 의문스럽다.
오히려, 기독교를 위하여
따라서, 기독교 원리주의가 사회 규범을 지배하기 이전에 이미 기독교 원리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퍼진 것은 긍정적인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부 개혁이 불가능할 지경이라면 엄청나게 강력한 외풍(外風) 밖에는 이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는 까닭이다. 개신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욱 광범위하고 깊게 퍼진다면 보수 기독교계의 발언은 사회에서 별 가치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고로 기독교의 미래를 염려하는 한 사람으로서 차라리 기독교가 더욱 비난받기를 바란다. 비록 그 발언이 성숙한 것이 못 된다 해도 개독교 같은 말이 차라리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고 사회 규범에 손을 대는 것보다야 차라리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 소리를 듣는 것이 훨씬 낫다. 그 노골적인 비난이야말로 보수 기독교계와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사회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울타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