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에반게리온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리뷰입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 대한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하고자 했습니다만, 일부 TV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덕후들을 위한 선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을 보통 영화를 보는 잣대로 평가한다면 아마 끔찍한 혹평밖에 나올 게 없을 겁니다. 예를 들어, 처음 이카리 신지가 미사토를 만나고 아버지를 만나고, 에반게리온을 만나 첫 출격하는 부분이요. TV판에서조차 이카리 신지의 심리 변화를 묘사하는데 시간이 모자라면 모자랐지 결코 충분하지 않았는데, 극장판의 한정된 시간 안에 그걸 욱여넣다 보니 신극장판은 이야기의 흐름이 더 삐걱거렸죠.
하지만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을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에반게리온은 이젠 구세대가 되어버린 옛 오덕 세대의 바이블이니까요. 우리는 이카리 신지가 지질하고 내성적인 사춘기 소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야나미 레이가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죠. 아스카 랑그레이가 속마음을 내보였던 에피소드들도 이미 보았으며, 가츠라기 미사토가 “서비스, 서비스”를 외치는 목소리를 스무 번도 넘게 들었습니다. 심지어 이야기 최대의 미스터리인 세컨드 임팩트의 진실과 서드 임팩트의 정체, 인류보완계획의 의미조차 알고 있죠. 우리는 에반게리온에 대해 너무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곡에 비해 짧아진데다 멜로디의 흐름도 부자연스럽게 변한 이 변주곡이 결코 어색하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야나미 레이의 유명한 ‘미소’는 에반게리온: 서에서 미묘하게 변주됩니다. TV판과 신극장판에서 아야나미 레이라는 캐릭터가 비슷하지만 다른 캐릭터임을 보여주고 있죠. 에반게리온: 파의 변주는 좀 더 적극적입니다. 에반게리온: 파의 마지막 장면, 이카리 신지의 울부짖음에서 우리는 원작 TV 애니메이션에서 느끼지 못했던 어떤 희열을 16년 만에 느낄 수 있었죠. 이야기 자체는 흔한 이야기지만, 그 흔한 이야기를 이카리 신지라는 캐릭터가 이끌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어요. 그 변주만으로도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세대 덕후들을 위한 선물인 셈이죠.
이야기 자체의 완결성
에반게리온: Q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기사 카오루의 행동과 대사, 그리고 이카리 신지와의 미묘한 관계는 TV판 24화 ‘최후의 사자’의 변주입니다. 그의 행동이 풍기는 미묘한 분위기는 Q가 Queer의 약자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낳을 정도로 노골적이긴 하지만, TV판을 보지 않았다면 그 변주의 재미를 느낄 수 없죠.
자, 신극장판만이 주는 ‘변주’의 재미는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 프랜차이즈의 팬들에겐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어떨까요? 세기말,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제목으로 전개되었던 TV판의 전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이야기는 원래도 그리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에반게리온과 사도의 정체 등은 애니메이션만 봐서는 감을 잡을 수 없으며, 당시 시리즈의 종결편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TV판 최종회에 이르러서는 아예 극의 전개 자체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애니메이션 자체만으로는 맥거핀이나 다름없는 그 수많은 요소들이 극 자체를 즐기는 데 그리 필수적인 게 아니었거든요. 아담과 릴리스의 진정한 정체를 모르더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사도의 목적도, 서드 임팩트의 발동 조건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극은 그런 설정놀음과 다소의 거리를 두고 진행되며, 그 자체만으로도 한 편의 이야기로서 완결성을 가지고 있죠. (그 ‘빌어먹을’ 최종편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만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럼 신극장판은? 독자적인 작품으로서는 TV판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구멍이 많습니다만, 어쨌든 적절히 쳐낼 것을 쳐내면서 나름 충실하게 진행됩니다. 이카리 신지와 비슷한 나이에 그 애니메이션과 함께 자랐던 오래된 덕후들에게는 원작의 적절한 변주라는 추가적인 ‘서비스, 서비스’까지 갖추고 있죠. 그런데 에반게리온: Q에 이르러, 신극장판은 독자적인 완결성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입니다. 에반게리온: Q에서 나기사 카오루가 던지는 대사들, 나기사 카오루와 이카리 신지의 미묘한 관계는 TV판을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전투에서 나기사 카오루가 읊는 대사들은 신극장판의 이야기 자체와는 여러모로 동떨어져 있죠. 에반게리온을 신극장판으로 접한 사람들에게 이건 변주를 즐기지 못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예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의 대사는 TV판과 기타 설정놀음을 모르고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암호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암호같은 대사 속에서 그가 고백하는 그의 정체(그가 XX라는 사실 말이죠)조차도, 신극장판 자체의 흐름에 전혀 녹아있지 않습니다.
이건 ‘느부갓네살의 열쇠’나 ‘신을 죽이는 힘’ 같은 (적어도 이번 편 안에서는) 맥거핀들과도 차원이 다릅니다. 신극장판 자체의, 이야기의 완결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 심지어 나기사 카오루의 정체조차 구작을 보지 않고서는 역시 이해할 수 없게 짜여 있습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 설령 구작의 팬들, 옛 오덕들을 위한 선물이라 해도, 이야기 자체의 완결성이 무너져버린 것을 변호할 순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가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TV판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이야기, 연속된 이야기라는 설을 주장하는 것 또한 이런 상황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을 겁니다. 신극장판은 독자적인 생명력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이어왔던 그 생명력이 Q에서 완전히 상실되었죠.
파괴조차 변주일 뿐이다
TV판과 동떨어진 스토리의 흐름에 대해서도 좀 살펴보죠. Q는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전편인 ‘파’에서 TV판의 이야기 대부분을 소화한 이상,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로서는 생명력이 지극히 약합니다. 앞서 얘기했듯, 대부분의 설정, 장면 대부분이 TV판에 ‘의존하고’ 있거든요. TV판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신극장판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응? 방금 사도라는 단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음, 알게 뭐야.”
에반게리온: Q는 원작 TV판과 완전히 달라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TV판에 가장 의존적입니다. 전작인 ‘서’와 ‘파’에 비해 TV판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지만, 동시에 ‘서’와 ‘파’에 비해 TV판을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하죠. 가장 독립적이면서 가장 종속적입니다. 이 이야기는 파괴이지만, 원작 없이는 소음으로만 들리는 변주입니다.
이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새롭지 않습니다. TV판의 이야기를 부수어버렸지만, TV판의 이야기 없이는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이 모순, 이 딜레마 때문일까요, 이야기는 엉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얄팍하기 그지없고, 기존의 캐릭터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온갖 무리수를 던지는 장면은 애처롭습니다. AAA 분더의 출격 장면은 감흥이 약하고, 등장인물들은 기존의 설정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캐릭터를 잃고 전부 바보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때로는 극의 진행을 위해 이런 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화의 등장인물이 ‘세계 최고의 천재’로 묘사되었다 해서, 결국 ‘작가’가 쓰는 작품인 이상 그 등장인물이 작가의 역량을 넘어서는, 진짜 천재적인 행동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결국 그 사람 외의 다른 등장인물들을 조금씩 ‘바보처럼’ 만들어 그 사람을 세계 최고의 천재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법이 애용되지요. 그러나 에반게리온: Q의 경우는 그런 경우도 아닙니다. 극의 흐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장치라고 이해하려 해도,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빈틈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극의 진행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말이죠.
취향입니다만 존중하진 않습니다
물론, 저는 에반게리온을 좋아합니다. Q도 싫지는 않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저는 미사토가 신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미 TV판을 통해 보았으며, 사도와 인류에 대한 설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지극히 불친절하고, 완전히 파괴적이며, 또한 TV판에 완전히 의존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아주 오래전 이미 에반게리온의 수많은 이야기를 접한 한 사람의 덕후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존중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로서의 완결성을 내버렸습니다. 그 결과 덕후들조차, 16년간 캐릭터와 설정놀음을 파헤쳤던 그 덕후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버렸죠. 덕후들은 ‘이것이야말로 에반게리온’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도저히 이 영화를 한 편의 작품으로서 존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