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이 글은 2016년 1월 29일에 게재된 begray 님의 「공공 데이터베이스와 지식생태계: 누리미디어와 한 국회의원에 관하여」에 대한 누리미디어의 반론입니다.
DBpia 유료 논문을 처음 접한 연구자의 당혹스러움과 분노
대학 연구자는 이제까지 대부분의 국내 논문을 무료로 이용해왔다. 어떻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한 것처럼 이용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DBpia에 유료 논문이 등장하니 적잖은 연구자들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 다음 6,000원이라는 논문 가격을 처음 보고 다시 한 번 당황하게 된다. 그 동안 무료로 이용하다 보니 논문 가격을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해외 논문의 가격(39.95달러=48,000원)과 리포트사이트에서 유통되는 리포트의 가격(6,000원)과 비교해보면, 그래도 이해 못할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술논문의 가치가 대학생 리포트 수준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믿기에.
begray님은 갑자기 개인 연구자가 학술논문을 유료로 구매해야 되는 상황, 특히 가난한 대학원생들이 등록금 외에 추가적인 자료 구매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분노한다. 실제로는 직접 자기 돈으로 논문을 구매하는 대학 이용자가 매우 드물지만, 필자 역시 가난한 석사생이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러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분노하게 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얘기를 해보려 한다.
기업의 과도한 욕심이 문제인가?
begray님은 연구자와 학술생태계를 볼모로, DBpia가 “과도한 이윤 욕심”을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먼저, ‘과도한 욕심’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구독료 인상률 수치인 20~30%란 숫자 자체가 그 기준인가? 인상률이 10%였더라도 도서관 측에서 비싸다며 구독을 거부했다면, 이 역시 과도한 욕심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반대로 인상률이 30% 이상이어도 도서관에서 그냥 구독을 했다면, 과연 과도한 욕심이란 얘기가 나왔을까?
혹시 ‘과도한 이윤 욕심’이란, 기업이 도서관에서 수긍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을 낮춰 제시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가? 이는 시장 경제 차원에서 보면 기업에겐 참 억울한 논리이다. 어느 기업이든 자신의 제품이 제 가치를 인정받길 원하며, 이를 가격에 반영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과도한 이윤 욕심’이란, 기업에서 대학 도서관과 연구자 사정을 무시한 채, 제품의 가치만을 주장하며 가격을 인상하는 상황이다.
누리미디어에서 바라보는 대학과 도서관의 사정
인터넷/모바일 시대에 국내/해외 전자저널, 전자책 등 전자자료에 대한 이용 요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 도서관 예산에서도 전자자료 구입비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연구자와 이용자들의 요구를 다 반영하기에는 한계적이다. 예산이 한정된 상황 하에서도 도서관에서는 연구자와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자료를 수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각 대학별 DBpia 구독 범위 역시 도서관 예산과 연구자 및 이용자의 요구를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 같이 DBpia 전체 구독이 아닌 이상, 소속 연구자와 이용자의 불편이 크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대학 본부에서 연구자와 이용자의 사정을 고려하여 대학 도서관 예산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에는 도서관 이용비가 포함(학기당 50만원 내외)되어 있고, 대학은 도서관을 통해 연구자와 이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수급할 의무가 있음에도, 도서관 예산을 축소하며 이 의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해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DBpia 전체 구독료 인상분이 대학 도서관의 사정을 무시한 수준일까? DBpia 전체 구독료가 전년대비 27% 증가하지만, 주요 해외 전자저널 구독료가 국내 전자저널에 비해 10배 가까이 높은 상황에서 DBpia 구독료 인상금액은 주요 해외 전자저널 구독료 2% 인상 수준에 불과하다.
실제로, 서울 소재 A대학 도서관의 경우 DBpia의 주요 저널 패키지(총 1,920여 종 가운데 1,502종이 해당)만 구독하는데 그쳐, 결과적으로 2016년 DBpia 구독료가 전년보다 6% 감소하였다. 만약 해당 도서관에서 DBpia 전체 구독을 했다면, 전년보다 1,452만원이 인상되는데, 이는 몇 만 명 규모의 학교에서 15명 학생이 학교에 지급하는 1년치 도서관 이용비에 불과하다(1,452만원 ≒ 15명 X 50만원 X 2학기).
누리미디어에서 해외 전자저널 구독료 2% 인상 수준이자, 15명 학생의 1년치 도서관 이용비에 불과한 금액을 인상하고자 하는 것이 과도하게 무리한 것일까? DBpia 논문은 국내 대학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이용자 중에 대학원생 이상 연구자의 비중이 2/3 이상을 차지할 만큼, 국내 연구 활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수는 가장 높지만 해외 전자저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의 구독료로 인해 상위권 대학의 경우 DBpia 논문의 CPD(논문 다운로드 1건 당 비용)가 40원 정도의 수준이다.
해외 논문과의 CPD 차이가 100배 이상 나는 경우도 있다. CPD가 40원 수준이면 논문 콘텐츠 제작비 및 서비스 운영비 고려 시, 거의 공짜로 이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에 나는 구독료 인상이 국내 학술논문의 제 가치를 정상화하는 과정이자 기업의 정상 활동이라고 본다.
하지만 begray님에게 국내/해외 논문의 CPD 현황이나 국내 학술논문의 시장가치는 관심사가 아니다. 물론 연구자와 이용자 ‘개인’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공익’과 ‘학술생태계’를 언급했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
‘무료 논문’에 대한 믿음 때문에 보지 못하는 공공기관 학술논문 공개사업의 문제점
begray님은 누리미디어와 정치인의 협업에 의해 현재 학술정보 관련 공공시스템 전체가 위협받고 있다며, 둘 간의 이해관계를 의심한다. 이해관계라면 돈이나 권력과 관계되어 있을 텐데, 연 매출 70억 규모의 영세 기업인 DBpia로부터 과연 정치인이 기대할 게 있을까? 국회의원은 모두 ‘돈’이나 이해관계로만 일한다는 편견이지 않을까? begray님이 아무런 이익을 바라지 않고, 학술생태계에 대한 건강한 열정을 쏟아 주신 것처럼 말이다. 한편, 이 점에서 연간 예산 8조 규모의 4대강 사업을 끌어들여 비유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begray님은 ‘무료논문’이 학술생태계를 위한 것이라며, 공공기관의 학술논문 공개사업을 지지한다. 이개호 의원의 주장이 “아주 간단하게 반박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학술논문 공개사업이 학회 평가 및 지원사업과 연계되어 저작권법을 침해하고 있는 점, KISTI(20년), 한국연구재단(5년), 과총(3년) 등에 투입된 정부예산이 최소 1천억원 이상인데 비해 성과지표 없이 혈세 낭비되는 점, 국민 세금이 투입된 ‘논문’이 해외 학술기업에 독점 게재됨에 따라 다시 도서관이 과도한 구독비를 지출 하는 점 등은 국부유출 논란과 함께 국내 민간산업을 침해하고 있는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총체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이개호 의원의 국정감사 내용은 무시하고 있다.
정말 논문은 저작권이 없다고 생각하시는지? 국민세금이 투입된 논문이 OA 되지 않고 해외기업에 돈 주고 보는 현실은 괜찮다고 생각하시는지? 더구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이를 수용했고, 올해 상반기에 정부차원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begray님이 “아주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는 것은 학술논문 공개사업의 진행과정이 어떻든, 학술정보 산업이 어떻든 간에 무료 논문 이용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학술생태계와 학술정보 산업의 유기적인 관계
begray님은 공공성을 지향하는 대학원생 연구자 입장에서 나름 ‘학술생태계’의 가치와 방향을 제시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학술생태계가 완전한 그림이 아니라, 그가 바라보는 일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연구자가 학술생태계의 핵심 주체이지만, 학술생태계에는 그 외에 학회, 학술지 편집인, 출판 및 유통업체, 도서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연구자를 제외한 나머지 주체들은 연구자의 원활한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연구 결과물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한다.
이러한 연구 지원 활동은 실제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다. 연구자들이 논문을 저술하고, 학회에서 학술지를 발간하면, 공공이든 기업이든 온라인 서비스를 위해 논문 콘텐츠를 가공하고, 메타데이터를 구축하고, 논문 검색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등의 활동이 이뤄지는데, 이게 바로 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기관에서 추진하는 공공프로젝트는 공짜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공기관에서 할 경우에는 이를 ‘국민 세금’으로 지불해야 하고, 민간기업에서 할 경우에는 이를 ‘대학 등록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활동이 국내에도 학술정보 산업으로 형성되어 이미 학술생태계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학회는 더 많은 저작권료를 보장해주고, 홈페이지 제작, XML 제작, DOI 발급 등 학술지 온라인 출판을 지원 해주는 민간 업체를 찾아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다. DBpia를 비롯한 여러 논문 서비스들은 보다 편리한 검색 및 추천 서비스 등을 구현하기 위해 꾸준히 경쟁해오고 있다. 학술생태계에서 이러한 민간의 경쟁 활동들이 학회, 연구자, 이용자에게 보다 나은 연구지원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깨닫고 있지만 말이다.
begray님이 말했던 것처럼 논문 저자에게 저작권료를 보상하는 것도 연구지원 및 지적재산권 보장 활동의 하나일 수 있겠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다만 지적했던 것과 같이 연구자와 이용자에게 연구지원 활동이 와 닿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나를 비롯해 누리미디어에서 더 열심히 조사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누리미디어의 생각
학술논문은 연구 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고유한 가치를 지닌 지적 산물이고, 보다 많은 연구자와 일반 이용자들에게 보급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에 누구보다 공감한다. 현재와 같은 연구자를 소외시키는 Open Access가 아니라,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Open Access 운동 역시 공감하며, 지지한다. 어쩌면 DBpia를 비롯한 관련 업체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학술생태계에 대한 고민 속에 학술정보 산업에 대한 고민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만약 DBpia가 학술정보 산업을 고민하면서, 학술생태계와 아예 동떨어져 있거나 학술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낳는다면 점차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구독료 인상 전에 학술 커뮤니티 내에서 사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반성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이번을 계기로 학술생태계와 학술정보 산업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더 발전된다면, 여러 주체가 모여 공론의 장에서 정식으로 토론을 해봐도 좋겠다. begray님도 함께 토론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 드린다.
대학 도서관과 누리미디어 각자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 연구자와 이용자가 갑자기 일부 논문을 유료로 이용해야 하는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다. DBpia에서는 연구자와 이용자의 논문 구매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서관 원문복사신청’ 기능을 적용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기존보다 많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연구자와 이용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보다 나은 연구 지원 활동이 가능하도록 연구자, 학회, 도서관과 더 많이 소통하며 노력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