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국민안전처가 긴급재난문자를 안전운전 홍보에 악용해 원성을 샀다.
안전처는 교통량 증가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시간대에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차량 운전자를 대상으로 전 좌석 안전띠 착용, 위험구간 안전운전, 음주 운전 금지, 충분한 휴식 후 운전 등을 홍보할 계획이다.
사람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갑자기 긴급재난문자가 울려 깜짝 놀랐다” “긴급재난문자에 놀라 사고 나겠다” 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긴급재난문자를 남용하는 국민안전처를 규탄했다. 또 많은 사람은 긴급재난문자를 어떻게 끄는지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낯선 풍경이 아니다. 네이버나 구글에 ‘긴급재난문자’를 검색하면 ‘긴급재난문자 차단’이 연관검색어로 뜨는 데다 상위 검색결과 대다수도 이를 차단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글이니, 말 다했다 싶다.
사실 긴요한 시스템이다. 홍수, 태풍, 폭설, 지진과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시 이를 즉각 인지하고 대비하는 것은 재산상의 피해를 막고 나아가 생명을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한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는 기준이 너무 낮은 데다가 대중없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폭염이나 한파, 건조, 황사 등 그리 긴급성을 느끼기 힘든 재난 시에도 일단 긴급재난문자를 보내다 보니, 노년층 등 일부 취약계층을 제외하면 긴급재난문자가 쓸모없고 귀찮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알림음은 전쟁이라도 터진 것처럼 큰 소리로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다. 일상생활 중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깜짝 놀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계속되다보니 다들 긴급재난문자를 끌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폭염이니 한파니 하는 것들은 실제로 재난이기라도 하다. 지난 6월에는 메르스 예방수칙을 긴급재난문자로 발송했는데, 손을 씻고 증상자와 접촉을 피하라는 등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에 불과해 빈축을 샀다. 게다가 이미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추세에 접어든 상태였던데다, 예상 밖으로 다수의 감염자를 발생시키긴 했지만, 병원 내 감염에 국한된, 말하자면 국가의 통제가 잘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이것이 ‘긴급’한 ‘재난’에 속하는지 무척 의심스럽다.
이번 안전운전 캠페인은 긴급재난문자 남용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국민안전처는 고속도로 차량 운전자를 대상으로 문자를 발송한다고 했지만, 애당초 운전자만을 선별해 문자를 보내는 것이 가능할 리도 없고, 실제로는 국도나 고속도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뭔가 알 수 없는 기준에 따라) 문자가 발송된 것으로 보인다. 나도 그냥 집 근처에서 산책 중에 뜬금없이 받았다.
설령 운전자들만 골라 문자를 보낼 수 있다 한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이야말로 진짜 위험하다는 건 아마 뇌리에서 지워버리신 것 같다(…) “귀성 귀경이 재난이라 재난문자를 보낸 모양”이라는 농담은 이것이 긴급재난문자라는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음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우화가 이야기하듯이, 너무 잦은 경고 신호는 오히려 진짜 위기조차 무디게 반응하게 만드는 법이다. 미국의 재난경보시스템은 테러 및 자연재해 등이 임박했을 때나 아동실종 시, 대통령의 긴급 전언 시 등 매우 제한된 상황에 한해 운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합리적인 기준으로 운용된다면 한국의 긴급재난문자는 울릴 일이 거의 없어야 정상이다. 그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도 잘 어울릴 것이고.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재난문자 끄는 법을 알아보자. 아이폰에서는 설정 > 알림 가장 하단의 ‘재난문자 방송’ 수신설정을 꺼주면 된다. 안드로이드에서는 설정 > 무선 및 네트워크 > 더보기 > 긴급 방송에서 끌 수 있다… 고 하는데 기종에 따라 하도 천차만별이라 모르겠다. 삼성, LG 같은 경우 메시지 앱의 설정에서 끌 수 있는 듯.
원문: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