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두 번째 싱글 ‘젠틀맨’이 유튜브 기록을 경신하면서 일주일 만에 2억 조회수를 넘겼다. 전작인 ‘강남 스타일’로 얻은 유튜브에서 존재감을 다시 한번 과시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미국 시장에서의 음원 판매 또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차에 공영방송 KBS는 2013년 4월 18일 공공시설물 훼손 장면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의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다. 방송불가 판정에 관한 소식만으로도 외신의 화제가 되었으니, 그 인기가 사뭇 놀랍다고 하겠다.
물론 과거처럼 텔레비전 방송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라면 그 방송불가라는 판정이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겠지만, 요즘처럼 온라인 매체가 활발한 시대상황에서는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누리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 싸이가 누리고 있는 인기는 텔레비전을 통해 쌓은 것이 아니라 유튜브라는 동영상을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그만큼 빠른데, 그에 맞춰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 문화적 제도는 조소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이 뮤직비디오가 미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공영방송이라면 PBS밖에 없고, 상업방송체제가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 한국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의 문화적 풍토에서 검열은 심각한 도전을 받기 쉽다. 그것도 공공시설물 훼손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서 방송을 금지하기는 더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텔레비전의 다양한 채널 중 뮤직비디오를 주로 볼 수 있는 채널은 역시 MTV이다. 물론 MTV의 주시청층이 십대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학부모 단체 등의 항의를 많이 받는 편이긴 하다. MTV는 요즘에 뮤직비디오보다는 십대들이 좋아하는 노골적인 리얼리티쇼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십대를 자식으로 둔 학부모 단체들의 비난이 빗발치기 때문에 검열이 종종 이뤄진다.
검열의 기준은 주로 마약, 무기, 섹스, 정치적 올바름이나 종교 등이고, 사회적 논란의 정도에 맞춰 늦은 시간대로 문제의 뮤직비디오가 옮겨지거나 부분 편집되거나 심하면 방영금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공시설물을 발로 차는 행위로 방송금지 같은 높은 수위의 검열이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아직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미국 방송국에서 금지될 것이라는 소식은 아쉽게도(?) 들려오고 있지 않다. 총이나 수류탄 등을 동원해서 대량의 공공시설물을 폭파하는 테러라면 모를까, 이 정도 수위로는 큰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 같다.
검열이라는 것은 사회마다 달라서 그 절대적 기준을 논하긴 어렵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아주 사소한 경범죄를 비롯한 모든 불법적 표현은 금지되어야 한다. 음악이라는 대중예술 영역에서 표현한 것을 현실사회의 법적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범죄를 미리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모방의 우려가 있으니 아무도 못 보게 해서 시청자를 보호하겠다는 과잉보호일 뿐이다. 결국, 연령등급이나 다른 방법이 아닌 방송금지라는 강경한 방법을 택한 것은 시청자가 그 뮤직비디오를 보고 공공시설물 훼손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듯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정세환 서울시의원도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도서관에서 춤을 춰도 되는 곳으로 사람들이 착각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피력하였다고 하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런 인식 자체도 어이가 없지만, 이러한 방송금지가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아닌 내용을 과도하게 검열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일까? 이미 유튜브로 전 세계인이 보고 있는 뮤직비디오를 한국의 방송사가 금지했다고 해서 그 영향이 얼마나 될까? 새 발의 피도 안되지 않을까 싶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이 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로 알려진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만든 ‘해적 라디오(Pirate Radio)’다. 1960년대 영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근거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당시 BBC는 공영방송이라는 명목하에 대중의 교양을 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대중음악을 엄격하게 검열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BBC가 주로 방송하는 음악 장르는 클래식이나 가벼운 재즈나 전통적인 포크였지만, 대중이 열광하는 장르는 로큰롤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은 60년대를 풍미했던 자유로운 영혼들의 락앤롤에 대한 열망을 꺾지 못했고, 서로 뜻이 맞는 디제이들과 제작자들이 정부의 검열을 피하려고 영국의 영해를 벗어난 북해 한가운데 배를 띄우고 로큰롤을 방송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직접 라디오를 들어보지 못해 확언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면 디제이들의 음담패설이나 적나라한 표현도 인기의 한 축이 되었던 것 같다.
해적방송국에서 만든 라디오 전파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영국의 라디오 청취자의 마음을 뒤흔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청취자들은 BBC 라디오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오락거리를 찾기 어렵자 주파수를 해적 라디오로 돌리게 되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BBC는 검열과 온갖 법적 규제의 방법들을 동원했지만, 그 거대한 로큰롤의 태풍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BBC는 해적방송에서 활동하던 디제이들을 거의 흡수해서 로큰롤을 방송할 수밖에 없었다.
검열하고 통제한다고 인간 본연의 욕망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음성적으로 변질되거나 기형적인 형태로 발현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즐기고 노는 욕망만큼 끈질기고 오래가는 것도 드물다. 금주법 시대에도 사람들은 몰래 술을 구해다 마셨다. 영화 언터처블에 나온 마피아 알 카포네는 금주법 때문에 거물이 되었다. 금욕을 요구하던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최고로 타락한 인물의 대명사를 탄생시킨 아이러니를 생각해보라. 이와 마찬가지로 그 사회의 음악에 대한 판단 또한 공영방송의 소수 엘리트에게 있는 게 아니라 듣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음악을 즐기는 대중은 보호해야 할 어린이가 아니고, 존중하고 함께 가야 할 동료이다. 소수 엘리트의 판단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머리가 클 만큼 큰 어른들이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들을 리도 만무하지 않은가? 정력낭비고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2010년대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라디오나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굳이 해적 라디오를 통하지 않고서도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방송하는 라디오도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가장 강력한 통로로 유튜브가 부상한 지는 이미 오래다. 웬만한 뮤지션 이름을 타이핑하면 뮤직비디오부터 방송출연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영상이 주르륵 검색된다. 이러한 유튜브를 타고 싸이는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다. 여기에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도 전 지구적 망을 구축하며 성장하고 있으니, 1960년대의 해적 라디오가 형성한 주파수를 통한 네트워크는 이제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세계적 연결망이 뚫린 시대에 검열은 그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검열 당국의 법적 영역을 벗어난 다른 나라를 통해 서비스한다면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중국처럼 아예 접속 자체를 막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이마저도 소위 능력자들이 나서면 쉽게 뚫리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접속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외부 세계와 완벽히 격리된 사회라고 하는 북한의 사람들조차 남한의 방송국 SBS의 붕어빵을 즐겨본다고 하지 않는가?
완벽한 격리와 통제가 이제는 무의미한 시대로 향해가고 있는 시기에 과거로 돌아가 검열을 강화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대책일 것이다. 우선 검열의 기준부터 새로 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공공시설물 훼손의 우려라는 전근대적 기준은 버리고, 최소한 폭력의 심각성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창작물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통제의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아무런 논란이 되지 않는 작품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한 검열이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싸이의 젠틀맨이 방송금지를 받은 진짜 이유는 선정성 때문이라며, 포르노그래피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성적 코드가 들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성적 코드가 들어간 모든 영상물이 포르노그래피는 아니지 않은가? 직접 노출이나 야한 장면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도이다. 물론 성적 코드 강도를 판단하는데 개인차가 존재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부분이 불쾌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느낀 사람들이 자신은 뮤직비디오에 드러난 성적코드가 과하다고 보며, 불쾌함을 느꼈다고 표현하고 토론하면 될 일이다. 방송국이나 정부에서 미리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판단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싸이가 뮤직비디오에서 엉덩이를 흔들어대고 전봇대를 부비대는 것이 못마땅하다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놔두자. 제목은 젠틀맨인데 하는 짓은 버릇없게 보이는 게 절묘한 풍자와 비틀기라면 그렇게 해석하도록 놔두자. 엄격한 검열의 잣대로 판단할 심각한 국가 위기도 아닌데 유난을 떨 필요가 있을까? 한국 사회가 픽션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는 사리분별력은 이미 갖추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