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망한 패를 냈다.
나름 최강의 패인 ‘귀족강성노조’를 끌고 나왔지만, 반대쪽에서 낼 패를 제대로 못 읽었던 것이었을까. 반대편에서 ‘의료의 공공성’, 그러니까 ‘사람들 치료는 해줘야지 이놈들아’를 들고 나오면서 얘기가 제대로 꼬였다. 나름 풀 하우스를 잡았더니 포 카드에 제대로 당한 셈이다.
물론 경남도도 나름 준비한 패가 많았다. 노조가 경영개선 요구를 거부하고 있으며, 정상화를 위한 노력도 없었고, 심지어 퇴직 직원들이 재직자와 똑같은 진료비 감면 혜택을 받는다며 노조를 공격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이런 패를 이미 완벽하게 읽고 있었던 것 같다. 노조는 현재 진주의료원이 몇 개월 치 월급을 체불하고 있음을 지적했고, 개선 지적을 상당수 이미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이런 노조 측의 대응에 경남도의 다음 패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홍 지사가 모교 동창회 행사에 관용차를 타고 가다가 오토바이와 충돌사고를 내는 일이 일어나면서 안 그래도 안 좋은 상황에 불을 지폈다.
물론 양측의 주장만 듣고 판정을 내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근태처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현재로서 경남도의 입장이 영 궁색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홍준표 지사와 경남도가 들고 나온 ‘귀족강성노조’란 틀을 논박하는 주장도 많고, ‘왜 공공의료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칼럼도 많다. 그러나 과연 문제가 그렇게 단순할까. 사실 이 문제는 중앙 정치 무대로 올라오고 양자의 구호가 충돌하면서, ‘귀족강성노조’ 대 ‘공공의료 살리기’의 구도로 단순화된 감이 있다.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
‘공공의료기관의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은 분명 적절하다. 공공의료기관은 이름 그대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므로, 일정 정도 수익을 포기해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취약지역에 보건지소 등의 기관을 설치하고 의사를 상주시키는 것은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겠지만, 아무리 깊은 산골이라도 어쨌든 거주자들에게 적정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의 적자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은 위의 말과 비슷한 말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위의 경우, 즉 산골에 보건지소를 설치해 손해가 났다면, 이건 충분히 타당한 적자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직원을 두고 있다거나, 어딘가에서 비용이 샌다거나, 더 적절한 위치가 있는데도 엉뚱한 위치에 공공의료기관을 설치했다거나 하는 이유 등으로 적자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적자는 ‘공공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생기는 적자’가 아니다. 즉, ‘공공의료기관의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수해야 하는 적자와 감수해선 안 될 적자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진주의료원 얘기로 돌아와, 진주의료원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이전인 2010년 지방의료원 연보를 보자. 진주의료원은 의사 24명(공중보건의사의 비중이 높다), 간호사 112명, 보건직 28명, 사무직 34명, 기술직 38명 등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이는 정원보다 의사는 2명, 간호사는 42명, 보건직은 12명, 사무직은 12명, 기술직이 11명 더 많은 것이다. 업무의 특수성에 따라 정원 이상의 인력이 채용될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의사에 비해 간호사나 보건직, 사무직, 기술직 등 인력운용이 과도함은 이해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특히 진주의료원의 조직도를 보면 진료 및 진료 유관업무 이외에 특별히 인력이 필요한 부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실태는 진주의료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의료원 대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인력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의 2012 지역거점 공공병원 운영평가 결과 보고서를 보면, 의외로 진료의 적정성에 대한 평가가 낮다. 비급여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비)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한 반쪽짜리 평가라는 한계가 있으나, 입원 건당 진료비나 재원일수 등이 비교적 높고 경증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진료비와 재원일수가 높은 그룹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방의료원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보고서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비급여를 뺀 통계는 사실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사실 통계상으로 정확하게 잡히기 어려운 자료긴 하지만, 실제로 이런 지방의료원은 다른 병원에 비해 비급여진료가 적은 편이라고 하며, 따라서 1인당 총진료비도 비교적 낮은 편이라고 한다(다만 이것은 비급여뿐 아니라 다른 요인이 끼어들 여지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또 연보에 따르면, 진주의료원은 의료보호(저소득계층을 비롯, 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운 계층이나 유공자 등에 대해 국가가 의료에 있어서 혜택을 제공한다)환자 비율이 다소 낮은 편인데도 전체 환자의 24%나 된다. 이런 지방의료원이 수행하는 공공진료 사업 등도 감안해야 한다. 진주의료원의 경우 다문화가정 및 장애인 진료비 감면사업을 비롯해 이런저런 무료 진료 사업이나 보건교육 사업(만성질환 관리사업, 독거노인 무료방문 진료사업, 인공관절 무료 시술 사업, 의료취약지역 건강검진사업, 지역사회 보건교육사업, 지역행사 의료진 파견, 가정폭력 및 성폭행 피해여성 진료지원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점은 일반적인 민간의료기관에 비해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물론, 여기서도 이러한 지역사회보건교육사업 등 공공사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늘 체크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료기관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가? 어떤 부분이 감수해야 할 적자이며, 또 어떤 부분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적자인가? 문제는 이런 부분이 대체로 현지 실사 없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숫자만 봐도 인력 과잉이 좀 지나치다는 느낌은 들지만, 왜, 어떤 사업을 위해 그런 인력이 필요했고, 실제로 그 사업은 얼마나 제대로 행해지고 있는지, 이런 부분을 체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외부에서 보면 이런 미묘한 문제가 주먹구구식으로 판정내려질 수 있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할 지점이다.
공공의료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팟캐스트 시사난타 H에서 이미 이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 ‘공공의료기관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 나오지만, 그럼 ‘공공의료기관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혹 좀 더 좁게는 ‘공공의료기관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의료기관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켜야 한다, 뭐 이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공공의료기관의 주요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실제 한국의 의료제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제도는 사실 공공의료기관이 아니라 공공부조,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의료보호, 의료급여라고 불리는 제도다.
물론 지방의료원 쪽이 ‘아무래도 나라에서 운영하니까’란 생각에 의료보호 환자가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든가, 비보험 진료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던가 하는 장점은 있겠지만, 어쨌든 민간의료기관도 의료보호환자에 대해 진료를 거부할 수는 없다. 진료비를 국가에서 정한 것보다 더 받을 수 없음도 물론이다. 또 물론 공공의료기관이 비급여진료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진료비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과잉진료’의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무조건 옳은 방향인지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오늘날 공공의료기관이 반드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다만 여기에서 재미있는 논제가 또 하나 있다. 문재인 박근혜 토론회에서도 쟁점이 되었던 것 중 하나인데, 실제로 우리가 병원에 입원할 때 드는 비용이 진료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요즘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게 간병비다. 이게 부담이 엄청나다 보니 사람이 입원하면 보호자(그 가정의 어머니라든가)가 옆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간병을 해 준다. 그런데 그것조차 안 되는 가정이라면 이게 진짜 답이 없어진다. 진주의료원이 마침 하고 있는 사업이 보호자 없는 병실이라고 해서, 보호자도 없고 이런 간병비도 부담되는 사람들을 위해 간호사가 간병을 하는 제도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보면 공공의료기관은 취약계층에 대해, 그리고 수익성이 낮은 분야에 대해 의료를 먼저 공급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 의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이나 분야에 대해서도 유념해야 하며, 지자체 이상 단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질병에 대해서도 역할 해야 하는 등 역할이 대단히 다양하다.
그런데 90% 이상의 의료를 민간의료기관이 책임지고 있으며, 민간의료기관도 진료비 등이 국가에 의해 상당 부분 통제되는 한국의 경우 이게 상당히 미묘한 데가 있다. 정말 산골 지방이 아닌 이상 민간의료기관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안 그래도 수가 적은 병원급 공공의료기관을 산골에 배치할 수도 없다. 민간의료기관에 비해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이 워낙 낮으니 공공의료기관이 진료 외에 다양한 보건사업을 전국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효율적으로 수행하기도 어렵다. 결국 공공의료의 역할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 정도로 애매하게 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법률에 규정되어 있듯이, 실제 공공의료란 그것만을 위한 게 아니다. 희귀병 등 민간의료기관이 손대기 애매한 분야도 있을 수 있고, 또 위의 경우처럼 보호자 없는 병실 등 민간의료기관이 선도입하기 어려운, 그러나 공공성에 부합하는 제도도 공공의료기관이 먼저 시행해 볼 만한 것이다. 신종 플루나 SARS 라든가, 법정전염병 같은 게 터졌을 때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공공의료기관이다.
이런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한쪽에서는 공공의료기관의 수익성을 문제 삼고, 또 한쪽에서는 공공의료기관을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료기관으로만 인식하는 상황이다. 여러 현실적 한계로 인해 공공의료기관의 위상 자체가 애매해진 것이다.
역시 시사난타 H의 방송 내용에서 비슷한 맥락을 짚었지만, 국립대병원 등이 으리으리한 병원을 짓고 고가의 기기를 들여놓으며 ‘진료 위주’의 병원으로 방향을 정하는 데 대해서도, 이런 방향이 ‘공공의료기관’의 일반적인 방향성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적자’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공공의료기관조차 진료에 있어 수익성을 추구하는 방향이 대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독창적 업무영역, 예를 들면 보건보건
한편 홍준표 지사는 이 시점에서 보건소 시설을 확충해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주장을 한다. 아무래도 진주의료원 사태로 인해 공공의료가 위축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나름의 패를 꺼낸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인데…
사실 의료사각지대에 보건지소를 추가 설치하는 것은 공공의료의 개념상으로도 적절하다. 의료 소외계층에 대한 진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공공의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소의 진료기능을 확충해서 이 사안을 돌파하겠다는 인식은 다소 의아하다. 공공의료는 당연히 더 확대되어야 하고, 의료 서비스는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하지만 보건소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보건소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보건소 하면 흔히 ‘싼값에 진료를 받는 곳’ ‘싼값에 예방접종 받는 곳’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지역주민에 대한 진료는 보건소의 열여섯 개 업무 중 하나, 그것도 ‘지역주민에 대한 진료, 건강진단 및 만성 퇴행성 질환등의 질병관리에 관한 사항’이란 식으로 묶여 있는 업무일 뿐이다. 사실 보건소가 관장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광범위해서, 지역의 공공 보건 사업, 그러니까 무슨 모자보건이라든가, 노인들을 위한 보건 교육이라든가, 전염병 관리라든가 하는 것들을 관리하기 위한 기관이다. 예를 들어, 신신종 플루라는 전염병이 창궐했다고 해 보자. 이를 개인 의원들이 아무리 열심히 치료한다고 해도 전염병은 계속 퍼지게 될 것이고, 개인 의원들은 전염병이 대체 얼마나 퍼졌는지 파악도 못 하고 있을 것이며, 백신을 누가 맞았는지 얼마나 더 맞아야 군중 면역이 형성이 되는지 하는 문제도 아무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일종의 ‘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이를 관리하게 되는데, 지역마다 딱 하나씩 있는 이 컨트롤 타워가 바로 보건소라는 것이다. 감염병은 물론 지역의 보건이나 의료와 관련된 다양한 사항을 컨트롤하는 곳이 바로 이 보건소다.
지방의료원 폐쇄에 대한 반대급부로 보건소의 진료 강화를 들고 나오는 것은 그래서 꼼수로 보인다. 보건소는 애당초 그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기 위한 기관이며, 지역의 의료사업을 총괄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이기 때문이다.
또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 본인부담금 전액 지원 같은 것도 그렇다. 겉으로만 보면 공공의료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의 특이한 상황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90% 이상의 의료를 민간의료기관이 책임지고 있으며, 민간의료기관의 진료비 역시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 정도라면, 본인부담금 별거 없다. 입원 시에는 본인부담금이 없으며, 외래진료 시에도 매우 소액에 불과하다. 민간의료기관에 간다고 해서 본인부담금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진짜 부담은 비급여, 또 간병비 같은 것인데, 이런 진짜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가 쏙 빠져 있다.
왜 이런 꼼수가 나오는 것일까. 어떻게 이런 꼼수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다양한 문제가 있겠지만, 결국 그 가장 깊은 곳, 가장 기초가 되는 곳에 ‘공공의료의 역할 자체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민간의료기관이 거의 대부분의 역할을 소화하고 있으며(심지어 ‘공공의료’로 인식되는 영역까지도),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이 현저히 낮고, 그 탓에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기관의 방향성 자체도 모호해지고, 지방의료원 폐쇄 이후 경남도의 방침도 핀트가 한쪽에만 쏠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공공의료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