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하다
1월 28일 조선일보는 야권의 양 축(축이 많이 기울어 보이긴 하지만)인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리고 1면에서 인터뷰 소개 겸 두 사람의 메시지를 하나씩 꼽아 위아래에 배치해 대비시켰는데, 그게 바로 아래의 기사들이다.
- “20대 국회서 선진화법 개정” (안철수)
- “운동권 방식 정치는 안된다” (김종인)
흥미를 끄는 건 김종인 위원장의 인터뷰보다 안철수 의원의 인터뷰 쪽이다. 다만 긍정적인 방향으로는 아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친박’의 숙원
사실,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자는 것은 새누리당의 숙원이다. 이는 2012년 5월 공포 시행된 국회법 개정안을 말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국가비상사태, 원내교섭단체 대표 합의 등으로 강화
- 안건조정제도 도입, 상임위 재적 1/3 요구로 여야 동수 안건조정위를 구성하고 최장 90일간 논의
- 재적 1/3 이상의 요구로 무제한 토론을 가능케 하여 일종의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
- 국회의장석, 상임위원장석 점거, 회의장 출입방해 등을 처벌
대부분 국회 내 폭력, 날치기 처리 등을 막기 위한 조항들이다. 덕분에 국회선진화법은 여야의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간의 이견이 클 경우 법안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합의를 강제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쟁점법안에 다른 법안까지 연계되어 처리가 지연되며, 합리적인 토론과 합의보다 거대 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이 법안 저 법안을 서로 거래하는 ‘빅딜’이 성행하는 등의 부작용도 나타났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노동개혁안(이게 정말 ‘개혁’안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을 두고 국가비상사태를 거론하며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야당의 반대가 거센지라 사실상 법안 상정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했다. 대통령이란 사람이 법문을 제멋대로 해석한 격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소위 ‘친박’을 중심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안철수는 여기에 손을 보탠 셈이다.
안철수, 의회, 그리고 장외
안 의원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양당 구조 속에서 탄생한 것이 선진화법이기 때문에 3당이 존재하면 원래의 단순 다수결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흘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다. 늘 의회를 말했던 안철수다. 그는 초기에만 해도 국회 출석률 100%를 기록했고, 텅 빈 본회의장에 안 의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이 언론을 타기도 했다. (물론 이 기록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물론 국회의원이 의회 활동에 집중하는 건 미덕이다. 하지만 이면이 있다. 그는 장외투쟁에 거의 늘상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고 스스로 나선 경우도 거의 없다. 국정원 댓글 사태 및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태 등을 두고 민주당이 벌인 장외투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며, 세월호 장외투쟁에도 불참했고,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투쟁에서도 결국 원내에서 풀어가야 한다 시사하기도 했다.
캐스팅보트란 전략, 다수결에 대한 신념
“원래의 단순 다수결로 돌아가야 한다”는 안철수 의원의 주장이 신경쓰이는 까닭이 이러하다. 전략적으로 보자면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과반 확보를 모두 막은 뒤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몰라도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를 저지하는 건 야권연대 불가를 고수하는 한 매우 힘든 과업이 되겠지만.
헌데 나는 이것이 정말 그의 신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는 정쟁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인물이다. 일단 원내에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단순 다수결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단순히 대원칙을 천명한 것이 아니라, 정말 모든 쟁점 사안을 다수결로 처리해야 한다는 신념이 반영된 것이라면 어떨까.
그는 정쟁이라면 학을 뗀다. 특히 장외에서 벌어지는 운동에는 결코 발을 들이지 않는다. 정쟁 없이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은 그냥 다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이건 안철수에 대한 오래된 선입견 중 하나다. 여도 야도 아닌, 오로지 다수의 편. 늘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그러나 정쟁은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발현하는 필연적인 과정이며,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다수의 횡포를 막는 방책이기도 하다. 실제 의회 내부에서 적법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세월호 특조는 다수당의 횡포로 사실상 무의미해져버리고 말았다. 안철수가 말하는 국민의 뜻이란 것이 그의 말처럼 “단순 다수결”로, 그것도 의회 내에서의 단순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라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고 어두워질 것인가. 소수자와 약자는 어떻게 목소리를 낼 것인가.
소수 앞에 그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안철수의 모습이 쉬이 그려지지 않는 것은 나뿐일까.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말하는 그의 저의가 더욱 위험해보이는 까닭이다.
원문: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