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같은 남자와 연애하고 싶다는 여자들이 있다. 세상이 피폐해지니 아무래도 푸근한 남자가 그리운 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아저씨랑 연애하고 싶다는 건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은 버리세요. 이 글 보고 있는 당신(…)
허브의 아빠쯤 되는 식물 로즈마리
지금 이렇게 식물에 대해 아는 척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원예라는 전공 때문이 아니라, 4년 정도 했던 식물 가이드 아르바이트 덕이다. 손님들을 끌고 다니며 식물원을 구경시켜주면서 식물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대표적인 식물을 알려주는 일이 주 업무였는데, 손님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허브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곤 했다. 그럼 돌아오는 대답 중의 반은 이렇다.
“허브? 로즈마리 아닌가요?”
우리나라에도 자생하고 있는 박하(민트)나, 다른 허브들이 있다. 그래도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이 한결같이 ‘허브’라는 말에 로즈마리를 가장 먼저 얘기한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허브의 아빠> 정도는 되지 않을까. ‘남자’하면 누구나 아버지를 떠올리듯이. 남자친구를 떠올리는 여자분, 반성하세요. 아버지 등골 휘도록 돈벌어서 대학 보내놨더니(…)
이 식물에게서 남자의 향이 느껴진다
몇몇 암수로 나뉜 식물들을 제외하고 많은 식물이 뚜렷한 ‘성’이 없어서인지 주로 ‘여성’에 비유되곤 한다. 나 역시, 타샤 튜더의 영향 때문인지, 식물을 주로 소녀에 빗대곤 한다.
그런데 소녀라 부르기가 미안할 정도로 남성성이 느껴지곤 하는 식물들이 있다. 그 경우는 대부분 1. 사시사철 푸르다. 2. 잎이 뾰족하다. 3. 시원한 향이 난다. 정도의 특징을 갖고 있다. 떠오르는 식물이 있는가? 맞다, 신채호 선생과 같은 절개의 상징인 소나무일 것이다.
하지만 ㅍㅍㅅㅅ를 알만큼 인터넷을 많이 하는 여러분이 소나무 같은 고렙에 도전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절충해 보면 로즈마리가 있다! 한겨울에 내다 놔도 잘 버티는 인내의 식물이기도 하고, 향도 뭔가 삼촌이나 아빠의 화장품 속에 있을 것 같은 것이지 않는가? 실제로 로즈마리는 노화방지를 컨셉으로 화장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바다의 향을 담은 로즈마리의 매력과 실용성
로즈마리는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 있어 설명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식물이지만, 소나무가 연상되는 상록성의 뾰족한 잎과, 유사한 향을 갖고 있다. 라틴사람들은 이 향을 바다의 향이라 느꼈는지, Ros(이슬) + Marinus(바다) 를 합성해 ‘바다의 이슬’ 이란 뜻의 이름을 지었다.
소나무에도 항균 성분이 많아 다양한 가공품에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로즈마리도 살균과 소독 작용을 해준다고 하니(사실은 대부분 향이 강한 식물들은 살균/소독 작용을 한다.) 소나무와 공통점이 많다. 그래서 아주 아주 오래전, 서양에서는 전염병이 돌 때 로즈마리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역시 남자라면 능력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로즈마리는 가히 남자의 식물이라 할만하다.
강인한 우리들의 아빠, 로즈마리!
로즈마리가 아빠 같은 이유 중의 하나는, 한겨울에도 잘 죽지 않을 정도로 내한성과 자생력이 강하다는 점이 있다. 벌레가 잘 꼬이지도 않을뿐더러 큰 화분에 심어 물 조절과 빛 조절만 잘 해주면 문제없이 잘 자란다, 무럭무럭.
식물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은 간혹 작은 모종만 보고 로즈마리가 나무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나같이 소나무도 키울법한 고렙의 마법사가 마당 같은 넓은 곳에서 십여 년간 기르면 의외로 크고 아름다워지기도 하니(..) 여러분 나이의 십의 자릿수가 바뀔 때쯤 여러분 보다 커진다고 해도 절대 놀라지 마시길.
남자의 식물, 로즈마리를 키우는 법!
먼저, 지금이 로즈마리가 쑥쑥 자라날 적기이니, ㅍㅍㅅㅅ에 오는 모든 분들이 집 앞 꽃집에서 2~3천 원 하는 싸구려 로즈마리 하나쯤 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테리어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면 비싸고 좋은 화분에 들은 거 다 필요 없다는 것도 유의하시길.
로즈마리는 건조하게 키우는 것이 좋다. 건조하게 키우는 것이 뭔지 모르는 여러분들을 위해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겠다. 일단 로즈마리 화분을 집에 들였다면 아래와 같이 따라 해 보자.
1. 화분아래로 최소한 작은 우유팩 하나 이상 정도로 물을 뱉어낼 정도로 물을 듬뿍 준다.
2. 화분을 통풍이 잘되는 양지바른 곳에 모셔둔다.
3. 하루에 한 번씩 화분의 겉흙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말랐나 체크한다.
4. 손가락을 털었을 때 완전히 털어지도록 바싹바싹 말랐다면, 바로 지금이 물 줄 시기! 다시 1로 돌아간다.
엄마도 궁금하다고요?
사실 아빠 같은 남자 만나고 싶다는 여자보다, 엄마 같은 남자 만나고 싶다는 남자가 더 많다. 당연한 일이다. 빨래해주고, 밥 지어주고, 청소해주고, 용돈도 주고… 개념녀 따지지 말고 엄마한테 좀 잘하라고, 이것들아! 아무튼 아빠 같은 식물을 만나봤으니, 다음 편은 모두의 예상대로 엄마 같은 식물과 연애를 해 봅시다.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