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4일 안철수 무소속 의원(현 국민의당 인재영입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자였던 이희호 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예방하여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이 면담에서 안철수 의원 측은 이희호 이사장으로부터 정권을 교체하라는 덕담을 들었다고 주장한 반면, 이희호 이사장의 셋째 아들 김홍걸 씨는 그런 덕담이 없었다고 주장하여 진실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 여가 지나 월간중앙은 이 비공개면담 녹취록을 입수하여 단독 공개했다. 하지만 진실 공방은 여전히 이어졌는데, 이희호 이사장의 덕담이라는 것이 안철수 의원 측의 “정권 교체가 되도록 밀알이 되겠다는 마음”이란 발언에 대해 “꼭 그렇게 하세요”라는 답을 건넨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심이 담긴 대답인지, 의례적인 답변일 뿐인지를 두고 다시 갑론을박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 공방에 앞서, 사실 이 녹취록은 그 자체의 신빙성을 의심케 하는 구멍들이 존재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비서관과 이희호 여상의 말이 뒤섞인 엉망 녹취록
이 여사 측이 안 의원에게 조언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이 여사 측의 한 비서관이 안 의원에게 “대표님(안철수 의원)께서는 제일 마지막에 무엇이든지 결정을 할 때 대표님(안철수 의원)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감히 말씀 드립니다”라고 말한다.
기사의 열 번째 단락이다. 비서관이 안철수 의원에게 조언을 건넸다고 쓰여 있다.
이 여사 _ 지금 (아프신) 핑계 김에 밖을 한 번도 안 나가십니다. 오히려 신체적으로 좀 무리가 났지. 감기라든지 독감이라든지 이런 계통이기 때문에, 그래서 일정도 실상은 대표님(고 김대중 전 대통령) 모시는 일 하나 외에는 없습니다.
제가 대표님(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정권에 계셨을 때는 관저에 있었습니다. 그때도 대표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오셔서 저희 비서관들하고 의견을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당신께서 수용을 하시면 그 자리에서 한번 그 길로 가보지 하시고, 저희들하고 의견이 다르시면 ‘내 생각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시 한 번 하문하시고 그런 것을 많이 봤습니다.
주제넘고 외람된 말씀입니다마는 결정을 하는 과정이 조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이렇게 해서 결정을 하고 대표님(안철수 의원)께서는 제일 마지막에 무엇이든지 결정을 할 때 대표님(안철수 의원)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감히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기사 말미 녹취록의 일부다. 비서관이 했다던 조언이 이번엔 이희호 이사장의 발언으로 둔갑해 있다.
“제일 마지막에 무엇이든지 결정을 할 때 대표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감히 말씀 드립니다.” 이 말은 대체 누가 한 말인가? 이희호 이사장과 그 비서관, 두 사람이 똑같은 얘길 반복하기라도 했을까?
녹취록에서 이희호 이사장의 발언으로 기록되어 있는 부분들이, 사실은 비서관의 말을 적당히 뒤섞은 물건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2. 명백한 비서관의 말을 이희호 여사의 말로 바꿔쓴 월간중앙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이번엔 이 부분에 주목해보자. 이희호 이사장이 건강을 유지하여 정권교체를 보았으면 좋겠다는 안철수 의원의 덕담에 대한 이희호 이사장의 반응이다.
이 여사 _ 지금 (아프신) 핑계 김에 밖을 한 번도 안 나가십니다. 오히려 신체적으로 좀 무리가 났지. 감기라든지 독감이라든지 이런 계통이기 때문에, 그래서 일정도 실상은 대표님(고 김대중 전 대통령) 모시는 일 하나 외에는 없습니다. 제가 대표님(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정권에 계셨을 때는 관저에 있었습니다. 그때도 대표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오셔서 저희 비서관들하고 의견을 물어보시더라고요.
이 부분은 맥락상 이희호 이사장 본인의 발언으로 보기 어렵다. 이게 정말 의희호 이사장의 발언이라면, 이희호 이사장은 본인의 상태를 설명하며 “(내가) 안 나가신다”며 높임말을 쓴 셈이다. “저희 비서관들”이란 표현도 어색하다. 혹 이 부분은 통채로 이희호 이사장이 아니라 그의 비서관이 한 말이 아닐까? 적어도 일부분, 비서관이 한 말이 섞여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이런 내용도 있다.
이 여사 _ 사모님 덕담 한마디….(소음)
이 자리에 이희호 이사장이 사모님이라 칭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건 누가 봐도 이희호 이사장의 발언이 아니다. 비서관의 발언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그럼 대체 이 녹취록에서 이희호 이사장 본인이 한 발언은 어느 부분인가? 이 녹취록만 봐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이희호 이사장이 한 말과 이희호 이사장 ‘측’ 인사가 한 말이 모두 이희호 이사장의 이름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 이희호 이사장의 발언이 아니라 비서관의 발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3.
이 녹취록은 안철수 의원의 수행원이 ‘개인의 일탈’로 공개했다고 한다. 애당초 비공개 면담의 녹취록이 있는 것도 웃기고, 그걸 언론에 제공하는 것도 웃기고, 언론이 까는 것도 웃기고, 그냥 다 웃긴다. 이희호 이사장이 한국의 발전에 기여한 큰 족적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세요” 수준의 의례적인 덕담 한두마디로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심지어 그 녹취록이 애매하게 ‘마사지’ 되어 기사화되는 것은 개중에서도 가장 우스운 일이다. 참으로, 새정치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