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 믿을 수 있을까?
민주당의 대선평가보고서가 나왔다. 총 4부 21장, 369쪽에 달하는 꽤 긴 문건이다. 이 대선평가보고서의 해석을 두고 언론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고, 민주당 내의 대립도 무척 첨예한 것 같지만, 긴 분량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실 막상 읽어보면 꽤 심심한 문건이다. 이런저런 대선 과정에서의 전략적 실패와 패배 원인에 대한 국민과 민주당 내부의 인식을 기존 연구, 공유되던 견해, 여론조사 등을 동원해 설명하고 이를 엮었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었을까? 많은 언론이 분석하듯이, 역시 문재인, 이해찬, 한명숙, 박지원, 문성근 등 친노 주류로 분류되는 인사들’만’ 실명비판의 대상으로 올라있는 까닭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권 주자로서, 혹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서 패배에도 그만큼 큰 책임을 지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다. 소위 친노로 불리는 정치인들이 실제 전면으로 나선 선거였다는 점에서 친노 계파의 책임을 묻는 것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여론조사와 통계분석을 통해 대선의 패배 요인을 짚어나가는 보고서의 틀은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함정일지도 모른다. 여론조사와 통계분석이 보고서를 ‘그럴듯하게’ 만들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늘 신뢰할만한 근거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로부터 정치적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은 더욱이 조심스러운 일이다.
여론조사는 늘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는가?
실제로 이 보고서의 내용은 상당 부분 당내 인사와 유권자들이 무엇을 패배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대선 ‘사후’에 질문한 여론조사 결과에 기대고 있다. 2013년 2월과 3월 대선평가위가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2013’과 ‘민주당 주요인사 정치의식 조사 2013’이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문항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민주당 대선 패배요인으로서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요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식이다. 여기에서는 응답자의 65.0%가 ‘동의한다’고 응답했으며, 12.7%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유권자들의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항목도 마찬가지다. 설령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었다 해도, 그것이 진짜 패배요인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패배요인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관련 내용을 다룬 보고서 6장의 제목은 ‘국민과 민주당 지지자가 본 대선 패배 원인’이며, 그 내용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보고서 말미의 최종 결론에서는 결국 이상의 여론조사 결과, 즉 ‘사람들이 대선 패배의 원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조사를 ‘대선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거로 삼는다. 무엇이 ‘사실인가’와 사람들이 무엇을 ‘사실이라 생각하는가’, 두 가지 다른 요인이 혼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조사가 대선 패배 이후, 사후적으로 이뤄진 조사라는 점에서도 한계는 명확하다. 사후 조사엔 편향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응답자들이 패배 요인을 사후적으로 ‘갖다 붙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물며 대선으로부터 2개월 이상 지난 후 조사가 이뤄졌다는 것은, 그간 대선 패배 요인을 이미 언론 등에서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는 점에서 그만큼 편견이나 편향이 끼어들 여지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답정너’의 함정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다. 보고서는 때때로 그런 ‘답정너’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3장 ‘계파 갈등과 민주당 이미지 하락’ 같은 경우가 그렇다.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계파정치를 대선 패배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하며, 실제 유권자 대상 조사와 민주당 내 조사에서도 이를 모두 가장 큰 패배 요인으로 꼽고 있다. 민주당의 계파정치를 지적하는 목소리야 이전부터 워낙 많은 곳에서 나왔던 것이고, 따라서 이런 결론 자체를 잘못된 것이라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보고서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다소 의아한 구석이 있다.
3장은 민주당의 계파 갈등과 진영논리를 지적한다. 또한 486의 권력화를 지적하고,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등을 소모적 이념공방으로, 한미 FTA 반대 등을 정당과 사회운동의 차이를 혼동하는 집합행동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민주당의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검증하겠다며 설문조사를 제시한다.
그 세부적인 내용은 이렇다. 계파정치, 진영논리 (대결정치), 이념노선, 486 정치인을 민주당 체질변화의 구조적 산물로 적시하고 이에 대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선생님 생각에 다음의 요인(주: 계파정치 등 4개 요인)들이 민주통합당의 인기(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알 수 있듯,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계파’ ‘이념’ ‘진영’ ‘486’등의 단어가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설문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고서는 이상의 이미지가 모두 부정적으로 조사되었다며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국민의 삶이 피폐해지는 냉엄한 현실에서 민주당이 민생을 챙기기보다 이념 갈등과 계파정치를 심화시킨 결과”라는 내용을 결론으로 내는데, 이상의 통계에서 이런 결론이 나오는 중간 과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민주당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매우 부정적으로 조사되는 이후의 조사 항목들을 볼 때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니까, 현재의 민주당은 뭘 물어봐도 안 좋은 결과가 나올 만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여론조사를 설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문항의 틀 자체가 이미 답을 한쪽으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답은 정해져 있으니 대답만 하면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여론조사에서 해석까지 이어지는 길, 그 길 위의 ‘미싱 링크’
17장 ‘야권연대’ 중 일부다.
[quote style=”1″]야권연대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 진보정의당 심상정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전체로 보면 부정비율이 긍정비율보다 높게 나왔지만 문재인 투표자는 긍정비율이 부정비율보다 높게 나왔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심상정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 참여조차 못하고 단일화의 시너지를 낼 수 없었던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결과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단일화는 단순 단일화가 되어선 그 효과가 미미하고 가치와 정책의 연합에 기반해서 양쪽 정치세력 지지자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융합되어야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점이다.[/quote]
여기에서, 국민의식조사 결과가 ‘가치와 정책의 연합에 기반해서 선거운동 과정에서 융합되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명백한 ‘미싱 링크’가 있다.
또 19장 ‘문재인 투표에 미친 안철수 효과와 안철수 현상’에서도 짚어볼 부분이 있다. 보고서는 대선평가위의 국민의식조사 2013에서 안철수 지지표의 65.2%가 문재인으로, 21.2%가 박근혜로, 11.7%가 기권으로 이동했음을 밝힌다. 보고서는 기존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안철수 지지자의 3분의 1 정도는 친박근혜 성향으로, 3분의 2 정도는 친문재인 성향으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후보가 애초에 문재인 쪽으로 이동할 표를 거의 흡수한 반면, 친박근혜 성향표 상당수는 기권 형태로 흩어졌다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안철수 지지표 중 박근혜:문재인 비율이 1:2라는 것은 민주정책연구원의 2012년 국민의식조사에 기반을 둔 것으로, 1) 대선평가위의 2013년 조사와 조사 시기의 차이가 너무 큰 데다가 2) 추적조사가 아닌 이상 2회의 설문으로 경향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상에서 “문재인은 안철수와 그 지지자에게 빚을 졌다”고 결론을 짓는데, 이 표현 자체에는 비교적 동의하지만, 적어도 보고서 내에서 그 결론에 이른 통계가 과연 근거로서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또 보고서는 대선평가 과정에서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졌다’는 쪽을 자기성찰형, ‘이길 수 없는 선거지만 선전했다’는 쪽을 자기위로형으로 분류한다. 용어 선택 자체도 다소 편향적으로 느껴지지만, 이 부분은 각설하고 – 이는 사실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고 양분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당 내부의 문제로 외부에서 보는 당의 신뢰도가 떨어짐 → 당에 대한 지지도가 악화되고 당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됨 → 지지율이 떨어지며 당내 분규가 심화됨’ 같은 식으로, 내부 문제 심화 → 외부 환경 악화 → 내부 문제 심화가 계속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악순환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를 양분하여 분석하는데다, 그 근거 또한 거의 대부분 “어느 쪽에 동의하는가”를 묻는 여론조사에 기대고 있다. 비록 보고서가 신뢰도 분석을 위해 해당 통계에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결국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는 자료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지만, 여기에서 정치적 해석을 끌어내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물론 보고서는 여러 변수를 고려하고 각 변수의 상관성을 조사하는 등 이런 함정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또한 조사 결과에서 어떤 정치적 해석을 이끌어내는 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등 대체로 바람직한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4장의 아래와 같은 부분은 ‘상당한 관련성’을 관찰하고서도 다른 변수를 고려하여, 즉시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 대신 더 자세한 분석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조사자료의 경우 여성과 박근혜 지지 사이에 통계적 관련성이 도출되지는 않았으나 몇몇 설문조사의 경우 통계적 관련성이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다만, 박근혜의 ‘준비된 여성대통령론’은 박근혜에 대한 투표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으며 남성보다 여성에게 좀더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것이 말 그대로 ‘여성대통령’에 대한 호감인지 아니면 단순히 박근혜후보의 슬로건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인지 좀더 추가적이고 자세한 분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위의 사례처럼 종종, 특히 일부 인적 문제나 계파 문제를 겨냥함에 있어서는 유독 정치적 해석을 무리해서 끌어내는 경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아쉬운 부분이다.
답을 낼 수 있을까?
보고서는 나름 여러 이견을 조율해 넣었으나, 친노의 책임이 부각된 보고서인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번 대선이 친노가 전반에 드러난 선거였다는 것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문재인은 노무현과 가까운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로 선거의 패배 요인과 그 책임을 묻는 데 있어 여론조사, 그것도 대선 패배 이후 사후적으로 행해진 여론조사가 그 근거로 이용되었음은 보고서의 뚜렷한 한계점이다. ‘대선 패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여론조사로부터 ‘대선 패배 이유는 이것’이라는 결론을 내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여론조사란 방법 자체가 편향이 끼어들 수밖에 없는데, (슬로우뉴스의 박종희 교수 인터뷰가 이런 편향, 오염 요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후적으로 행한 여론조사라는 점에서 그 편향은 더욱 심각하게 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보고서가 ‘국민의식조사 2013’과 ‘민주당 주요인사 정치의식 조사 2013’ 뿐 아니라, 선거 전의 자료를 메타분석했다면 더 나은 내용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결코 쉬운 과업이 아니었을 것이며, 특히 보고서 작성까지의 인적 자원과 시간의 한계 등이 발목을 잡았겠으나, 이 보고서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를 상당 수준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보고서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계파 문제를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계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느 계파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세밀한 지적은 없었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특히 계파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3장에서 유독 486 정치인만을 설문항목에 포함하거나,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논쟁 등을 소모적 이념공방으로 규정한 부분 등은 결국 일부 계파에 대해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여론조사 항목의 경우, 틀에 이미 결론이 ‘끼워 맞춰져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역시 같은 장에서 계파정치, 진영논리 (대결정치), 이념노선, 486 정치인 등에 대한 인식을 묻는 조사 항목의 경우 특히 그렇다. 보고서 스스로 분석의 기본 틀을 정함에 있어 첨예한 갈등이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로 분석의 틀 자체가 분석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생각해 볼 때 이런 부분은 아쉬운 점이다.
게다가 보고서가 생활밀착형 정치 등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용 대부분이 대선 선거운동기간 그 자체에만 주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소수의견서의 의미가 크다. 소수의견서는 대선 정국 이전에 ‘이미’ 낮았던 민주당의 낮은 지지율과 그 극복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 평상시 역량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선거용 정당으로 불릴 정도로 민주당의 평소 역량이 낮고, 특히 사람들의 생활이나 지역 이슈 등에서 민주당이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도 대선 직후 민주당의 지지율이 새누리당보다 현저히 낮게 조사되고 있는 상황, 즉 평소 역량이 이처럼 불충분한 상황에서 선거운동’만’ 개선한다 해서 민주당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덧. 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 및 소수의견서는 대선평가위원회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으나, 둘 다 hwp 파일로만 제공된다. 이에 ㅍㅍㅅㅅ에서 이를 pdf 파일로 변환하여 제공하고자 했으나, 369쪽이라는 분량의 압박으로 서버가 압박받을 것이 두려워 포기했다(…). 한편 이 대선평가보고서는 엔간한 검색어로는 네이버에서도 구글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위엄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