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지금 창업을 준비 중이시라면 여러분은 일단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창업자를 위한 시기별 정부지원사업이 어느 때보다 활성화된 환경이기 때문이죠.
저희도 지금껏 6건의 정부사업에 합격해 감사하게도 시기별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중복지원 불가 등의 이유로 서류통과 후 포기한 사업도 있는데요. 세어보니 총 11건의 정부지원 서류를 썼고, 그중 9개가 합격했습니다.
막연하다 보니까 어려워 보이는 것이지, 사업계획서 쓰기는 알고 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은 9가지 실용적인 서류 합격 포인트를 공유해보겠습니다.
1. 지원서류는 잡지 한 권이다
정부지원서류 작성 과정은 ’20장 잡지 한 권’을 만드는 일과 같습니다.
이 무슨 알쏭달쏭한 이야기냐고요? 잡지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3요소는 콘텐츠, 레이아웃, 사진입니다. 사업 서류도 꼭 같아요. 읽기 편한 레이아웃을 짠 뒤 사업 아이템이란 콘텐츠를 정리, 적재적소에 이미지를 배치하면 완성됩니다.
더불어 ’20장 잡지’로서의 접근은 전체적인 통일성과 완결성을 만들어줍니다. 내 사업아이템을 설명하는 이 잡지에서 논리적 흐름은 어때야 하는지, 전체를 봤을 때 어느 정도 시점에서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좋을지 생각하다 보면 짜임새 있게 서류의 구도가 잡힙니다.
2. 여백은 꼭 필요하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여백은 없어도 되는 그냥 빈칸이 아닌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여백의 역할은 ‘레이아웃’ 구성입니다. 사이 공간 없이 빽빽한 글을 보면 어떠세요, 읽기도 전에 피로감이 들지 않나요? 첫인상에서 ‘읽기 싫다’는 느낌을 주면 심사에 좋게 작용할 리가 없습니다.
자, 한번 상상해볼까요. 여러분 책상 왼편에는 지금 2.5m 높이로 서류가 쌓여있습니다. 우리는 겨우 몇 시간 안에 이걸 전부 읽고 점수 매겨야 합니다. 넉넉잡아도 서류당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5분 이내입니다.
이게 실제로 심사역들이 겪는 고충입니다(아마도). 서류가 반드시 친절해야만 하는 이유죠.
친절해 보이기 위해 제가 썼던 방법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 문장을 짧게 쓴다. 내용이 길면 중간에 끊고 새 문장에 쓴다.
- 챕터의 시작과 끝과 문단 사이에 적당한 여백을 넣어 여유를 준다.
- 여백과 더불어 제목과 내용의 폰트를 달리해 ‘레이아웃’을 구성한다.
- 이미지/사진/표/차트로 설명할 수 있으면 글을 최대한 줄인다.
글이 빽빽하다 싶으면 이미지를 억지로라도 구해 중간에 배치한다. - 계속 다시 읽어보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심사역을 코스프레 하면서 어려운 부분, 불편할 것 같은 부분을 찾아 전부 수정한다.
3. 사업내용이 다 들어갈 필요는 없다
창업자 입장에선 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모든 내용을 놓치지 않고 말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같은 사업군의 많은 서류를 보는 심사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내용이 많겠죠.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차라리 과감히 덜어내는 편이 낫습니다. 굳이 없어도 될 내용까지 다 욱여넣어서 시선을 분산시키지 말고,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 몇 가지만 임팩트 있게 꽂아주는 편이 더 좋습니다.
4. 팀, 아이템, 수익모델이 중요
가장 중요한 3가지 항목을 꼽으라면 단연 창업자(팀) 소개, 아이템 소개, 수익모델이죠. 시장조사, 마케팅전략 등은 그보다 덜하고 상황에 따라 그 부분은 아예 안 읽는 심사역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시장조사 부분에서 문단 전체를 잘못 복사-붙여넣기 한 상태로 제출했는데, 통과한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운이 좋았습니다. 헤헷)
시장조사같이 품이 드는 항목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지 말고 아이템에 우선을 두시는 걸 추천합니다.
5. 합격한 서류를 참고하자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도 구글링 돌려봤지만 잘 안 나오더군요. 유일하게 두 군데에서 나오는데요.
크몽 같은 재능판매 사이트와 비즈폼 같은 서식판매 유료 사이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첫 3~5장까지는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만 봐도 감 잡는데 도움이 됩니다.
혹시 옛날 서류도 괜찮다면 이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6. 바로 보내지 말고 숙성시키자
완성 후 마감까지 여유 시간이 있다면 보내지 말고 내일 다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우선 글은 고칠수록 좋아집니다. 또 초고 작성을 막 끝낸 후엔 웬일인지 오류가 잘 보이지 않죠. 이건 서류작성의 영역이 아닌 모두가 공감하실 글의 속성 탓인 것 같네요.
7. 쉽게, 그러나 고급어휘로
논술을 경험해본 분이라면 이해하실 텐데요. 똑같습니다. 전반적으로 쉽게 쓰면서도 사이사이 고급어휘를 넣어주면 가독성과 전문성을 둘 다 잡을 수 있습니다.
사업내용을 상징적으로 함축하는 키워드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보통 교수님들이 정말 잘하시는 부분이죠. 전문용어나 약어를 써야 하는 경우엔 괄호설명을 써주는 편이, 물론 좋습니다.
8. 반드시 창업자가 직접 쓰자
처음엔 낯설어서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법률사무소나 재능판매자에게 맡기지 말고 창업자께서 직접 써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학습’의 문제 때문인데요. 나중에 IR을 하든 뭘 하든, 내 사업을 정리해서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능력은 중요합니다. 또 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다 보면 내 사업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서류합격 후 있을 발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겠죠.
이런 서류도 쓰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제 경우 20장 내외 지원서를 처음 쓸 때 꼬박 1주일을 잡고 썼습니다. 꽤 머리 싸매고 열심히 썼지만 떨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낸 동일한 분량의 지원서는 거의 하루 만에 아주 쉽게 썼습니다. 그리고 합격했습니다. 쓰다 보면 일종의 ‘프레임워크’가 생깁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도 엉망이었습니다. 쓰다 보면 늘고, 늘고 나서 보면 별거 아닙니다.
9. 존대/반말/축약은 상관없다
전 이게 정말 궁금해서 한참 찾아보고 물어봤는데 끝내 알려주는 데가 없었습니다. 실험을 통해 결국 알아낸 답은 ‘상관없다‘는 거였습니다. (젠장ㅠㅠ)
존댓말(이건 진짜 좋은 사업입니다), 반말(이건 진짜 좋은 사업이다), 축약문(이건 진짜 좋은 사업임) 셋 다 써봤고, 다 붙어봤습니다. 이건 전혀 상관없는 듯합니다.
사업계획서 쓰기에 관해 제가 아는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열심히 써보기는 했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좋은 사업 잘 정리하셔서 꼭 합격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스타트업 하고 앉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