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4월 1일부터 뉴스 공급 서비스를 개편했다. 독자 여러분은 시답잖은 거짓말로 나름대로 즐거운 만우절을 보냈겠지만, 국내 53개 언론사는 “아… 이게 레알 만우절 농담이었으면…” 싶었을 그 이름 ‘뉴스스탠드’.
뉴스스탠드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판매하는 뉴스 가판대(뉴스 스탠드)처럼 언론사가 제공하는 뉴스를 네이버 첫 화면에서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원래는 네이버 ‘뉴스캐스트’라는 이름으로 뉴스 서비스가 이어져 왔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적용된 뉴스스탠드는 뉴스캐스트의 단점을 보완한 네이버의 새로운 시스템이다.
이 글에 ‘남자의, 남자를 위한 서비스’라고 웃기지도 않은 제목을 붙여봤다. 네이버에 뉴스를 공급하는 국내 53개 언론사는 뉴스스탠드를 가리켜 ‘명운이 달린 사항’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토록 심각한 얘기를 쓰는데 마치 장난이라도 거는 것 마냥 허섭쓰레기 같은 제목을 달다니. 제정신이란 말인가.
글쓴이를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하는 거야 독자들 마음이지만, 아 일단 한 번 들어보시라. 이 글은 네이버가 뉴스캐스트를 포기하고, 뉴스스탠드를 도입한 까닭이나 배경, 혹은 앞으로 언론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거룩하고 거창한 분석에 관한 글이라기보단, 꼬박 도입 24시간을 맞은 네이버 뉴스 스탠드에 관한 일종의 짧은 관찰 보고서다.
뉴스스탠드 = 눈이 즐거워. 누구? 남자만!
뉴스스탠드가 도입된 그 순간부터, 그러니까 월요일이자 만우절인 4월 1일 오후 2시가 땡 치기가 무섭게 언론사는 뉴스스탠드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동안 뉴스캐스트를 지배하던 문구. 그러니까, 옛 뉴스캐스트의 상징과 같았던 문구가 ‘충격’과 ‘헉’, ‘알고 보니’, ‘경악’, ‘화들짝’, 그리고 간혹 보이던 ‘살아있네’ 였다면, 뉴스스탠드로 바뀌고 나서는 하나로 통일됐다. 그게 뭐겠는가. 뭐긴 뭐야 홀딱 벗은 여자의 알몸이지.
뉴스스탠드는 바뀐 시스템 덕분에 기사 제목에 사진을 넣을 수 있게 됐다. 옛 뉴스스탠드도 톱뉴스에 걸리면 사진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뉴스캐스트 시절에는 톱뉴스로 걸리는 기사는 드물었다. 언론사가 뻔질나게 여자의 알몸을 내건 사진을 기사로 내보내면 경고 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뉴스스탠드의 기사 화면을 접한 언론사들은 저마다 하나씩 여자 사진을 마음대로 걸어놓기 시작했다. 뉴스를 편집하고, 톱 뉴스로 다루는 것은 언론사의 몫이 됐으니 언론사 각자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다는 얘기다. 옛 뉴스캐스트 시스템이 ‘헉’과 ‘충격’을 앞세운 텍스트 낚시꾼의 5일장 시장통이었다면, 지금의 뉴스스탠드는 비주얼 마케팅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 아닐까? 오. 이거슨 마치 버글스가 노래한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의 1980년대 미국이 아닌가…? 는 개뿔, 그냥 더 더러워졌다는 거다.
언론사의 ‘역변’만 일으키는 네이버 뉴스 스탠드
이게 좋아 보인다고? 네이버가 왜 뉴스캐스트를 버리고 뉴스스탠드를 도입했는지 이해한다면, 언론사의 이 같은 변신은 백번이고 유죄다.
네이버는 공식적으로 선정적인 뉴스만 배포되는 지금의 현상을 막기 위해 뉴스스탠드를 도입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언론사들이 쓰잘떼기 없는 소식(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들)에 ‘충격’ 제목을 달아 뉴스캐스트 ‘장사’를 하는 꼴을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꽤 강력한 조치가 바로 뉴스 스탠드다.
뉴스스탠드 도입으로 이 같은 선정적인 뉴스 장사 현상을 정말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네이버가 기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를 알아보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게 너무 슬프다. 여자 알몸 사진이 더 선정적일까, 아니면 제목에 ‘충격’ 달아서 낚시하는 게 더 꼴사나운 일일까?
둘 다 더러운 단면이겠지만, 뉴스캐스트도 별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 아닐까. 여자 알몸이 글자가 아닌 사진으로 나오는 걸 보고 ‘오~ 좋다’라고 생각하는 치는 부디 없길 바란다.
아무리 눈이 즐거우면 뭐하나. 누군가 읽어야 말이지…
백 보 양보해 눈이 즐거워지도록 시스템을 바뀐 것이 한 발짝 발전한 것이라 치자. 어차피 대중은 살색을 좋아하고, 남자는 특히 더 그렇잖은가? 네이버도 그렇고, 네이버에 기사 파는 언론사도 그렇고, 선정적인 기사 잘 팔 수 있는 판이 만들어졌다는 걸 우선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잔 말이다. (이건 진심이 아닌 거 알지?)
그래도 문제는 남아 있다. 좀처럼 뉴스를 읽기 어려워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뉴스를 읽기 어려워졌다는 건 곧 대부분의 네이버 사용자가 뉴스를 많이 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얘기고, 이는 다시 언론사의 광고 수익 감소에 직격탄이 된다. 그것은 마치 심영이 고자가 될 때의 그 느낌일 테다.
생각해보라. 옛 뉴스캐스트는 기사 제목을 누르기만 하면 바로 언론사 페이지로 연결됐었다. 그 페이지뷰(일반적으로 ‘PV’라고 한다)가 고스란히 언론사의 광고 수익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고. 기사 첫머리에 뉴스스탠드가 만우절 농담이길 바랄 것이라고 흘려쓰긴 했지만, 아마 언론사들의 진심과 크게 다르지 않을걸?
뉴스스탠드는 옛 뉴스캐스트와 달리 뉴스 제목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언론사 로고만 보여준다. 그것도 53개 언론사를 첫 화면에 모두 배치해줄 수 없으니 몇 개의 언론사 로고만 보여준다. 이후 접속할 때마다 무작위로 언론사 로고를 바꿔 보여준다. 아래는 네이버에 접속한 한 사용자가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뉴스 하나를 읽기까지 걸리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시나리오 1. 뉴스를 읽지 말라고 강요하는 뉴스스탠드 UX
[note color=”#f7f7f7″]점심 먹고 네이버를 켰다. 뉴스스탠든지 뭔지 새로 바뀌었다는 게 이거구나. 어 근데 언론사 로고만 보인다. 뭘 어쩌라는 거야. 아무 언론사나 눌러본다. 일반적으로 많이 들어본 이름의 언론사 로고를 누른다. 그리고 벗은 여자 사진을 눌렀다. 그제서야 언론사 웹사이트로 이동해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note]
옛 뉴스캐스트와 뉴스스탠드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UI/UX (사용자 인터페이스, 사용자 경험) 문제다. 웹페이지의 특정 요소를 사용자가 어떻게 조작하도록 꾸며 놨는지, 그 환경이 궁극적으로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단어다.
쉽게 말하면, 스마트폰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은 화면 왼쪽엔 검색창을 숨겨두고, 화면 오른쪽에는 지금 접속 중인 친구 목록을 표시한다. 사용자가 버튼을 눌러 화면을 이쪽저쪽으로 넘겨가며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을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모두 UI/UX 범주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궁극적으로 앱 개발업체는 물론, 네이버도 UI/UX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헌데, 시나리오 1.에서 보인 뉴스스탠드의 UX는 어떤가? 말 그대로 이건 그냥 뉴스 읽는 것을 포기하라는 거다. 사용자는 민감하다. 그리고 귀찮은 건 죽는 것보다 싫어한다. 그날그날 올라오는 자극적인 뉴스 제목을 눌러 뉴스를 바로 볼 수 있었던 것이 옛 뉴스캐스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하지만 언론사 로고를 누르고, 그 언론사가 그날 어떤 뉴스를 내놨나 살피고, 다시 기사를 눌러 봐야 하는 일련의 동작은 대부분의 사용자가 익히기도 어려울뿐더러 쉽사리 기사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없는 시스템이다. 네이버가 왜 뉴스캐스트를 버리고, 뉴스스탠드를 도입했는지 대의명분은 둘째 치고서라도 이건 명백히 시스템의 실패다. 따라서 다음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시나리오 2. 그래! 그거야! 뉴스를 보지 말라고!
점심 먹고 네이버를 켰다. 뉴스스탠든지 뭔지 새로 바뀌었다는 게 이거구나. 어 근데 언론사 로고만 보인다. 뭘 어쩌라는 거야. 걍 뉴스 안 보고 할 일이나 했다.
할 일 없어 멍한 눈으로 뉴스의 자극적인 제목 눌러 보던 독자들이 이 같은 복잡한 구조를 다 뚫고 들어와 뉴스를 볼까? 고대 마야 문명을 침공한 스페인 군대가 밀림을 뚫고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53개 언론사가 네이버 뉴스스탠드 도입을 마치 엉덩이 야구빠따 순번 기다리는 고딩의 심정으로 걱정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들이 뉴스를 읽지 않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뉴스스탠드 때문에 “언론사 비명”이 핵심 키워드다. 더 안 봐도 알겠지요? 어떤 언론사는 하루 방문자 수가 옛 뉴스캐스트 시절과 비교해 1/10로 줄어들었다며 목을 놓아 울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게 다~ 언론사 책임인 거 아시죠?
‘관찰 보고서’라고 앞에 밝히긴 했지만, 뉴스스탠드와 네이버의 입장, 언론사의 입장 등 책임공방을 짚을 필요는 있다. 네이버는 뉴스스탠드를 도입한 것을 언론사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지배적인 포털 사이트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띄워 포털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용자 10명 중 8명은 인터넷을 하면 네이버에 접속한다.
이는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고, 네이버 첫 화면에 뉴스를 내보낸다는 것은 곧 클릭수 보장으로 연결됐다. 그렇다 보니 네이버에 뉴스를 팔기 시작한 53개 언론사는 피튀기게 경쟁했다. 사용자들의 마우스 클릭을 어떻게 해서든 잡아보기 위한 싸움이었다. ‘충격’, ‘경악’, ’20대 여대생’ 키워드가 주효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원래 네이버가 뉴스를 공급해 기대한 효과는 언론사들의 질적 경쟁이었다. 좋은 기사를 써서 사용자의 선택을 받으면 언론사 수익이 올라가고, 언론사는 그럴수록 더 양질의 기사를 네이버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물론 질적 경쟁은 했다. 그 초점이 누가누가 더 질 좋은 자극을 독자에게 선사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었으니 문제였지만(…)
언론사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언론사라고 할 말이 없을까? 언론사도 할 말이 많다. 네이버의 지배적인 사업자적 위치와 대다수 독자들의 기호에 관한 얘기다.
말인즉슨 독자들이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를 많이 클릭해 준다는 얘기다. ‘유럽 경기침체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같이 딱 봐도 지루한 논문 같은 기사 말고 ‘야동 보던 20女, 결국…’과 같은 제목을 단 기사들이 훨씬 더 잘 팔렸더라는… 뭐, 그런 슬픈 얘기. 사족이지만 ‘야동 보던 20女, 결국…’기사는 진짜 있는 기사다. 내용을 읽으면 머리끝까지 폭발하는 욕지기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함 봐라.
네이버가 지배적인 사업자적 위치에 관한 얘기는 그러니까, 뉴스캐스트를 폐지하고 즉각적으로 언론사의 광고 수익을 떨어트릴 수 있는 뉴스스탠드를 도입한 것이 클릭 수를 좌지우지하는 네이버의 횡포라는 시각이다.
뭘 어쩌라고…
독자는 네이버에서 본 뉴스를 다른 이에게 설명할 때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오늘 글쎄 네이버에서 기사 하나 봤는데…”
이 말 속에 언론사 이름은 없다. 뉴스라는 알맹이만 있을 뿐이다. 그 뉴스가 어떤 언론사에서 쓴 것인지, 어떤 기자가 쓴 것인지 관심 없이 오로지 기사만 읽고 나온다는 얘기다. 따라서 언론사 로고만 첫 화면에 노출해주는 지금의 뉴스스탠드에서 독자는 갈 길을 잃는다.
책임 공방이야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금 언론사가 뉴스스탠드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언론사 책임이다. 그동안 언론사가 쓰는 각종 쓰레기 텍스트를 실어 날라온 네이버에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언론사 스스로 클릭 수에 매몰돼 뉴스의 가치가 아닌 제목을 팔아오지 않았던가. “ㅅㅂ 이 기사는 쓰레기네” 하면서도 ‘충격’이 달린 제목은 어쩐지 눌러보고 싶어지긴 했지만, 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언론사 스스로 기사의 질을 떨어트리는 무한 경쟁을 반복해 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긍정적이고, 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는 언론사 매출 구조의 탈 네이버다. 전체 수익 중 네이버를 통해 뉴스를 읽는 독자 수에 따라 책정되는 광고료 매출의 비중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네이버에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사 중에서는 네이버를 통한 광고 매출이 전체 매출의 과반을 넘기는 곳도 있다. 어려운 일이다.
혹은 언론 스스로 각성하는 일일 게다. 좋은 뉴스를 팔아 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원래 언론사가 지향했어야 하는 당연한 역할을 네이버가 뉴스스탠드를 도입한 것을 계기로 얘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너무 슬픈 일이다.
당장 언론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기다려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뉴스스탠드 기능 중 하나는 독자 스스로 네이버 첫 화면에 띄울 언론사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XX일보’는 안 보이게 빼고, ‘XX신문’은 볼 수 있도록. ‘마이뉴스’ 설정 기능이다. 옛 뉴스캐스트 시절에도 이와 똑같은 기능이 있었지만, 언론사 로고를 전면에 배치하는 뉴스스탠드로 넘어오면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지금 각종 언론사가 ‘네이버 마이뉴스 설정하면 아이패드 드려요. 아잉~’ 하는 식으로 광고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마이뉴스 설정 건수에 따라 언론사에 불이익이 돌아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네이버 사용자들이 뉴스스탠드에 익숙해지고, 마이뉴스를 하나 둘 설정하게 되면, 언론사로 유입되는 독자 수가 어느 정도는 회복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다. 물론 어렵다. 조금은 회복될지언정 예전만큼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안하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하여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남자의 뉴스, 남자를 위한 뉴스가 된 것은 아직도 언론사가 클릭 수에 목을 매고 있다는 증거다. 네이버가 그토록 염원하는 선정성 배제한 뉴스 시장은 뉴스스탠드를 통해서도 열리지 않는 것일까. 독자로서, 이건 장기적으로 너무 슬픈 일 아닐까. 당장의 클릭 수에 따라 그달 매출이 좌지우지되는 매출 구조를 언론사가 갖고 있는 한 뉴스스탠드가 아니라 뉴 스탠드 할애비가 와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같아, 젠장, 너무 씁쓸하다. 한국의 뉴스 독자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