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업계에서든지 좋은 디자인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좋은 디자이너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한국에서 디자인 관련 학과를 졸업하는 졸업생들이 매년 30,000여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명함에 디자이너라는 직책을 지닌 사람들의 수는 또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다.
이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게 필요한 디자이너를 찾는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마냥 엄청난 노력과 고생이 든다. 많은 자본과 복지를 제공하는 대기업은 좋은 인재들이 알아서 찾아가니 큰 무리 없이 그들을 선택할 수 있지만, 자본력이나 복지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그런 디자이너를 찾기란 쉽지는 않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된 지 벌써 3개월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 과연 스타트업에게 꼭 필요한 디자이너란 어떤 조건을 지니는 게 좋겠냐는 생각이 들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보기로 한다.
컨텍스트 디자이너가 필요한 이유
제목에 ‘컨텍스트 디자이너’를 찾아야 한다고 적어보았다. 과연 컨텍스트 디자이너(직역한다면 맥락 디자이너?)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요지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디자인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을 시각화, 물질화시키는 것 이외에 그 시각화된 작업, 물질화된 작업물에 보이지 않는 맥락을 집어넣을 수 있는 디자이너. 최근 많이 보이는 UI / UX와도 어느 정도 관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부분을 포함한 좀 더 포괄적인 시각과 언어를 지닌 디자이너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디엄을 돌아다니면서 읽게 된 글이 하나 있다. Slack의 CEO가 프리뷰 출시 2주전 직원들에게 했다는 “우리는 말 안장을 파는 것이 아니다 (We don’t sell saddles here.)” 이 이야기는 단순히 ‘말 안장’을 팔기보다는 ‘승마’라는 보다 큰 카테고리를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승마를 판매하면 승마에 포함되는 말 안장을 판매하기 위한 완벽한 컨텍스트, 즉 맥락을 지닐 수 있다. 또한, 시장 자체를 그들이 원하는 만큼 확장시킬 수도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나이키는 절대 그들의 광고 캠페인에서 신발을 홍보하지 않는다. 이 신발은 이러이러한 기능이 들어갔다고 떠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엄청나게 그들의 신발을 판매한다. 그 이유는 역시 컨텍스트다.
나이키는 신발을 판매하지 않고, 스포츠를 팔고 있다. 스포츠 영웅들을 존경하며 스포츠라는 행위의 놀라움과 숭고함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제품은 그 스포츠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에 속해있는 작은 부속품일 뿐이다. 우리는 그 위대한 스포츠라는 영역에 참여하고자 그들의 제품을 구매한다.
스타벅스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벅스는 더이상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다. 커피는 스타벅스를 구성하는 핵심요소이지만, 그들이 판매하는 것은 커피를 즐기기 위한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 즉 문화를 판매하고 있다. 커피의 맛만 따진다면 훌륭한 카페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스타벅스를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시간과 공간’의 컨텍스트다. 이 차이때문에 우리나라의 수많은 카페들이 경쟁에서 밀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멋진 공간을 만들어놓고 맛있는 커피를 팔면 된다가 아니라 우리가 주고자 하는 핵심가치, 즉 우리의 컨텍스트가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 역시 서비스에서 컨텍스트 영역으로 옮겨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원래 츠타야는 서적, DVD, CD 등 각종 콘텐츠를 렌탈 및 판매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콘텐츠 유통이라는 그들의 목적을 보다 큰 맥락에서 해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도쿄 다이칸야마에 초거대 문화공간 ‘T-site’를 오픈한다.
츠타야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컨텍스트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단순히 책을 팔고 DVD를 파는게 아니다. 내 취향에 맞는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즐겨볼 수 있고, 마음에 들면 구매도 할 수 있다. 정보가 부족한 부분에서는 직원들의 서비스를 통해 모자란 부분을 받을 수도 있다. 디테일한 모든 부분들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조화롭게 운영되고 있다. 그 덕분에 현재 일본 최대의 서점인 기노쿠니야 서점을 누르고 ‘연간 서적판매고 1위’라는 타이틀을 달성하게 되었다.
물론 경영 부분에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디자이너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영역이기도 하다. 이런 큰 흐름 안에서 적재적소의 디자인을 하나하나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있다. 그리고 모든 콘텐츠가 하나의 컨텍스트 안에서 일정하게 생산되고 있다. 여러 가지의 스타일(디자인 역시 일종의 취향이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이 있지만 돌아보니 하나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디자이너는 억만금을 줘서라도 반드시 데리고 있어야 하는 디자이너다. 컨텍스트를 파악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능력은 절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린(Lean)’은 많은 스타트업이 진행하는 방법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디자이너 한사람이 있다면 ‘린 방법론’은 최선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생산해낸 디자인 콘텐츠가 100%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큰 맥락에서 살펴볼때는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커다란 컨텍스트 안에서 동작하는 디자인 콘텐츠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이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하나 콘텐츠들이 쌓여있을 때 그 콘텐츠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묶여 있다면, 그 자체가 강력한 브랜드로 작용할 수 있다.
말 안장을 잘 디자인하는 사람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부터 하나하나 결과물을 만들어가야 하는 스타트업에는 단순히 말 안장만 디자인 잘하는 사람보다는 ‘승마’라는 큰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스타트업이 성장하는데 핵심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컨텍스트 디자이너를 찾길 바란다.
원문 : Phillip Don의 미디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