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내 이야기부터 하자. 나는 영어, 중국어로 방송뉴스를 듣고, 계약서도 수정할 정도로 읽고 쓴다. 발음이 엄청 좋고 문법적으로 정확하냐고? 잘 모르겠다. 솔직히 알 바 아니다. 내 모국어는 한국어고 영어와 중국어는 외국어인데 내가 왜 그렇게 정확해야 하는데? 듣는 사람이, 보는 사람이 알아서 감안해서 들어야지. 아쉬우면 한국어를 배우든가?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외국어를 대한다. 지금보다 영어, 중국어를 훨씬 못할 때도 항상 그런 무대뽀 자신감으로 외국어를 내뱉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런 무대뽀 정신이 역설적으로 외국어를 빠른 속도로 습득하게 만들어줬다.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활용할 곳이 없는 게 문제다
난 생각했다. 미국인이 한국말 못하지 않는가? 내가 영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가? 자신감을 갖자. 대부분의 미국인은 외국어 한마디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는 어쨌든 외국어를 한다. 외국어를 몇 가지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의 언어적 표현력, 문화적 다양성은 분명히 큰 경쟁력이다.
왜 우리는 십수 년 외국어 학원에 다니고, 수업을 듣고, 교재를 보고, 노력에 노력을 해도 유창한 외국어가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을까? 외국어를 공부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니까 그렇다. 외국어는 수단이고 의사소통의 스킬이다. 절대 콤플렉스 느낄 대상도 아니고, 못한다고 쪽팔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영어 잘하면 뭔가 대단한 글로벌 인재 느낌 나는 것도 아니다. 노란 피부색의 한국인이 미국에 가서 영어를 무지 잘한다고 미국인이 “워우~ 천재네요!” 이렇게 놀라주지 않는다. 그냥 이민자인가? 1.5세? 이 정도?
핵심은 자신의 전문영역에서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를 활용해 외국어를 잘 활용할 때 전문성이 발현되고 의사소통으로 관계를 쌓을 수 있다. 솔직히 갑의 위치로 미국이나 중국에 가면 어설픈 영어, 중국어라도 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준다. “혹시 제가 들은 내용이 이게 맞는지요?”라고 정중히 내용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이번 여름에 미국 예일대의 한국인 마케팅 교수님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한국 토종 학사, 석사 출신인 교수님은 총명한 두뇌를 인정받아서 예일대 (그것도 종신!) 교수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사회적 지위로 톱클래스에 위치한 아이비리그의 교수가 되었으니 그의 콩글리시 스타일 발음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전문용어 사이 사이로 깨지는 문법도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문법적 오류를 종종 지적해서 그때그때 영어 실력을 키운다고 한다. 외국어는 수단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다.
콩글리시 발음 창피해 하지 말자. 거꾸로 우리가 더 키워야 할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다. 외국어는 공부가 아니라 기술을 익히는 무수한 반복 훈련의 대상이다. 우리는 공부라고 하면 무언가 이론적인 체계를 내재화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외국어는 거꾸로 공부로 접근하면 거리감만 더 생길 뿐이다.
결국은 시간이다, 버티려면 좋아하는 분야의 콘텐츠로 익히자
외국어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마치 운동선수나 숙련공처럼 몸에 본능적으로 익히는 무언가다. 사실 한국어를 머리 싸매고 배웠나? 그냥 엄마 아빠가 눈 마주치고 입 모양 보여주면서 무수하게 소통해주면서 저절로 익혀진 것이다. 본능적으로.
물론 본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노출 시간이다. 아무리 IQ가 떨어져도 외국어는 몸에 젖어 들게 마련이다. 그 긴 시간을 재미없는 내용으로 가득 채우면 그걸 어떻게 소화하겠는가? 그래서 외국어는 자신의 관심사를 증폭할 재미있는 내용으로 익혀야 한다. ‘공부하다’가 아니라 “익힌다”라는 말을 씀에 주목하자.
내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경영, 인수합병, 기술의 변화 등이다. 그래서 내게 영어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의 연설을 직접 육성으로 알아듣기 위해서다. 중국어가 필요한 이유는 텐센트의 마화텅,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의 연설을 직접 듣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패션 트렌드, 중국의 상하이의 패션 산업 동향을 알기 위해서 외국어를 익혀야 하는 것으로 동기부여를 하면 된다. 굳이 관심 가지 않는 주제에 시간을 쓸 이유가 없다.
외국어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긴 시간 흥미를 지속시켜 줄 재미있고 유익하고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면 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고 외국어 실력은 저절로 향상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내용을 알고 싶으면 본능적으로 귀를 쫑긋 세워서 듣고, 눈에 불을 켜고 읽기 마련이다.
전문영역을 외국어로 익힐 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외국어를 익힐 때 문법, 어휘, 발음 이런 체계적인 학습계획을 세우지 말자. 그렇게 “학문”적으로 “공부”로 받아들일 때 외국어 마스터의 시기는 점점 멀어진다. 오히려 흥미로운 주제를 정하고 관련된 콘텐츠를 확보하자. 그리고 그 콘텐츠를 난이도로 분류하고 쉬운 내용부터 하나씩 보고 읽어 나가자. 그러면 귀도 열리고 눈도 뜨인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흥미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이 점점 강화된다. 왜? 전문영역에 긴 시간을 들였으니 어느새 외국어가 아닌 외국 전문 소식을 받아들이는 소수의 전문인력 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언어만 잘하는 게 아니라 특정 전문 분야의 전문가가 되니 일거양득이다.
결국 외국어를 익히기 전에 우선 외국어를 통해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이걸 먼저 정하는 게 좋다. 지금 외국어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다면 그 외국어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영역을 정하는 게 좋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유익한 영상들을 청취하고 구글에서 좋은 문서를 찾아보자. 훨씬 더 효율적으로 외국어를 익힐 수 있을 테니.
원문: 정주용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