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입기자로 48일을 버텼다. 인수위를 둘러싼 거대 이슈는 언론에서 다룰 만큼 다뤘다. 하지만 현장의 기록을 글로 남기는 일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 애타게 불러도 말 없는 인수위원들
인수위원들은 입을 닫았다. 해단식을 앞두고 공식 기자회견에서야 말문이 트였다. 그들의 브리핑을 보며 ‘아. 저렇게 말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입단속이 철저하게 이뤄졌다.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기자들은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다렸다. 출근, 점심, 퇴근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 이른바 ‘뻗치기’다. 인수위원들도 기자 앞을 뚫고 지나가는 일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신문기자와 달리 방송기자는 데스크에게 ‘싱크’를 따라는 지시를 받는다. ‘싱크’란 취재원의 멘트나 현장음이다. 인수위원들에게 얻어낸 싱크란 대부분 “모릅니다.”, “대변인한테 물어보세요.”, “안녕하세요.” 따위다. 영양가가 없었다. 인수위가 끝날 때쯤에는 말 안 해주는 위원과 그나마 말을 해주는 위원이 갈렸다. 후자에서 특히 평판이 좋았던 사람은 김장수와 유민봉이다. 김장수는 국가안보실장, 유민봉은 국정기획조정수석으로 영전했다.
사생활 없는 기자실 : 기자들끼리 눈치보는 이상한 인수위실
기자실은 금융연수원 본관 2층에 있었다. 옆자리 기자와 팔꿈치가 맞닿을 정도로 좁았다. 앞자리 기자가 메신저를 하는지 동영상을 보는지 훤히 보였다. 인수위는 주요 출입처라 언론사의 전투력이 집중됐다. 많게는 한 언론사에서 10명 가까이 출입했는데, 한 출입처에 같은 회사 선배가 많아지면 후배들은 괴롭다. 직장 생활의 큰 재미 가운데 하나인 ‘상사 뒷이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메신저로 선배 욕을 하고 있는데 불쑥 뒤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뭐 하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당황해 대화창을 닫지 못했다. 이렇게 몇 번 걸렸다.
이게 다 좁아터진 기자실 탓이다. 기자실 긴 책상 한 줄에 9명 정도가 앉았다. 앞뒤 간격이 좁아 전화라도 받으러 나가려면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했다. 그게 귀찮아 물을 조금 마시며 버틴 날도 있다. 기자실의 꽃은 수면실이다. 인수위 기자실엔 제대로 된 수면실이 없었다. 기자들은 귀신같이 건물의 공간을 찾아냈다. 금융연수원 3층은 금융교육이 진행되는 곳인데, 소파와 빈 강의실에 널브러진 기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필자도 강의실과 강당에 몰래 들어가 잠을 자다 쫓겨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매일 아침 윤춘문예(?!)
매일 오전 10시 ‘윤춘문예’가 열렸다. 신춘문예를 비꼰 말이다. 인수위원들이 답하지 않아 윤창중 전 인수위 대변인(현 청와대 대변인)의 입만 보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비애감에서 나온 말이다. 아침 10시가 되면 윤창중 전 대변인이 들어와 비장한 표정으로 자료를 읽었다. 윤 전 대변인의 대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능숙해졌다. 처음 지명됐을 땐 기자들에게 휘둘렸다. 공식 브리핑을 마쳤다고 내려가다 붙들려서 대답을 더 하고, 그러다 말실수를 했다.
어느 정도 적응하자 변했다. 질문을 받을 때 소속과 직책을 밝히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다.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어디세요’를 묻곤 했다. 백브리핑에서도 카메라 기자가 사진을 찍으면 침묵하다 “사진 찍기 않기로 했잖아요?”라고 강하게 밀고 나왔다. 커피와 밥을 사겠다며 기자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는데 호응이 좋진 않았다. 먹는 내내 자기 자랑과 ‘선배 기자’로서의 인생 교훈을 늘어놓아서다.
인수위가 해단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인수위 시절 제기됐던 문제와 현재 박근혜 정부가 지적받는 부분의 본질은 비슷하다. 소통의 일방성과 하향식 결정구조다. 박근혜 정부 내내 같은 문제가 이어질 것이다. 하나 다행인 건 인사 발령으로 또 다른 닭장인 청와대에서 5년 동안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