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주: 이 글은 오래된 문제에 대한 아주 간략하고 부분적인 요약일 뿐이다. 글의 일관성을 위해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설명이나 아시아여성기금 당시의 상황, 여성주의의 비판 등은 모두 생략하였음을 감안하여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과 관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고 “양국 정부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른 만큼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가며 새로운 관계를 열어갈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에 아베 총리는 “일본국 내각총리 대신으로서,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 아베 총리는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착실히 실시해 나가겠다”며 “금번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연합뉴스, ‘朴대통령 “새 관계 희망”, 아베 “사죄와 반성”…13분 통화‘)
한국 정부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합의, 온갖 매체들이 자랑스럽게 보도하는 아베의 (법적인 책임은 인정치 않는) ‘사과 발언’은, 사실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지금의 협상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임인 정대협이 20년 전에 일본의 ‘책임 회피’를 이유로 거부했던 아시아여성기금과 다를 바 없고, 아베의 사과 발언은 고노 담화에서 단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일외교에서 기존의 틀을 깨고 한발 더 나아가 뭔가를 해낸 것이 아니다. 이 협정은 그저 일본의 변하지 않은 입장을 한국 정부가 수용했을 뿐이다. 사과를 받을 피해자 말고, 한국 정부가 말이다.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95년의 아시아여성기금은 일본정부에 의해 민간기금으로 설립되어 일본 시민들의 성금과 일본국 정부에서 지불한 비용으로 구성된 ‘보상금'(배상금이 아니다.)을 각국의 위안부 피해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 금액은 당시 기준으로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보상을 수락한 각각의 피해자에게 총리의 사과문서가 함께 전달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한일협정에 대한 일본정부의 일관된 입장을 고려해볼 때, 이 기금은 일본이 제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피해자들은 원한다면 기금을 통해 도의적인 사과를 받고,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몇몇 피해자 분들은 기금을 수락하셨고, 자신을 괴롭혀온 오랜 문제에 나름의 마무리를 마치셨다.
반면 정대협에 속한 피해자분들은 기금을 거부했다. 일본이 위안부의 강제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이에 근거해 자국의 정부도 아닌 민간기금의 이름을 빌어 ‘보상’을 지불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보상’은 적법한 행정절차에 따른 피해에 대한 지불이지만, 그녀들은 위법한 절차에 따른 피해에 대한 ‘배상’을 원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불법적인 폭력의 희생자임을 인정받기 위하여, ‘보상’과 맞서 싸우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들은 20년의 시간을 그저 보상이 연체된 과정으로 만든 ‘합의’를 바라본다. 피해자들이 20년 전에 이미 거부했던 보상과, 20년 전에 이미 거부했던 사과가 전혀 변하지 않은 채로 그녀들과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다.
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달라졌다. 정부는 20년 전과 변함이 없는 제안을 승낙하면서, 축배를 들며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말한다. 마치 이 문제가 피해자들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서 정말로 끝나버린 것처럼. 그래서 그녀들이 20년 전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거부하고 싸워온 제안들을 이제는 모두 수용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정대협에 소속된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보상’과 맞서 싸웠다. 그런 그녀들의 앞에 해결책으로 일본 정부의 ‘보상’을 내던진 합의는,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 이뤄진 것이었는지.
위안부 문제는 결국 가해자인 국가와 피해자인 개인 간의 문제다. 사과를 수락할지 말지, 어떤 식으로 사과를 요구할지는 모두 피해자 개인의 몫으로 남았어야 한다. 누군가의 치적 쌓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 개개인을 위하여.
원문: 임병학님의 페이스북